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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전국민 책읽기 운동의 일환으로 매달 10종씩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 발표하고 있습니다. 간행물윤리위에서 각 분야별로 선정한 8월 추천도서를 추천사와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문학]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9000원

 

박경리의 유고시집이다. 어머니라는 시의 한 대목을 읽다가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 사별 수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 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어머니로 인식되고 있는 박경리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 다녔구나… 그랬구나. 그리 강인해 보이던 그도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었구나. 살아계실 적에 그리 어려워만 말고 잘못을 저지르면서라도 좀 더 가까이 갔었어야 했었구나 싶은 뒤늦은 깨달음.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라는 제목은 박경리가 타계하기 바로 전에 발표했던 '옛날의 그 집'의 마지막 시행이다. 유언인 셈이다. 이 시집엔 39편의 시편이 모여 있다. 거의가 미발표 신작시로 이루어져 있으니 흔한 말로 국민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작 <토지>를 쓴 작가의 마지막 육성이 시어로 탄생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에두르지 않고 생을 뚫고 지나가는 보편적인 언어들이 그러나 섬광 같이 오롯이 모여 있다.

 

삶이 불행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박경리는 어느 자리에서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이 시들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쓸 때엔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여성의 육체와 정신으로 벅차게 치러내야 했던 박경리도 글 쓰는 순간에서 불행보다는 행복을 느꼈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시가 그에게 그런 행복의 순간을 던져 주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명이 있을 때 그 말을 했으니 범인 같으면 자신의 마지막으로부터 몇 해 전인지는 알 수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시를 읽다 보면 박 경리는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시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라고 썼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역사]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384쪽 | 1만5800원 

 

일본이 칼의 나라이자 무사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붓의 나라이자 선비의 나라였다. 일본이 무(武)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문(文)의 나라였다. 그래서 조선은 책을 숭상하고 독서를 권장했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독서를 권장했지만 그런 책들은 모두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성리학 서적뿐이었다. 체제 바깥의 책들은 거꾸로 억압당했다. 중종 때 어득강(魚得江)은 여러 차례 서사(書肆:서점) 개설을 주장했으나 거부당했다. 서적 유통을 위험시하는 권신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또한 필화사건도 적지 않았다. 영조 때에는 태조 이성계의 조상을 잘못 기재한 <명기집략(明紀輯略)>이라는 청나라 주린(朱璘)의 역사서가 유포되면서 여럿이 사형 당했는데, 조선 후기 유재건은 <이향견문록>에서 '나라 안의 책장수가 모두 죽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은 또한 여성들의 독서를 금지시켰으나 여성들은 몰래 책을 돌려봤다. 그래서 조선에는 독자가 필요로 하는 책을 대신 필사해 주는 임사(賃寫)라는 직업이 생기고, 도서대여점이라 할 세책점(貰冊店)까지 생겨났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은 13가지의 테마로 살펴보는 '책으로 보는 조선사'라고 할 수 있는데, 필자가 고전 문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점에서 재미를 따라 읽다보면 전문적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아홉의 '유교사회의 희생양, 불살라진 소설들'의 부제는 '조선의 여인들, 비밀결사처럼 숨죽이고 소설을 읽다'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 책은 많지만 독자가 없는 시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는 지금의 출판인들로서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갔으면…"이라고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시대의 책 이야기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철학]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 강영안·표정훈 지음 | 효형출판 | 286쪽 | 1만4000원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출판 평론가 표정훈이 대학 시절 배웠던 강영안 교수를 찾아 던진 물음이다. 다시 돌아온 학생은 예전의 강의 노트를 펼치면서 독자를 대신하여 철학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선생은 자신이 철학으로 들어섰던 길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학문 속에 정리된 철학사의 이정표들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계속 이어지는 대담 속에는 끊임없이 철학의 의미를 물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던 한 철학자의 땀 냄새가 배어있다. 이 책은 강영안의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열정적인 인생 속에 반짝이는 책과 사상과 개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대학에서 철학은 개인적 삶과는 무관한 이론이 되었지만, 옛날로 갈수록 철학과 인생은 따로 놀지 않았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한다는 게 얼마만큼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마찬가지로 철학에 대한 물음은 하나의 대답에 의해서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답과 더불어 분화되고 여럿의 새끼를 친다. 히드라 같은 괴물을 생각하면 좋고, 이 통제 불가능할 것 같은 물음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헤라클레스 같은 괴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철학에서 그런 능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스스로 갈구하므로 오히려 길어지는 어떤 의도되지 않은 방황 속에 쌓여간다. 강영안은 철학이 학문적 논증인 동시에 삶의 방식일 수 있음을 믿었던 저자이고, 요즘은 보기 드문 그 아름다운 일치의 이상 속에서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철학자이다.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정치]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 | 서경석 지음 | 아지북스 | 140쪽 | 1만원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는 정치가와 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도 광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이버 공간과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에 적절한 책이 바로 서경석의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이다.

 

흔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거와 여의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권력은 도처에 있으며 우리 주변의 모든 공간들이 바로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민주주의가 다툼을 하는 장소이다.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신문사와 방송국과 같은 언론사, 우리가 공부하는 학교, 교회와 성당, 절과 같은 종교기관, 시청 앞 광장과 같은 광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그리고 아고라 같은 사이버 공간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연관이 되어 있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어려울 수도 있는 이 문제를 한국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그것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체와 다양한 사진과 삽화 등을 동원해, 쉽게 풀어 쓴 것이 돋보인다. 한마디로, 촛불시위를 바라보며 시민들이 반드시 한번 씩 읽어보아야 할 21세기용 민주주의 교과서이다. - 추천자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제·경영]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 아마티아 센 지음 | 원용찬 옮김 | 갈라파고스 | 204쪽 | 9800원 

 

언제부턴가 한 나라의 지도자 이름 또는 애칭과 경제학을 의미하는 영단어 이코노믹스(economics)의 합성어가 일상의 어휘로 등장하였다. 닉스노믹스, 레이거노믹스, DJ노믹스, MB노믹스 등 수없이 많기도 하다. 그 지도자가 펼친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명 경제학자의 경제이론이나 사상을 나타내는 합성어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 원용찬 교수는 199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을 너무나 숭상한 나머지 '센이 이룩한 경제학'이라는 의미로 센코노믹스(Senconomics)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센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직전부터 직후까지 싱가포르, 뉴욕, 뉴델리, 동경, 캘커타 등에서 행한 연설을 번역한 후, 책의 앞부분과 뒤 부분에 옮긴이 해제 '아마티나 센을 말하다'와 옮긴이의 말 '센코노믹스, 너무나 인간적인 통섭의 경제학'을 덧붙인 것이다. 다섯 도시에서 행한 연설은 센의 사상과 경제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잘 보여준다. 그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빈곤을 넘어, 아시아를 위한 발전전략을 모색하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는 존재하는가?'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왜 인간의 안전보장인가?' '기초교육은 인간의 안전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모두 다 원용찬 교수가 센의 속마음을 읽고 직역하기보다 의역한 것이다. 예를 들면, 첫 강연의 원제목은 '위험을 넘어서'(Beyond the Crisis)이지만, 강연의 내용에 따라 제목을 '빈곤을 넘어'로 약간 바꾼 것이다.

 

인간은 기계적으로 효용을 극대화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공리주의에 입각한 기존의 경제학은 완벽하지 못하다든가, 어느 누구도 손해를 안 보면서 누군가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는 없는 상태를 '파레토 최적'이라고 부르는 기존 경제학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명쾌한 통찰력(insight)을 제시하는 센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센의 방식대로 경제학을 하고 그의 방식대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리고 바람직한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 추천자 : 정운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 사이버트렌드 2.0 | 김종길 지음 | 집문당 | 480쪽 | 1만8000원 

  

정보통신 기술이 풍미하는 미래사회는 분홍빛 유토피아일까 암울한 디스토피아일까? 현재로서는 두 가지 측면 모두가 혼재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일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휴대폰으로 길을 찾고, 웹캠으로 동화상을 올리는 등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교류로 삶의 편익이 대폭 증진되고 있는 반면, 스팸 메일이나 인터넷 중독 혹은 사생활 침해와 같은 새로운 골칫거리가 가중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까닭이다.

 

<사이버트렌드 2.0>은 정보화 단계의 제2기에 해당하는 '고도 정보사회(high information society)'의 동인, 성격, 전개과정 및 파장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탐지함으로써 기술사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융합학문'으로서의 사이버사회학의 가능성을 주지시키자는 의도 하에 기획된 완숙한 역작이다. 정보화의 촉진과 함께 상호의존성이 높아가는 연결망 사회가 도래한다는 서론에 이어 문화, 경제, 정치, 사회운동, 사회문제 등에 관한 정교한 논의를 거쳐 개방적 소통사회라는 테마로 종결되는 책 전체의 구성과 내용이 대단히 다채롭고 견실하다.

 

정보사회의 미래를 논한 외국 저작은 지금까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왔으며, 그 덕에 토플러, 나이스빗, 네그로폰테, 길더 등과 같은 학자들이 앞 다퉈 초빙되어 고가 강연료를 챙겨 돌아갔다. 정보화 선진국임을 자찬하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제 지적 사대주의의 미몽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전조의 하나로 평가되는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독자들께 권한다. - 추천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과학] 천문대 가는 길 | 전용훈 | 이음 | 304쪽 | 1만5000원 

  

큰 맘 먹고 방학 때 천문대를 찾아보려는 사람들 마음 속 이정표엔 천문대가 가장 크게 그려져 있을 것이다. 천문대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겠단 일념으로 거친 산길도 한 걸음에 달려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천문대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풀과 돌, 과거의 역사, 그리고 그 고장의 문화에 눈과 귀를 열라고 귀띔한다.

 

강원도 영월 봉래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별마로 천문대. 반구형 천장에 밤하늘을 투영한 '플라네타륨'에서 천체운동의 원리와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로 별의 친구가 되기 위한 준비 를 마친다. 일반에 공개되는 망원경 중 구경이 가장 큰 지름 800mm 망원경으로 16등성 까지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저자는 천문대 앞마당에서 볼 수 있는 천구의, 앙부일구, 파라볼라 집음기도 눈길을 주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영월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종의 유배지 청룡포를 휘감고 있는 단종의 슬픈 인생사, 조선의 역사 단편을 들려주면서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문인석만이 호위하는 까닭을 설명한다.

 

우리나라 남단의 이국적 섬, 제주의 서귀포천문과학문화관을 찾는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 담팔수를 만나고 대정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에서 부잣집 아들 티를 내는 추사의 인간적인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더불어 추사가 원나라 때 주세걸이 저술한 수학사의 명저 '산학계몽'을 청나라 고증학자인 완원에게 전해준 이야기도 들려준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천문학을 전공한 전통과학자인 저자의 천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쉬운 글로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천문대 주변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독자들의 천문대 가는 여정에 가까운 친구가 될 듯하다. 전국 10개 천문대를 직접 발품을 팔며 글을 쓴 저자의 바람대로 독자들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천문대로 출발하길 희망해본다. - 추천자 : 장경애(과학동아 편집장)

 

[예술] 히치콕 : 공포의 미로 혹은 여행 | 진 아데어 지음 | 권혁정 옮김 | 나무이야기 | 226쪽 | 1만2500원 

  

한 여름이 되면 모든 매체가 시원하고 오싹한 여름밤을 선사하기 위해 특집 프로그램들을 만든다. 그 중에 히치콕의 영화를 시리즈로 재상영하는 영화채널은 언제나 환영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전설적인 영화 <사이코(psycho)>를 보기 위해 1960년 미국 전역의 극장을 메웠던 영화 팬들처럼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면 나는 TV에 딱 달라붙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이코>가 전설의 명작이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죄와 양심, 믿음과 의심, 현실과 환상의 갈등을 놓지 않는 치밀한 대본,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 독특한 카메라의 움직임 방식, 연속촬영의 기법 등등, 히치콕의 대가다운 면모가 이 영화에서 아낌없이 발휘되어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히치콕이 공포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어렸을 때 집에서 잘못한 일 때문이다. 아버지가 장난삼아 아는 경찰서에 부탁해 히치콕을 야단치고 몇 분 가두었다 보내라고 한 것이다. 취학 전의 히치콕에게 공포의 감정과 심리는 이때 너무도 생생하게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이다. 일생 경찰을 무서워했던 히치콕, 혹시 무슨 사고라도 만날까봐 늘 조심하면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자 했던 히치콕의 성격은 어린시절의 이 같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학교도 대충 다니고 15살부터 시작된 직업생활 중에 돈 없는 히치콕이 유일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는 싸구려 무성영화를 볼 수 있는 허름한 극장이었다. 히치콕의 영화를 이루는 소재는 공포요, 그 기술에 대한 공부는 가난한 시절 보았던 무성영화였다. 영화감독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에 그가 입문한 것 역시 극히 우연한 기회였다. 다만 그 한번의 기회에 그는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재능을 혼신을 다해 발휘했던 것이다. 이 책은 히치콕의 영화를 전문적으로 분석해온 종래의 히치콕 서적과는 달리, 마치 그의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히치콕의 삶과 영화작업을 잘 엮어놓은 재미있는 책이다.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교양] 유럽의 걷고 싶은 길 | 김남희 지음 | 미래인 | 324쪽 | 1만3800원 

  

폭염과 폭우가 반복하는 날씨다. 그런데 속에서는 불이 올라온다. 망할 놈의 기름값 때문이다. 왜 기름값이 오르는데 맘은 죄들고 열불은 터져 나오는 것인지….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생계에 매인 몸이 그럴 수도 없고. 이때 제대로 된 여행책 하나 걸리면 최고련만 개인 블로그 풀어놓은 그렇고 그런 기행문들만이 흔하다.

 

'도보여행전문가' 김남희씨의 <유럽의 걷고 싶은 길>도 처음에는 유럽이라서, 그리고 관광지 기행이 아니라 '걷고 싶은 길'에 관한 책이라고 집어 들었다. 오랜 만에 선택은 큰 성공이었다. 이탈리아 땡볕을 걷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런지 훨씬 실감이 왔다. 이탈리아 스페인의 땡볕을 몇 시간씩 걸어본 적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우선 유럽 대륙에서 족집게처럼 '걷고 싶은 길'을 제대로 골라낸 안목이 부럽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잉글랜드. 충분히 글만 써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필력과 생기발랄한 한국 여성의 거침없음이 책읽기, 아니 걷고 싶은 길 걷기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2000년 1년 동안 독일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단체여행뿐인데 일본인들은 혼자 혹은 커플끼리 자유롭게 도시 구석구석, 심지어 현지에 한동안 살아봐야 할 수 있는 교외의 보석 같은 휴양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혼자 '우리는 언제쯤이면 저런 여행객들이 나올 수 있을까'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10년도 되지 않아 훌쩍 그 단계도 뛰어넘는 것 같아 독서의 즐거움에 미묘한 민족주의적 쾌감도 느꼈다.

 

이 책의 강점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데 있다. 걷는 여행에 사람이 빠질 수 없다. 여로(旅路)에서 만난 가지각색의 사람들 이야기는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책을 덮을 때쯤이면 폭염과 폭우도 고맙다. 그 덕에 읽은 이 책으로 인해 어느새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자신의 안목이 쑥 자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이 최고의 교양이다.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기자)

 

[아동] 오늘은 기쁜 날 | 공지희 글 | 윤정주 그림 | 낮은산 | 60쪽 | 7500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작가 공지희는 준서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리 혹독한 현실에서라도 '오늘은 좋은 날',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준서는 새로 만난 짝꿍이 맘에 들어서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말한다. 술만 마시는 준서는 일 년 반 만에 만난 엄마와 여동생 은지와 함께 자장면을 먹고는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은지를 집에 두고 영영 가버린다. 준서는 슬프면서도, 동생하고 같이 살게 된 게 좋아서 웃는다. 그런데 그만 아버지가 아이 둘을 두고 나가버린다. 요컨대, 아버지가 술만 마시고 일을 하지 않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마저도 집을 나가자 준서는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표지를 보면, '거지' '바보'라고 쓰인 칠판을 보는 배낭을 멘 남자아이의 뒤통수와 함께, 저 멀리 층계를 내려오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배낭에 노란 가방을 맨 남자아이 모습이 보인다. 짝이 된 자기와 추미영을 놀리는 글을 보고 있는 준서, 그리고 추미영을 도와주는 준서의 모습이다. 준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줄 몰랐다"라고 말한다. 힘들게 살면서도 슬퍼하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아이. 언제까지나 이 아이가 착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많은 것들이 참으로 고맙고, 기쁜 것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방정환, 현덕, 이원수 작품에 등장하는, 가난해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는, 주인공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 짧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 추천자 : 엄혜숙 / 이상교(아동도서 연구가 / 아동문학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2008)


태그:#박완서, #철학, #히치콕, #민주주의,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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