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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부시 반대 시위를 보도한 호주 AOL.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때문에 미국이 싫어졌다."

 

이 말은 언뜻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처럼 들린다. 그럴 가능성 또한 상당히 높다. 그들이 미국, 특히 부시 대통령 부자가 대를 이어 주도한 이라크 전쟁(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도 1991년 이라크를 공격했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말은 미국, 영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호주 국민들한테서 나온 것이다. 시드니대학교 미국학센터가 2007년 7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호주 국민 3분의 2가 '친미-반부시 정서'를 나타낸 것.

 

사정이 이렇다보니, 8월 5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부시 환영집회' 뉴스를 접한 호주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국민 60% 이상이 미국에 호의적임에도 부시 대통령이 방문할 때마다 대규모의 '부시 반대 시위(Stop Bush)'가 벌어지는 호주이지만, 그럴 때 대규모 부시 환영집회가 벌어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규모 환영 집회는커녕, 성조기를 흔들고 다니는 시민을 구경하기도 힘들다. 부시 방문 기간 동안, 호주에서는 공식 행사장 정도가 아니면 성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에 부시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 거의 유일하게 나타난 성조기와 부시 지지 플래카드.

한국의 '부시 환영 집회' 상세히 전한 호주 언론

 

8월 5일자 <호주 AOL>은 '부시, 한국 시위 군중으로부터 환영받다(Bush greeted by demonstrations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내보낸 데 이어, 6일에도 버트 허만 기자의 현지 리포트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전했다.

 

<호주 AOL>은 "부시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군중과 반대하는 군중이 가까운 장소에서 집회를 열었다"고 전하면서 "부시 환영 집회를 주도한 그룹은 주로 기독교 신자들이었다"고 보도했다.

 

<호주 AOL>에서 보도한 집회 참가자 숫자는 환영 3만명, 반대 2만명으로 한국 언론에서 보도한 숫자보다 약간 많았다. 그러나 환영집회의 분위기를 성조기를 흔드는 기도회 정도로 스케치한 반면, 반대집회에 대해서는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큰 충돌이 발생했다고 상세하게 보도했다.

 

집회 현장에서 취재한 버트 허만 기자는 시위대 체포 소식을 전하면서 "경찰은 시위에 참가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거리로 진출하는 시위대를 향해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호주 AOL>은  "나한테 반미정서(Anti-U.S. sentiment)는 없다, 다만 부시를 반대하고 이명박을 반대할 뿐"이라는 반대 집회 참가자의 말과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해서 한국을 도왔다, 미국은 적이 아니다,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죽을 것(Without the U.S., we will die)"이라고 말한 환영집회 참가자의 말도 함께 전했다.

 

 부시 환영 집회를 상세히 전한 호주 AOL.

부시 방문해도 호주에선 성조기 든 시민 구경하기 힘들어

 

한국의 '부시 환영 집회' 뉴스를 접한 기자는 호주 사회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6일 오전 '스톱 부시 연합(Stop Bush Coalition)' 사이몬 커니치 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커니치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 부시 대통령의 한국 방문 뉴스를 접했는가?

"서울에서 부시 대통령을 환영하는 집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자세한 보도를 읽지는 못했다."

 

-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나?

"한국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세계의 절대 다수가 그를 전쟁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개인도 아닌 수만명이, 그것도 시청광장에서 그런 집회를 할 수 있나?"

 

- 부시 환영 집회 참가자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는데.

"그 부분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코멘트다." (커니치 회장은 기자에게 "혹시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시 대통령의 대테러전쟁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막연한 무슬림 반대 정서가 작용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호주에서는 왜 그렇게 부시 반대 시위가 크게 벌어졌다고 생각하나?

"그는 수많은 양민을 죽게 만든 전쟁 범죄자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답시고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가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건 전 지구인의 재앙이었다."

 

- 그건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부시를 더욱 반대한 것이다. 부시 반대 시위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이어서 '부시의 두번째 푸들' 노릇을 한 존 하워드를 반대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부시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사이몬 커니치 회장.

"환영 집회 나온 기독교인들, 같은 교인으로서 안타깝다"

 

서울의 부시 환영 집회가 기독교인 주도로 이뤄졌다는 뉴스와 관련해, 이스트 킬라라 호주연합교회(East Killara Uniting Church)에서 호주 현지인을 상대로 목회를 하는 이영대 목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 부시 환영 집회 뉴스를 접했는가?

"인터넷으로 읽었다. 이명박 정부가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한국을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어 우울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1966년, 서울에서 존슨 대통령 환영을 위해 나온 백만 인파 중의 한 명이어서 더욱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 왜 하필이면 기독교인들이 그런 집회를 주도했다고 생각하나?

"개인 의견이라기보다는 교회 측의 강한 권유를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방한을 환영하기 위해 강남 지역의 공무원도 부시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가에 동원됐다는 뉴스를 읽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교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무튼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깝다."

 

- 대한민국 국익을 위한 집회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건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무분별한 행위였다. 킬라라 호주연합교회에 출석하는 호주 현지인 신도가 그 얘기를 들으면 당장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 그동안 시드니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계속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소식을 몰랐던 첫 집회만 빼고 그 후 아홉 차례의 집회에 전부 참석했다. 아마 해외에서 매주 빠지지 않고 10차 집회까지 여는 케이스는 시드니가 유일한 것 같다. 앞으로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비판할 계획이다."

 

 성조기를 불태우려는 젊은이들.

친미-반부시의 나라, 호주

 

자체 방위력을 100% 갖추지 못한 호주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도움이 꼭 필요한 나라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일본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던 위기에서 호주를 구해준 나라도 미국이었다. 남태평양 코랄해전에서 일본 함대를 침몰시킨 미드웨이호가 구체적인 사례 중의 하나다.

 

그런 연유로, 호주 국민 80% 이상이 미국이 호주의 안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유사시에 미국이 호주 방위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는 신뢰감 또한 약 75%에 달한다(시드니대학교 미국학센터 설문조사 결과).

 

뿐만 아니라, 호주는 앵글로색슨 혈통이 주축이 된 영어권 국가 중의 하나로 영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위 다섯 나라가 전 세계의 특급 정보를 공유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다.

 

그러나 호주 국민 73%는 호주가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적극 참여해 이슬람 국가들의 테러 표적 국가가 됐다고 믿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호주가 더 자주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약 50%에 달했다. 26%이던 1975년의 약 두 배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지만 "부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불신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거기에다 '미국의 이익과 슈퍼파워를 지닌 초국가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부시 독트린'을 반대하는 호주 국민 감정도 한몫했다.

 

호주 국민 중 72%가 미국을 좋아하지만, 64%는 부시 대통령을 싫어한다는 '친미-반부시 정서'가 팽배한 것. 오죽하면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의 재선을 원하는 호주 국민이 28%에 불과했을까.

 

2007년 10월, 부시 반대 시위에 참가한 데이비드 마 <시드니모닝헤럴드> 논설위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호주 국민의 반부시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거짓 정보를 이용해 전쟁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수많은 이라크 국민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호주가 그를 싫어하는 첫번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게다가 FTA와 세계화 문제, 지구 온난화 문제, 부시 개인의 오만한 태도 등을 거론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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