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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낮 여의도 KBS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에 참석했던 기자, PD, 사무직원 등 KBS직원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처리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신관 5층 유재천 이사장실 출입문을 봉쇄하고 있다.
 11일 낮 여의도 KBS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에 참석했던 기자, PD, 사무직원 등 KBS직원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처리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신관 5층 유재천 이사장실 출입문을 봉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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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검찰·감사원·국세청부터 청와대로 이어지는 권력기관의 총공세로 사실상 '제거'된 후, '포스트 정연주'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후임 사장의 인선이 물색단계부터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해임에 이어 임명마저도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송법상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토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주된 시각이다. KBS 사원들이 "이사회는 정권의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권, 심지어 방송통신위원회마저 사장 인선 초기부터 직접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언론계에서는 대통령이 '낙점한' 인사가 그대로 차기 사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에서는 "청와대에서 이명박 선대위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김인규 전 KBS 이사를 신임 사장으로 사실상 낙점한 것으로 안다"는 예측마저 내놓고 있다. 

청와대가 밝힌 'KBS 출신 우선 검토', '8월 내 사장인선 마무리 계획'등을 살펴보면 무리를 해서라도 '낙하산 인사'를 앉히겠다는 방침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측근을 앉힐 심산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리해서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사회, '꼭두각시'마냥 청와대 지침 따라"

청와대의 '낙점'에 따라 KBS 사장이 임명될 예정이라는 것은 사실 얼마 전부터 공공연하게 떠돌던 말이다. 모든 절차적 과정을 무시하고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정 전 사장을 끌어내린 현 정부의 행동을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국민적 시선이 분산될 수 있는 올림픽 기간이라는 점도 청와대로서는 일을 처리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하지만 KBS 사장은 어떤 방식을 통해 임명되는 것이 정상인지, 또 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최소한의 절차적 기준마저 무시됐던 해임 과정에 이어 임명 과정에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방송법에는 이사회의 사장 임명 제청권한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사장을 선임하라는 지침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간 관행대로 공모를 실시해 사장 후보를 선정했으나, 이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에서 밀실회의를 통해 '속전속결'로 사장 후보를 제청해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청와대의 의중을 이사회에서 '꼭두각시'마냥 받아들이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003년 정 전 사장이 임명될 당시 이사회는 노조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개혁적 사장 선임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추천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현재는 청와대와 이사회가 단일한 전선체적 관계를 형성한 것 마냥 매 사안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장 후보 논의, 청와대서만 '소문 무성'... 이사회는 '거수기'?
 
유재천 KBS 이사장
 유재천 KBS 이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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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신임 사장에 대한 얘기는 감사원이 정 사장 해임을 KBS 이사회에 요청한 후부터 조금씩 흘러나왔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 대통령이 이사회 해임 제청을 받아들여 제청안에 직접 사인을 한 지난 11일부터다.

이 과정에서 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김인규 전 KBS 이사를 비롯해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 안동수 전 KBS 부사장, 안국정 전 SBS 부회장, 강동순 전 방송위 상임위원, 박찬숙 전 한나라당 의원, 이동식 부산방송총국장, 이봉희 미주한국방송 사장 등이다.

하지만 논의 과정을 보면 임명 제청권을 가진 KBS 이사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엄격한 사장 공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의 '지침'에 따라 그대로 사장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KBS노조가 "'KBS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던 유재천 이사장의 서면 약속은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현석 KBS기자협회장은 "이사회가 제청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기 때문에 사실상 이사회의 임명 제청권이 실질적인 임명권"이라며 "그러나 현 이사회가 이런 역량과 의지가 있나, 이사회 절차는 형식적으로 스피디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현 이사회는 정권의 지침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염두하며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 이사회가 사장을 제청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다며 "현 이사회를 사퇴시키고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상향식 결정과정이 되레 대통령이 밑으로 '내리꽂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현 이사회는 '정치적 독립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켜나갈 사장을 선임할 역량이 없다는 것이 KBS 사원들의 주장이다.

권한 없는 여권 관계자들의 '도 넘은' 발언 이어져

KBS 사장 인선이 '하향식 결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멘토'로 지칭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지난 7일 방통위를 방문한 김재균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선대위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김인규 전 KBS 이사가 KBS 사장을, 이재웅 전 의원이 EBS 사장을 맡는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질문하자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 내가 결정하지 않고 있는데 누가 결정하나"고 답했다.

이는 KBS 사장 임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방통위원장이 마치 중대한 결정권한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것이라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민주당 유은혜 대변인은 "신임 사장 임명에 대해 전혀 결정된 바 없다고 답변하는 것은 실제로 개입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방송 장악의 총지휘자임을 인정한 것이며, 방송사 사장을 자신들 맘대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이명박 정권의 위험한 언론관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성토했다.

'신임 KBS 사장 가이드라인'을 정부여당에서 미리 정해두는 듯한 발언도 청와대 관계자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해임 제청안에 서명하면서 "KBS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후 청와대 참모들이 나서 대통령의 발언을 구체화하며 '새 사장의 기준'을 제시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11일 브리핑을 통해 KBS 사장 후임 인선에 대한 내용과 시기와 관련 "전반적인 의견을 들어보면 KBS 내부 인사로 하는 게 좋으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게 좋으냐, 의견이 갈려 있는 것 같다"면서 "KBS 안에서는 지금까지 KBS 출신 인사가 사장이 된 일이 없기 때문에 내부인사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파악했다"며 내부 인사가 우선적인 검토 기준임을 시사했다.

이어 그는 "그런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서 필요하다면 공모절차를 거쳐서 정할 것"이라며 "이사회가 내일 모레(13일) 후임 사장 관련한 일정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 후임 사장 선정에 있어 '여론수렴'과 '공모절차'까지도 청와대에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가급적 KBS의 전·현직 간부 중에서 후임을 고를 것이라는 청와대의 방침이 이미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 셈이다. 13일 열릴 임시 이사회가 '껍질뿐인' 회의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유재천 이사장도 청와대의 '지침'과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는 말을 하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12일자 <문화일보>는 유 이사장이 KBS 사장 후보와 관련, "아직 KBS 출신이 사장에 임명된 적이 없다"면서 "KBS 출신의 사장 임명을 원하는 KBS 내부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KBS 이사회의 해임 제청안을 받아들여서 정 사장에 대한 해임안에 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KBS 이사회의 해임 제청안을 받아들여서 정 사장에 대한 해임안에 서명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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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일정까지 미리 내세워... "청와대 지침 따라 이사회 행동 백업중"

더 나아가 청와대에서는 '8월 내 사장 선임 절차 마무리'라는 구체적인 일정 계획도 내세우고 있다. 이 대변인은 "경영 공백을 줄이기 위해 이달 내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며 '속전속결'로 사장 인선을 매듭짓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사장 선임 일정표'까지 청와대가 이사회에 하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과 관련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금 보면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서 "청와대의 공개적인 지침에 의해 이사회가 취할 행동들이 하나 둘 백업되고 있는 형국이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현 이사회가 예년의 다양하고 개방적인 절차에 의해 사장공모과정을 거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KBS노조가 제시한 '정치 독립적 사장 선임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형식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청와대의 '노림수'가 없었다면 이렇게 무리하게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정 전 사장을 끌어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 신임 사장 제청에 대한 청와대의 '월권' 논란과 이사회의 '꼭두각시 행태' 비난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에는 KBS 임시 이사회가 개최된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차기 KBS 사장 추천 방식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에도 청와대의 '지시'와 이사회의 '행동'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마냥' 일사분란하게 이뤄질 것인지를 두고 많은 이목이 KBS 이사회로 쏠리고 있다.


태그:#KBS, #이사회, #임시 이사회, #청와대,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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