메뉴 건너뛰기

close

크리슈나 신상.
 크리슈나 신상.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관련사진보기

한국 사회에 '천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업입니다. 특정한 분야에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그가 하는 일이 딱 어울릴 때,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천직이구나'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 '천직'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회가 있습니다. 바로 힌두교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힌두교 최고의 신인 크리슈나는 그의 입으로 '브라민'을, 팔로 '크샤트리아'를, 몸통으로 '바이샤'를, 다리로 '수드라'를 창조했습니다. 크리슈나의 어느 한 부분에서도 나오지 못한 달리트들은 카스트의 질서 밖에 서있는(outcaste), 그래서 힌두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힌두 사회에서 신은 이 네 계급에게 각각 신성한 의무를 주었습니다. 브라민에겐 성직자와 지식인의 의무를, 크샤트리아는 병사, 바이샤는 상인이나 농민, 그리고 마지막 카스트인 수드라는 위의 세 카스트들을 위한 각종 노동의 의무를 주었습니다.

천직=신이 선사한 천형?

모두 신성하고 조화롭다고 합니다. 신이 주었기 때문이지요. 사회 질서는 이 신성한 의무를 각자가 수행하고 자신의 의무를 넘어서지 않을 때 평화롭게 유지됩니다. 각자는 다른 계급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신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며, '천직'을 거스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힌두교가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천직'은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세대 간 전승되어 온 이들의 일은 당연히 각자가 가장 잘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이 '신성한 의무'는 두 형태를 띱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을 수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카스트들과 구별짓기 위한 집단적 의무. 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달리트들에 대한 '불가촉성(untouchabil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카스트에 대한 차별, 특히 달리트들에 대한 차별은 신이 준 의무라는 이름 아래 상층 카스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07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India untouched>에서 바라나시의 한 브라민 성자는 "모든 카스트는 주어진 의무를 수행해야 하며 다른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규율에 위반되며, 사실 다른 이에게 주어진 의무를 잘하지도 못한다고 하지요. 브라민은 성자의 일을 잘 수행하도록 태어났으며 달리트인 차마르는 신발 수선 일을 잘 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브라민은 힌두 성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차마르는 신발을 수선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기회는 박탈되어 있고 어렸을 때부터 그 일에만 잘 훈련되어 왔으니 이는 천직이 아니라 숙련과 경험일 뿐입니다.

간디.
 간디.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달리트들에게 '신의 아이들'(하리잔)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부여했던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스트는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그 기원을 나는 알지 못하며 내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중략)…바르나(구성원을 브라민·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로 구분하는 힌두식 계급)의 법은 우리 각자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조상들의 부름을 따를 것을 가르친다.

카스트는 우리의 권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를 규정한다. 또한 카스트에는 너무 낮은 것은 없으며 너무 높은 것도 없다. 모든 카스트가 선하며 적법하며 그 지위에 있어 절대적으로 동등하다."

가장 낮은 의무를 진 가장 낮은 사람들

지난 여름 인도 동북부 바라나시에서 머물고 있었을 때 골목길을 지나가면 늘 시궁창 냄새가 나곤 했었습니다. 간혹 서너 명의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하수구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작업복과 보호 장비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올 여름 인도 서부 구자라트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수구 청소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사람들이 기피하긴 하지만 단지 하나의 직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인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하수구 청소 담당도 카스트에 의해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구자라트에서 이들은 '발미키'라는 하위 카스트에 속해 있습니다.

구자라트의 아흐메다바드, 비람감시. 지나는 매일같이 길거리를 쓸고 있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어갑니다. 사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시 정부에서 일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남편 고팔씨는 시 정부의 비정규직 청소부였습니다.

고팔씨의 일은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하수구를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발미키라는 하위카스트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와 짐승의 분뇨, 인분을 치우는 것이 그들의 몫입니다. 제대로 된 청소용구도 없이, 장갑도 모자도 청소복도 없이. 100년 전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의 고향 구자라트에서 평생 동안 폐지시키려고 노력했던 발미키들의 '신성한 의무'. 그러나 2008년 구자라트에만 해도 6만4천여 명이 여전히 수작업으로 짐승과 사람의 분뇨를 치우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고팔씨는 하루 여덟 시간 일했습니다. 가끔은 야간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물론 야간 수당은 없습니다. 야간 근무를 하라고 전화연락이 오면 무조건 가서 해야 합니다. 일 년 전에도 그렇게 전화를 받고선 다시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 날은 종일 비가 쏟아진 터라 밤에 하수구 청소를 하는 건 더욱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고팔씨는 야간작업을 거부하지도 못합니다.

사실 그 전날 야간작업을 한 동료가 작업 중에 다쳐 몇몇 동료들이 야간작업을 거부한다고 나섰지만 당장에 해고당한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고팔씨도 두려웠습니다. 발미키들은 이런 청소작업에만 고용되며, 그나마 정부기관에서 고용되어 일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간작업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얻어맞는 건 기본이고 해고라도 당하면 굶어죽을 테니.

그렇게 일하다 돌아온 다음날 아침, 시름시름 앓고 구토 증세와 몸에 통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 가다가 사망했습니다. 부검을 한 의사는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람감시 거리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지나. 그녀는 집에서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나온다.
 비람감시 거리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지나. 그녀는 집에서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나온다.
ⓒ 진주

관련사진보기


15년 전 금지된 하수구 맨몸 작업... 그러나 이들에겐 일상

지나는 시정부와 여당 정부 기관으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자리를 채우면서 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고팔씨 이전에도 같은 지역에서 두 명의 발미키들이 일하다 사망한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요? 수작업으로 분뇨를 치우고 하수구를 청소하고 맨홀에서 일하는 것이 1993년에 이미 법으로 금지되었다는 것을 배우기나 한 걸까요? 아니면 인도의 수많은 법령들은 가장 낮은 카스트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는 적용조차 안 되고 그저 두꺼운 법률책에나 있으라고 정해진 것일까요?

지나는 남편처럼 야간근무를 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업장에서 발미키들이 겪어야 하는 '불가촉성'의 차별에다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박대는 아무리 익숙해져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조용히 집안 구석에서 사리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는 지나 대신, 친척들이 이야기합니다.

"시 관할부에서 청소도구나 작업복 같은 거 주지 않아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해야 해요.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쉬는데, 한 달에 받는 건 2500루피에요. 고팔은 일용직으로 하루에 100루피를 받았어요. 여자들이 덜 받아요. 감독관이 매일 아침 출석체크를 하는데, 출석카드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라고 해요. 아침마다 뙤약볕에서 30분 동안 서 있어야 해요. 그리고는 발미키들은 따로 구석에서 물을 마시죠."

지나는 가족과 친지들이 많이 모인 집안에서는 별 말이 없다가 나중에 배웅하는 길에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따로 있어서 아이들만 데리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 지나는 발미키로서 살아온 삶과 남편의 죽음을 겪으면서 지치고, 길거리와 하수구 청소로 남은 생애를 보내야 하는 게 두려워보였습니다.

법으로 금지한 카스트제, 그러나 실질적으로 재생산 책임지는 정부

구자라트의 바도다라. 주쉬는 지나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주쉬도 지나처럼 바도다라 지방정부로부터 청소원 일을 제안받았습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사망한 뒤였습니다.

2008년 5월, 주쉬의 남편 하리쉬와 그의 동료 나진은 한밤 중에 맨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도 하루 일을 마친 뒤 감독관으로부터 다시 야간근무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9m 깊이의 맨홀에 아무 장비도 없이 옷도 전부 벗고 들어가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겐 작업복, 장갑, 기타 필요한 보호 장비 중 어느 것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바도다라시 시장과 면담에서 통역해주던 행정비서관은 장비를 지급해도 작업하는 발미키들이 사용하기를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달리트에 대한 고용할당제로 당선된, 발미키 출신인 시장은 시 당국이 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주 정부에서 임명된 행정비서관은 발미키들의 현실과 정부의 무관심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리쉬가 사망한 맨홀 입구.
 하리쉬가 사망한 맨홀 입구.
ⓒ 진주

관련사진보기


맨홀 입구 옆, 주인을 잃은 자전거.
 맨홀 입구 옆, 주인을 잃은 자전거.
ⓒ 진주

관련사진보기


그들이 사망한 맨홀의 입구에 서니 10년 전 제작된 다큐멘터리 <레서 휴먼(Lesser Human)>에서 맨홀 작업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맨홀을 채우고 있는 시커먼 하수물속에 머리끝까지 담근 채 일하고 있던 모습.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의 노동 조건은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쉬는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아들이 제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요."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죽은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아들이 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바도다라 시장이 아들에게 다른 일을 주겠다고 약속했는 걸요."

시장은 하리쉬가 사망한 다음날 바로 유가족들을 방문했습니다. 보상금으로 7천 달러(한화 약 720만원)를 지급하고 사망한 이들에 대해 유감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 지역에서 하리쉬처럼 사망한 발미키들만 해도 벌써 11명에 달합니다. 2006년 구자라트 고등법원에서 맨홀 내에서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지만, 현실에서 법원의 명령은 종이호랑이 꼴입니다.

주쉬가 살고 있는 슬럼에는 600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400여 명이 하리쉬와 같은 청소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고팔과 하리쉬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당국에서 고용한 청소잡역부들이 사망하면 그 가족 중의 한 명에게 똑같은 일을 주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마치 대단한 보상이라도 해준 것처럼. 

슬럼에서 살고 있는 주쉬와 가족들.
 슬럼에서 살고 있는 주쉬와 가족들.
ⓒ 진주

관련사진보기


태어날 때부터 인간 자격을 빼앗긴 사람들

과거에 발미키들은 '방기'라고 불렸습니다. 이 호명은 수세대 동안 이어져온 차별과 경멸의 어조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천민이었던 '백정'이나 '망나니'라는 호명이 주는 천함과 멸시의 어조를 우리 세대들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젠 그들을 '방기'라고 부르면 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달리트들에 대한 경멸과 차별 발언을 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는 단순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관습적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차별과 배제는 총체적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특히 인식 속에서 차별은 가장 오랫동안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방기'를 '발미키'로 바꾼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질 순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발미키'가 '방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아웃카스트(달리트)'를 '하리잔(신의 아이들)'으로 불렀지만, 다른 카스트들은 이들을 진정한 신의 아이들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어쩌면 신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달리트들의 삶을 단순한 인간 자체의 삶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몬순이 지속되는 여름, 구자라트 아흐메다바드의 팔리야드 마을에서 인분을 담은 대야를 늘 머리에 이고 다니는 여성의 말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몬순이 되어 비가 내리면 머리에 인 대야 속 인분이 물과 뒤범벅이 돼요. 똥물이 옷이랑 얼굴에 다 떨어지죠. 집에 돌아오면 그 상태로 뭘 먹을 수가 없어요. 근데… 몬순 전 뜨거운 여름엔 손 씻을 물도 없는 걸요. 비오는 때가 이 일을 하기가 더 힘든 건지, 뜨거운 여름이 더 힘든 건지 잘 모르겠네요."

주쉬가 사는 슬럼 지역.
 주쉬가 사는 슬럼 지역.
ⓒ 진주

관련사진보기



태그:#카스트, #달리트, #간디, #힌두교, #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