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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간 구름포. 눈부시게 파란 바다가 나를 반겨주었다.
 다시 찾아간 구름포. 눈부시게 파란 바다가 나를 반겨주었다.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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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구름포를 다시 찾았다. 지난 1월 초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로 약 7개월 만이었다. 당시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3~4시간 봉사활동을 한 후, 석양이 질 무렵 태안을 떠나며 봤던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황금빛으로 물든 구름포의 바다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해안가에 타르가 뒤덮여 있다니. 그 때 깨끗해진 구름포를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태안과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7개월 만에 태안 구름포를 다시 찾다

서울에서 2시간 여를 달려 아침 10시경 태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태안 바다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만리포나 몽산포·안면도 등 기름유출 피해가 그나마 덜했던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구름포가 있는 의항리 방면 버스를 탄 사람은 나와, 함께 취재를 간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 그리고 여고생 3명뿐이었다. 학생들은 의항리 주민이었다.

태안 터미널에서 약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의항리에서 내렸다. 의항 해수욕장에서 약 1㎞ 정도 되는 낮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구름포해수욕장이 나온다.

구름포 해수욕장은 태안 피해지역 해수욕장 15개 중 의항해수욕장과 함께 개장하지 못한 곳 중 하나다.

구름포를 향하는 길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차들도 거의 지나가지 않았다. 아직도 길가 곳곳에는 '구름포 원주민 여러분!! 힘내세요'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이 붙어있었다.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개를 넘으며 구름포와 가까워질수록 불안해졌다. 구름포는 1급수 판정을 아직 못 받았다는데 지난 겨울 보았던 그 바다,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아무도 찾지 않은 그런 바다가 돼버린 건 아닐까.

자연, 그리고 100만 국민의 힘… 바다를 다시 살리다

태안 구름포 해수욕장의 민박집과 가게들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태안 구름포 해수욕장의 민박집과 가게들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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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구름포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썰렁했다. 문이 닫혀 있는 민박집과 슈퍼 앞에 걸린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아직 '여름'을 시작하지 못한 구름포를 실감케 했다.

허탈해진 마음으로 해수욕장을 더 둘러보기로 하던 찰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물놀이를 마치고 왔는지 옷이 흠뻑 젖은 채 아이들이 수돗가로 몰려들어 몸을 씻고 있었다. 수돗가 옆 주차장에는 7~8 대의 승용차와 두 대의 전세버스가 있었다. 해변 쪽 언덕 위로 시선을 돌리자, 몇 개의 텐트와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발걸음을 빨리 해 해변으로 향하는 모래언덕을 넘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밀려왔다. 눈 앞에는 그림같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튜브를 타고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름이 뒤덮여있던 그 바다에 다시 자연의 생명이 찾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바닷가로 내려가 보았다. 모래알이 알알이 보이도록 깨끗한 바닷물 속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기름으로 새까맣게 얼룩져 있었던 자갈들과 조개껍데기들은 햇살 아래 새하얗게 빛나고, 그 사이로 바닷새들이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태안을 찾아 '바다야 미안해'라고 외치며 기름을 퍼나르고 돌멩이 하나하나를 손수 닦아냈던 국민들의 땀 어린 노력이 바다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데... 사람들 많이 찾았으면"

구름포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나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었다. 그 중 지난 1월 구름포로 자원봉사를 왔던 인천지역 자유총연맹 사람들도 구름포를 다시 찾았다. 구름포 시찰 겸 야유회를 왔다는 총연맹 사람들은 제 모습을 찾은 구름포의 모습을 즐기며 감격에 겨워있었다.

김용숙(53)씨는 "예전에 추위 속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보람을 느낀다"며 "깨끗해진 구름포의 모습을 보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직 사람들이 기름이 다 제거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많이 오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 아무개(48)씨도 "예전에는 구름포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기름유출사고 이후로 이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을 보니 안타깝다"며 "올해는 해수욕장이 개장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름포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구름포가 이렇게 깨끗해졌다는 것을)언론에서 많이 홍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구름포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는 피서객들.
 구름포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는 피서객들.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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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구름포 즐기실 수 있어요"

예년보다 적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구름포 주변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올해 구름포 해수욕장은 개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가와 떨어져 있어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구름포 해수욕장 번영회에 전화를 하니, 번영회장 김낙근(63)씨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삼성중공업이 예정보다 45일 늦게 방제작업을 시작해, 지난달 11일에 방제작업이 모두 끝났어요. 다른 피해 해수욕장보다 방제작업이 늦게 끝난데다가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주민들도 해수욕장 개장을 준비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올해는 해수욕장을 개장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해수욕장은 공식적으로 개장하지 못했지만, 번영회에서는 구름포를 찾아온 피서객들을 위해 화장실과 수돗가를 개방해두었다. 샤워장은 관리가 어려워 개방하지 못했단다.

구름포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주로 의항 2리 주민들. 전어·숭어가 특히 많이 잡힌다는 구름포는 그 동안 낚시꾼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동안 주로 낚시용품을 대여해주거나 민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의항리 주민들은 지금 방제활동이나 공공근로·청소 등으로 먹고 산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다시 해수욕장을 개장하고, 많은 손님들이 다시 구름포를 찾아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름포는 정말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방제작업이 어느 정도 끝난 지금, 물이 아주 깨끗해 졌고요. 지금은 사정상 전기시설이나 숙박할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가로등이나 화장실 등 많은 시설을 더 많이 준비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구름포를 찾아주신 손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구름포를 다시 찾아주시면, 더 좋은 구름포의 모습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구름포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태안의 기적'을 몸소 느끼고, 또 한 번 구름포와 약속을 했다. 내년 여름, 꼭 많은 사람들과 함께, 또 다시 구름포를 찾아오겠다고. 국민들의 소중한 마음이 되살린 구름포가 다시 생동하는 모습을 보러 오겠다고. 내년에는 더 활기찬 구름포와 태안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구름포 주민 여러분, 힘내세요!
 구름포 주민 여러분, 힘내세요!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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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하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태안, #구름포, #기름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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