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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일본인인 야마다 다까꼬(山田貴子) 시민기자로부터였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인천에 살고 있는 야마다 기자는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일본에 열심히 알리는 기자지만, 때로 한국 <오마이뉴스>에도 일본의 소식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재팬> 오오타니(大谷) 기자님의 특별한 부탁으로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오오타니 기자님의 기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인들이 일본 고유의 문화로 알고 있는 것들까지도 한국이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한국인들을 보고, 바로잡기 위하여 쓰신 기사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스모나 다도, 합기도, 유도, 음식 등인데, 특히 일본 검도까지도 한국의 기원설을 주장하는 것을 보며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대해 우광환 기자님의 의견을 특별히 여쭙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재팬>의 오오타니 시민기자는 평소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뜻한 바 있어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는 그는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정력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일 시민기자 교류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무엇이든 긍정적인 사고를 펼치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맹목적 자국 이기주의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사고방식 같은 것은 당연히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의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언가 특별한 해법을 찾기 위해 애쓰면서, 그럴수록 양국 사람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야마다 기자의 메일내용을 보고 그의 기사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에서 오오타니씨는 근거없는 '어느 한국인'의 주장을 통박했다.
▲ <일본오마이뉴스>에 실린 오오타니씨의 기사 기사에서 오오타니씨는 근거없는 '어느 한국인'의 주장을 통박했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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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있는 일본인을 화나게 한 어느 한국인의 주장

'어째서 한국 기원설을 주장하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 첫머리는, 최근 불거진 독도 문제 때문에 자매결연한 일본과 한국 각 고장들 간에,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해 예정됐던 학생 교류가 중지된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각 고장들이 독도 문제로 인해 양국 국민감정이 좋지 않아 올해의 행사 취소, 또는 연기를 일본 쪽에 통보해 왔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일 교류사업'을 기대하던 아이들에게 심히 유감스럽게 되어 버렸다. 정부 차원에서의 '독도문제'와 시민 차원에서의 '교류 사업'은 별개의 것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한국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소박한 의문이 한 가지 든다. 한국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는 오오타니 기자가 평소와는 달리 작심하고 기사를 썼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기사 내용에서 그는 언론이나 인터넷 등 각 매체를 통해 평소 한국인들이 일본 고유문화까지도 그 뿌리가 대부분 한국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소개하며 이렇게 개탄했다.

"한국인들이 (일본 고유문화에 대해) 근거도 없는 '한국 기원설'을 주장함으로써 스스로의 입장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그런 몰염치하고도 자만에 빠져있는 행위는) 이런 문화를 낳은 (우리의) 선조들까지도 바보취급 하는 것이다."

나는 당장 의견을 써서 보내주었다. 무엇보다도 오오타니 기자 같은 양식 있는 일본인까지도 화나게 한 '어떤 한국인'이 원망스러웠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본의 문화라면 대부분 한국 기원이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건너간 문화가 더러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도 일본은 고대부터 한국보다는 중국과의 소통이 더욱 활발했습니다. 일본이 전래받은 문화가 한국보다 중국 쪽이 더 많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러나 일본 '현대검도'의 경우는 일본 자체적으로 생성된 것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일본의 현대검도가 일제 때 한국에 보급되어 현재 한국검도의 원류가 되었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검법으로는 '조선세법' 또는 '본국검법'이라고 있는데, 본국검법이라는 것은 일본검도와 특별히 구분 짓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 외에 스모나 유도, 합기도, 다도(茶道) 등도 한국기원이라는 것은 저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양식있는 일본인까지도 화나게 한 '어떤 한국인'이 원망스러웠다.
 양식있는 일본인까지도 화나게 한 '어떤 한국인'이 원망스러웠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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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자만심은 더 큰 모욕으로 돌아옴을 알아야

물론 불교나 한자, 건축기술 같은 것은 일본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한국기원'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유하게 발전시킨 여러 문화까지도 무조건 한국 기원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 일본에 전해준 여러 문화들 역시 대부분 한국에서 창조된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우리 역시 중국이나 그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에게서 전해 받은 소중한 문화들을 더욱 계승 발전 시켜 왔듯이 일본이라고 해서 전혀 그런 면이 없을 리 없다. 다시 말해 이제는 각자의 고유문화로 뿌리 내렸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 유럽 문화가 로마 문명에서 파생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스페인이나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게 그런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마 역시 신화와 군대조직, 건축술, 도로포장술 등을 포함한 대표적이고도 굵직한 기본문화는 그리스나 오리엔트에서 따온 것들이 많은 상황이다. 이제 와서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서 배우고 가르쳤다고 우길 것인가.

값 없는 자만심은 이웃을 불쾌하게 만든다. 일본의 명치 시절이나 한국의 일제 때, '하이칼라'로 대표되는 서양물 먹은 사람들의 천박한 자만심은 지금도 사회풍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아무리 이웃에게 답답하고 할 말이 많다 해도, 서로의 자존심까지 건드리면 돌아오는 것은 더 큰 모욕뿐이다. 더구나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양식있는 사람들까지도 맥 빠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한국은 종군 위안부, 과거사 문제, 독도문제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자기주장을 말할 뿐, 대부분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양쪽은 오랫동안 가깝게 살았음에도 서로를 너무 모른다. 뿐만 아니라 더욱 무서운 것은 서로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웃과 소통을 못하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게다가 이사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웃과 서로를 헐뜯기만 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양국의 시계가 다시 20세기로 회귀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태그:#일본문화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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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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