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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13일 낮 정종수 노동부 차관은 경기도 과천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 차관은 분명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정 차관은 "기륭전자 문제는 노동부가 노사문제에 개입해 이끌어가는 사안과는 다르다, 정치인들이 말을 하고 그에 따라 교섭이 붙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근 노동 현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순간 이날로 단식 64일을 맞은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 이들이 "소금과 효소를 끊고 병원 후송과 응급치료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는 며칠 전(12일)의 뉴스가 뇌리에 스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까. 정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지금 현재 김 분회장과 윤 조합원의 생명의 불꽃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정부 기관은 노동부다.

 

노동부 홈페이지에는 "노동부는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인사말이 선명하다. 또 지난 2005년 여름 기륭전자의 불법 파견 판정을 내렸던 곳이 바로 노동부였다.

 

사태의 원인을 알고 있는 노동부는 그 해결책도 그 어느 기관보다 잘 알고 있을 게다. 실제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에서 쫓겨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을 1086일 이어가는 동안 노사 교섭에 그나마 가장 큰 힘을 쏟은 건 분명 노동부였다.

 

하지만 이날 정 차관의 입에서 나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가 큰 문제가 아니다"는 발언은 김 분회장과 유 조합원에겐 효소와 소금을 끊은 것보다 더한 충격으로 느껴질 것이다. 윤종희 기륭전자 조합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이 문제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노동부로서는 단일 사업장 문제보다는 큰 규모의 현대자동차 노조나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사 기로에 선 김소연 분회장의 모습과 그 뒤에 숨겨진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정 차관은 정말 보지 못한 것일까?

 

이미 노동부는 최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점거했던 지난 7월 10일, 장의성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사태 해결을 위한 노사 중재에 힘을 쏟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7월 23일 장 청장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신설회사 1년 고용 후 선별 정규직화'라는 회사의 일방적인 안을 전달했다. 그리곤 "받지 않으면 우린 손 떼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협박한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가 굶으라고 했느냐, 배 고프면 밥 먹어라"라고 내뱉는 회사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사회적 합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부를 비롯해 사태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들의 외면은 "우리 사회가 야만의 사회가 된 것 같다"는 김 분회장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기륭전자 뒤에는 850만명의 고통이

 

 

김 분회장과 유 조합원이 생사의 경계선에 서있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대책추진위원회는 최근 '2008년 공공기관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 전환계약'을 발표했다. 여기엔 구조조정 대상인 공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 노동자로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명백한 비정규직법 위반행위로 해당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밝혔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을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킨다"며 "정부가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편법 악용의 선두에 서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해"라면서도 "구조조정할 기업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조조정 문제를 '잘' 판단한 기륭전자. 거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이날 밤에도 노동부의 외면 속에 생사를 건 싸움을 이어나갔다.


태그:#기륭전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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