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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가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가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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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 휴학을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던 차에 백화점에서 추석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추석에만 잠시 일하는 아르바이트인지라 기간도 2주로 짧았고, 시급도 당연히(?) 최저임금보다는 높았다. 잠시 부담없이 하기에는 좋겠다 싶어 덜컥 지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백화점에서 일해본다는 것에 끌렸던 것 같다. 깨끗하고 뭔가 고급스러운 이미지. 물론 일하면서 이 환상은 깨지고 말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서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걱정했다. 그 때만 해도 난 앉아서 손님들이 추석선물 보낼 곳만 적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별로 대단하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출근 첫날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으니…. 다른 한 명과 함께 지하 2층에서 카트 지키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추석 대목을 맞이한 백화점 지하 2층. 선물을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곳에서 카트를 보관하고, 때로는 카트를 끌어주기도 하는 단순 업무였다. 그 곳에서 2주 동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앉을 자유를 허하라

무엇보다도 힘든 건, 역시 서있는 것이었다. 손님들에게 공손해 보이고, 준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된 노동환경이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어김없이 무릎과 발목·발바닥에 통증을 느꼈다.

아직 22살이었던 나도 서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슬쩍슬쩍 움직여보기도 하고, 다리를 엇갈려 서는 등 갖가지 비트는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갖가지 서있는 자세를 취해봤지만, 서있기 편한 자세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애초부터 서있기 편한 자세는 없었던 게다.

나도 다리가 아팠지만, 오랫동안 서서 근무한 사람들에게 잘 생긴다는 하지 정맥류가 선명한 백화점 언니들의 종아리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지금도 가끔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매장에서 앉아있는 직원을 보며, 건방져 보인다고 혀를 끌끌 차는 손님을 볼 때면 "당신이 한 번 일해보라" 말하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서서 일하는 것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까. 아니다. 캐나다나 미국의 백화점을 갔었을 때, 모든 매장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분명 매대 앞에서 앉아 있다가 손님이 오면 일어서서 응대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렇게 손님을 맞아도 응대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도 응대할 때만 서서 일하면 안 되는 건지, 일하는 입장에 서서 근무 환경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다만, 백화점에서도 항상 서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공간은 마련돼 있다. 백화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던 백화점 지하4층에는 직원들이 휴게실이 있었다. 한 100여명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널찍한 그 방은 들어가자마자, 희한한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그 방의 모든 벽이란 벽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다리를 올리고 누워있는 것. 마치 단체 매스 게임 연습하나 싶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자세로 다리를 올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우스웠다. 그러나 늦게 가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그마저도 다리 하나 올릴 벽 한구석의 여유도 없어, 그냥 바닥에 누워야 했다.

대부분 잠시 30분에서 1시간 눈을 붙이기 위해 이 곳을 찾은 지라, 입구 쪽만 불이 켜져 있어 꽤나 어두웠다. 게다가 환기도 잘 되지 않아, 발 냄새와 여러 냄새들로 그리 안락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서 있다가 이 한 몸 뉘일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교대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깊은 잠은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지난 4월 전국여성연대,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등은 민노당 계양구 여성후보 2인과 함께 지난 3일 계양구 이마트 앞에서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서비스유통 종사 여성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전국여성연대,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등은 민노당 계양구 여성후보 2인과 함께 지난 3일 계양구 이마트 앞에서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서비스유통 종사 여성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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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계약직이니? 파견 직원이니?

내가 쉬던 지하 4층 휴게실을 모든 백화점 직원들이 찾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나 같은 아르바이트나 지하 1·2층에서 일하는 식품코너나 파견업체 직원들이 주로 쉬곤 했다.

백화점이란 이름이 식품부터 명품까지 갖가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을 판다고 해서 붙여졌다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 형태도 파는 물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먼저, 백화점 꼭대기에서 전반적으로 백화점을 관리하는 백화점 측 정직원. 법적으로 고용이 보장되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소수의 정직원 외에는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의 계약직 사원들이 백화점에 파견돼서 일하는 경우가 주를 이루고, 백화점과 직접 계약을 맺고 일하는 캐셔나 안내데스크 언니들, 그리고 외부 용역업체의 소속인 청소아줌마나 행사도우미 언니들, 그리고 그 밑에 나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내가 일할 당시만 해도, 지하에서 가장 파워가 셌던 사람들은 바로 캐셔 언니들이었다. 지하 2층에서 계산을 돕던 캐셔 언니들은 대부분 상고를 졸업하고 백화점에 계약직 사원으로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계약기간이 계속 연장되는 무기 계약직 형태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과 근무 여건·임금에 있어서 다른 누구보다도 월등히 앞섰다.

그래서인지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콧대도 높고,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큰 소리도 내기도 했다. 그 언니들은 굳이 지하 4층에 가지 않아도, 일하는 곳 바로 옆에 따로 마련된 자신들의 공간에서 쉴 수 있었고, 백화점 직원들을 위한 특가 행사가 열리면 어김없이 나타나 명품 선글라스나 가방을 사곤 했다. 내가 일하던 당시 언니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두 해 지나서 다시 그 백화점을 찾았을 때, 계산을 하면서 우연히 계산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표를 보게 됐다. 이름표 위에 적힌 낯선 용역업체의 이름이 선명했다. 나이도 그 때 당시 20대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30~40대로 바뀌어 있었다. 콧대 높게 굴어서 살짝 얄밉기도 했던 캐셔 언니들. 안정적인 직장이 사라진 지금, 그 언니들은 어디에 있는지... 계산하면서 마음 한 쪽이 무거워졌다.

엄마뻘 손님의 언니가 된 나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호칭이었다.

"저기… 언니…"
"네? 저요?"

한 50대 정도 돼 보이는, 엄마뻘 되는 사람이 나보고 언니라고 부를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일한지 3일까지는 이런 상황이 하루에도 한두 번 이상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엄마뻘 되는 다른 직원들은 부를 때 언니라고 불러야 했기 때문에, 더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카트 지키는 일을 하면서 기피대상 1호는 바로 외제 유모차였다. 백화점이 아무래도 아이 데리고 나와서 쇼핑하기에 적당하다보니, 가끔씩 카트가 아니라 유모차를 맡기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외제 유모차, 바퀴 부분이 쇠로 되어있어서 상당히 날카롭다.

엄마들은 슬쩍 민다고 하지만, 옆에 있는 알바의 발목에는 생채기가 나기 마련이다. 외제 유모차를 맡은 날이면 발목에 붉은 줄이 생기곤 했다. 별 거 아니라고 그냥 두었더니. 그 상처는 또 왜 이리 오래가는지. 아직도 발목에 상처 자국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나곤 한다.

일하기 전에는 몰랐던 백화점 직원들의 애환과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었던 2주가 끝난 후, 나는 다시 손님의 입장으로 돌아가 백화점을 찾곤 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일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편치 않았던 백화점 알바의 추억은 지금도 백화점을 찾을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태그:#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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