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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50일째 되던 지난달 30일, 집회를 마칠 무렵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단식농성자 2인에게 관을 올려보냈다.
 단식 50일째 되던 지난달 30일, 집회를 마칠 무렵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단식농성자 2인에게 관을 올려보냈다.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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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관을 올리는 것은 동지의 몸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관에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담아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기륭전자 지난 4년의 세월, 자본도 비조합원도 조합원도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었던 세월을 담아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정문 앞은 난데없는 관(棺)의 등장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소연(39) 분회장, 유흥희(39) 조합원에게 올리는 관이었다.

복직투쟁 1072일 되던 이날 '단식농성 50일차 결의대회'가 열린 오후 5시 경의 풍경이다.

'(단식) 50일이 넘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기륭이 결정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은 경비실 옥상 위, 두 단식 농성 노동자에게로 올라가는 관을 바라보며 눈물을 찍어냈다. 전날의 소동 탓이었을까. 의식은 어느 때보다 장엄했다.

최동렬 회장이 연출한 기막힌 장면

 단식 농성자들이 있는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 자리잡은 관. 그 아래로 경찰 버스 두 대와 서른 명 남짓한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단식 농성자들이 있는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 자리잡은 관. 그 아래로 경찰 버스 두 대와 서른 명 남짓한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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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29일 오전 10시경, 관할 금천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의 난입이 빚어낸 소동. 두 단식 농성자들에 체포영장을 고지한 형사들은 한동안 조합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철수했다.

지난 23일 김소연·유흥희씨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것이다. 49일째 단식으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두 여성 노동자에게 형사들은 체포영장을 들이대며 "조사를 받으러 나오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강제집행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돌아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며칠 뒤인 지난달 28일 월요일부터 기실 기륭전자 주변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집회가 있는 날에만 간간히 보이던 경찰들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비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기륭전자 마당에는 두 대의 경찰버스와 30여 명의 경찰들이 도열해있었다. 두 단식농성 노동자들이 언제 연행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을 암시하는 듯.

7월의 마지막 날, 결의대회 다음날인 31일에는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이 출근하던 오전 9시. 조합원들은 최 회장이 타고 있는 승용차를 둘러싸고 대화에 응할 것을 호소했다. 최 회장은 그러나 꿈쩍도 없었다. 조합원들을 밀어낸 것은 잠시후 달려온 기륭전자 임원진과 구사대였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음을 바꿨는지 돌연 승용차에서 내린 최 회장이 한 여성 조합원의 팔목을 꺾어 내동댕이 쳐버린 것. 최 회장의 돌발행동에 아연실색한 조합원들을 뒤로 하고 최 회장은 회사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가 싶었다. 감히 '회장님의 행차'를 막아선 조합원들이 괘씸했던 걸까. 최 회장은 조합원들을 향해 덤벼들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말리던 부사장은 최 회장에 멱살이 잡혔고 발길질까지 당해야 했다. 구사대를 향해서는 '회사에 들어오지도 말라'는 엄포를 놓은 뒤에야 최 회장은 유유히 사라졌다. 회사 안으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모범기업인'으로 칭송되며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동행한 바 있는 최 회장은 이렇듯 의기양양했다.

프랑스 하원의원 라살의 39일 단식과 기륭 노동자들의 단식

8월 1일 오늘로 1074일이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공장 밖으로 쫓겨난 지. 그리고 52일이다. 이들이 살고 싶어 굶기 시작한 지.

장 라살의 사례가 떠오른 것도 52일이라는, 실로 '살인적인' 숫자 때문이다. 지난 2006년, 당시 프랑스민주동맹(UDF) 소속 하원의원이었던 장 라살은 지역구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39일간 단식투쟁을 감행한 인물이다.

일본 기업 '도요(Toyo)알루미늄'의 해외법인인 '토얄(Toyal)유럽'이 공장 이전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라살의 지역구인 피레네-아틀랑띠크에 자리한 토얄유럽은 지역 노동자 150여 명을 고용해 자동차 관련 상품을 생산해왔다. 이런 기업이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을 때 150여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그해 3월 7일 토얄유럽의 공장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라살의 단식투쟁은 4월 14일까지 계속됐다. 39일간 라살이 먹은 것은 물과 소금·비타민이 전부였다.

전날인 4월 13일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라살에 전화를 했고 도미니크 드 빌팽 당시 총리는 단식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이어진 14일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주재 일본 대사와 도요알루미늄 임원으로부터 공장 존속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39일의 단식으로 라살이 얻은 것은 지역구 노동자들의 일자리요, 잃은 것은 몸무게 21㎏이었다.

엄마가 끓어준 만둣국이 먹고 싶은 두 여자

물론 2006년의 토얄유럽과 2008년의 기륭전자 사이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다.

라살은 하원의원이었고 기륭 농성자들은 '한낱' 노동자에 불과하다. 라살은 정치인이라는 권위를 지녔으나 기륭 해고 노동자들이 가진 것은 맨몸뚱이 달랑 하나다. 라살의 단식에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총리, 내무장관이 개입했으나 기륭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총리도 내무부장관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차이다. 2006년의 토얄유럽과 2008년의 기륭전자는 똑같이 노동자의 밥이 달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조합원 10명이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30일을 넘기면서 조합원 4명이 쓰러졌다. 40일을 넘긴 조합원은 6명. 나이 쉰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30일~40일 동안의 단식을 배겨내기는 어려웠을 것. 방광염이 심각했던 오석순(43)씨의 경우 "당장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평생 투석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풀고 입원했다. 단식 48일만이었다.

 이들이다. 오늘로 단식농성 52일을 맞는 김소연(왼쪽), 유흥희씨
 이들이다. 오늘로 단식농성 52일을 맞는 김소연(왼쪽), 유흥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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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유흥희 두 사람만 남았다. 오늘로 단식 52일이다. 일주일 전에 몸무게를 재보니 12㎏이 빠졌더라며 김씨는 쓸쓸하게 웃는다.

이들이 하루 종일 섭취하는 것은 효소를 희석시킨 물. 혈당 저하로 인한 쇼크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란다. 살과 근육에서 빠져나간 영양은 이제 뼈에서 빠지고 있다. 영양결핍은 이들에게 부스럼을 선물했다. 머리에 목과 가슴에. 혈압 저하는 이제 신경쓸 겨를도 없다.

단식 50일이 가까워지면서 시작된 심장압박 증상 때문에 자주 숨이 가쁘다. 대화 중 유씨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유씨는 부쩍 복통을 호소한다. 옥상에 올라온 초기에 단 한번 생리를 했으나 이제는 그마저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도 유씨도.

오랜 단식으로 인한 장폐색 가능성을 시사한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은 만둣국이다. 엄마가 끓여준 그 만둣국. 그 날이 올까. 만둣국을 먹을 날이? 이들 옆에 놓여진 검은 관의 그림자가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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