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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사진 찍는 틀 : 제가 찍는 사진은 어떤 이야기나 틀거리로 ‘다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엮어내는 책도 그렇고, 제가 즐겨읽는 책도 그렇습니다. 어느 하나 ‘탄탄하게 다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빈틈없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조심스럽고 뻘쭘하고 부끄럽습니다. 한 해가 지난 뒤 돌아보면 고쳐야 할 곳만 잔뜩 보이고, 두 해쯤 지난 뒤 돌이켜보면 내보이고 싶지 않은 모자람투성이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즐겁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배울 대목이 많으며 찾아나설 곳이 많거든요. 어쩌면 저는 죽는 날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마무리짓거나 만들어서 끝낼 일’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즐기고 찾아나서고 배우고 함께하는’ 길로 나아가는 지금 모습을 한결같이 이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67] 우리나라 신문 사진기자 : 그림을 억지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찍는 사진기자가 많습니다. 신문에 어떤 사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꼭 어떤 그림을 만든다고도 하겠는데, 생각해 보면 이 말은 핑계입니다. 주어진 사진을 찍어야 한다 해서, 사진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기사를 써야 한다 해서, 억지로 기사감을 만들어야 하지 않아요. 모델을 이리저리 갖다 놓고 손과 발과 몸과 얼굴을 어디로 보게 하고 어떤 모습으로 있도록 해 놓고 찍어야만, 신문에 쓰일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육하원칙이니 무슨 기준이니 잣대니 틀이니에 따라 글을 쓴다고 해서, 신문에 실릴 만한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사진기자라면 사진기에만 눈을 처박지 말고, 자기가 찍는 대상이 되는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보는 한편, 자기가 찍을 대상이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고 찾고 마음을 주면서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사진기는 그런 다음에 들어야 합니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기자이기 앞서 ‘한 사람’임을 잊고 있기 때문에,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아니 기계보다도 못한 ‘뻔하고 틀에 박힌 신문 사진’만 쏟아내는 월급쟁이, 아니 월급벌레가 될 뿐입니다.

 

 

[68] 사진에 찍히는 두 모습 : 내 사진에는 사람들이 웃는 모습만이 아니라 우는 모습도 담고 싶다. 땀흘려 일하는 모습과 함께 온몸이 축 처진 채 쉬는 모습도 담고 싶다. 사람한테 있는 한 가지 모습, 또는 한쪽에서 보이는 모습만 담고 싶지 않다. 잘 찍은 사진보다는 내 나름대로 있는 그대로 느낀 사진이 좋다. 아무래도 그래서일 테지. 내가 찍는 사진은 누군가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한편 아픔도 줄 수 있다. 그래, 우리가 살아가는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담겠다는 마음이니, 내가 사진을 찍을 때에도 ‘이 사진에 담겨지는 사람들한테 생채기를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늘 되새기고 돌아봐야겠다.

 

 

[69] 필름값 4 : ‘코닥 필름’ 값이 20%쯤 올랐단다. 이 소식을 듣고 “어쩌면 좋아?”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참 많단다. 그렇지만 나는 이 ‘코닥 필름이 거의 독과점처럼 되어 제멋대로 값을 껑충 올리는 미운 짓으로 사진하는 사람을 짓궂게 괴롭힌다’고 해도, ‘필름을 더는 안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 값은 올리되 꾸준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이 대목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70] 한 번에 찍는 사진 장수 : 오늘 찾아온 뒤 앞으로 다시 올 수 없다고 느낀다면, 오늘 찾아온 이 하루를 끝으로 앞으로는 찾아올 생각이 없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또, 몸이 이렇게 움직이게 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앞으로 다시 찾아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 느끼고 본 만큼’만 찍고 더는 찍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나, ‘세월에 따라 달라지고 거듭나고 바뀌어 가는 모습’을 하루아침에 다 담아낼 수 없어요. 오늘은 오늘만큼만 찍을 뿐,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까지 헤아리며 찍을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겉스치면서 구석구석 담아내기보다는 세월을 묵히면서 제 안에서 삭여내는 눈길로 다시 찾아와서 새로 더듬으면서 담아내고 싶습니다.
 
이제, 이렇게 되다 보니까, 어느 헌책방을 찾아가더라도 그날 하루에 서른 장 넘게 찍기 어렵습니다. 거의 열∼스무 장 사이로 찍습니다. 어느 때에는 한두 장밖에 안 찍기도 하고 한 장조차 안 찍을 때가 있습니다.

 

 한 번에 열 장이나 스무 장씩 찍어서 열한 해 만에 3000장 넘게 찍은 헌책방이 있고, 2000장 넘게 찍은 헌책방이 있으며, 1000장 넘게 찍은 헌책방도 제법 많습니다.

 

 

[71] 처음 찾아가는 헌책방에서 사진 찍기 : 처음 찾아가는 헌책방에서는 되도록 사진을 찍지 않으려 합니다. 찾아가기 너무 어려운 곳은 처음 찾아갔을 때에도 살짝 여쭌 뒤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처음 찾아갈 때만큼은 사진기를 놓고 싶습니다. 어떤 그림을 담아내는 일도 좋지만, 제가 즐기는 이곳, 이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책을 즐기는 곳’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렇게 ‘책이 있는 곳’으로 느끼고 나서 사진기를 들어야 비로소 ‘아, 이 헌책방은 다른 헌책방과 어떻게 다르구나. 이곳은 이곳 나름대로 어떤 냄새와 느낌과 맛과 빛깔이 있구나’ 하고 몸에서 저절로 헤아릴 수 있지 싶어요.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을 때에도 마음 가볍게 찍습니다. 이 헌책방은 이런 모습이 좋아서 찍고, 저 헌책방은 저런 모습이 좋아서 찍습니다. 이 헌책방에서는 이때에 찍고 저 헌책방에서는 저때에 찍습니다. 한 번 찍고 말 헌책방 사진이 아니요, 한 번 오고 안 올 헌책방 나들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늘 고만고만하게, 그때그때 느끼고 보고 부대끼는 만큼만 사진으로 담으려고 합니다.

 

 

[72] 컬러와 흑백 : 좋은 사진은 칼라로 찍었든 흑백으로 찍었든 좋다. 컬러로 찍어 더 좋거나 흑백으로 찍어 더 나을 수도 있다지만, 잘 찍은 사진은 어느 쪽이 되더라도 보는 이한테 즐거움을 선사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 #사진말, #사진찍기, #사진가, #사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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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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