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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반성할 생각을 해야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 참석하여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 참석하여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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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앞에 두고 김우남 민주당의원이 혀를 찼다. 김 의원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선 "이명박 대통령도 2번이나 뼈저린 반성을 했는데…"라는 탄식이 흘렀다.

그만큼 이날 보여준 정운천 장관의 태도는 그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던 그의 모습이 이날 회의장에선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쇠고기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 잘된 협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장관은 이날 확실히 한나라당과 코드를 맞춘 듯했다. "이번 협상은 노무현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바람을 잡아놓은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꺼내들었다. 모두 발언에서 야당의원들의 항의에도 아랑곳 않고 노무현 정부를 탓했다.

정 장관을 비롯해 이날 특위에 출석한 농식품부 관계자들은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그런 말 듣기가 그렇다", "듣기 거북하다"고 맞받아쳤다. 촛불이 잦아든 후, 검찰과 경찰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반격'에 농림수산식품부가 뒤늦게 편승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이런 뻔뻔한 자세로 나왔기에 이날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의 발언으로 인한 특위 중단은 예고된 것이었다.

민동석 "쇠고기 협상은 미국의 선물"

지난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의 수석대표였던 민동석 정책관은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과의 질의응답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은 우리가 미국에게 준 선물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쇠고기 협상 결과가) '숙박료'라는 말은 듣기 거북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한미 쇠고기 협상은 잘 된 협상"이라는 항변이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선물을 받고 잘했으면 훈장을 줘야지, 왜 청문회를 하겠느냐, 국회와 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대목에서 일부 의원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고, 급기야 회의는 중단됐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동석 망언'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적 망언이다, 쇠고기 협상 수석대표로 협상 타결의 장본인인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도대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성토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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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장관의 발언도 '민동석 망언'에 뒤지지 않았다. 그는 "이번 합의는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한 지난 2006년 합의에 비해서 약화됐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 두 사람의 답변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쫓겨나는 게 매우 억울하다는 투였다. 정 장관은 이를 '노무현 정부 탓'으로 돌렸다. "4월 18일 협상은 노무현 정부의 기조에 따라 했지만 국민의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권의 모든 걸 도외시하면서, 이건 왜 착실하게 이어가느냐, 설거지론 운운하는 건 부끄럽다"고 혀를 찼다. 한미 쇠고기 협상 책임부처 장관의 이러한 발언이 보기 민망했는지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도 한마디 했다.

특위의 한나라당측 간사인 이사철 의원은 "노무현 정권 탓만 하지 말자"며 "노무현 정권이 엉터리 정책을 수립했고, 그 안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 안이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 비춰질지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운천 "PD수첩 때문에 수천명이 나에게 매국노라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지난 6월 10일 저녁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리는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경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세종문화회관 방향 골목길로 급히 피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지난 6월 10일 저녁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리는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경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세종문화회관 방향 골목길로 급히 피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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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장관의 '남 탓'은 노무현 정권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PD수첩>도 겨냥했다. 그는 "공영방송은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것"이라며 "6월10일 시청 앞에 갔는데 수천명이 매국노라고 했다, <PD수첩>이 날 명예훼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발끈한 김우남 의원은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며 "존대해주고 싶은데, 물러가면서 구질구질한 변명을 한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정 장관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정 장관은) 이미 대통령으로부터 문책 받았다. 회복할 명예가 있으면 PD수첩이 아니라 대통령을 고소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농식품부의 식품 안전을 위한 노력을 폄하하고 치명적인 손상을 가해 본인과 가문의 명예를 침해했다고 말이다.

당신이 잘했으면 훈장 받아야지, 왜 경질이 됐겠나. 당신은 이미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비겁하게 PD수첩 수사의뢰하고... 반성할 생각을 해야지."

정운천 장관은 PD수첩 수사의뢰를 취소하지 않겠다며 "사실을 증명할 때가 된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거듭 '억울함'을 주장했다.

농식품부의 뻔뻔함에 느껴지는 허탈함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수정안을 관보 게재한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가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수정안을 관보 게재한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가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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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의 뻔뻔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운천 장관과 민동석 정책관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에는 적극 호응하면서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대해서 각을 세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질문하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은폐하고 있다, 자료 제출도 97건 중 73건을 어제 보내왔다"며 "국정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 장관과 민 정책관이 이날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나와서 한 말을 간추리자면, 지난 4월 한미 쇠고기협상은 '잘 된 협상'인데, 일부 언론의 선동 때문에 왜곡되게 알려져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날 국회 답변을 들으면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깽판' 치는 게 아닌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국민 일반의 인식과는 너무도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하고, 문책경질 인사를 단행한 이명박 대통령을 욕보이는 행동이기도 하다.

지난 4월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3개월 간의 '촛불정국'을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와 관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마저 뺏어가는 졸렬한 발언들이었다.

이런 주장이 정부 내에서 어느 정도 정리된 입장이며, 한나라당과의 조율은 거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정부 대표로 국회에 나와 이런 발언들을 쏟아냈다는 사실이다.

이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면 그동안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한 반성과 쇄신의 다짐은 다 무엇이었나? 조금 상황이 변했다고 약삭빠르게 표변한 정부의 모습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태그:#미국산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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