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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분명한 패배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려 했던 이들에게는 패배였다. 누구는 눈물을 터뜨렸을 것이고, 누구는 쓰린 가슴에 소주를 들이부었을 것이다. 혹자는 '그럼 그렇지' 하는 냉소를 터뜨리며 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촛불 민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밤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다.

 

선거결과를 좀 더 뜯어보면, 소위 '강부자'의 승리였다. 촛불이 밀었던 주경복 후보는 17개 구에서 승리하고 8개 지역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 수치일 뿐, 강남구 한 곳에서의 압도적 패배가 전체판도를 뒤집었다.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강부자'들은 철저한 계급투표로 승리를 얻었다.

 

강남·서초·송파의 밤은 계급투표의 승리감에 환호성이 울려퍼졌을지도 모른다. 주경복 후보는 공정택 후보에게 2만2053표 뒤졌지만 강남구 한곳서만 공정택 후보에게 3만2776표 뒤졌다. 강남 표만 제외한다면 주경복 후보가 1만723표 앞선다.

 

 

촛불의 한계인가, 성과인가

 

촛불이 매달린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패배했지만 촛불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볼 수 있는 계기로 보인다. 촛불이 해낸 성과가 어디까지고, 해내지 못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짚어보는 것은 선거 패배 이후를 모색하는 데 중요하다.

 

강남·서초·송파구는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온 곳이다. 서울지역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는 강남·서초·송파 순이었고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이 지역의 위력이 그대로 입증됐다.

 

그러나 변화가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강남(66.4%), 서초(64.4%), 송파(57.8%)였으나, 공정택 당선자의 지지율은 강남(61.14%), 서초(59.02%), 송파(48.08%)로 모두 하락했다. 서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 정부의 종부세 완화 정책과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아지면 교육환경이 나빠진다'던 서울시 교육청의 입장이 강남·서초·송파 등 고가 아파트 지역에서 계급투표를 강화한 요소였임에도 지난 대선에 비해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다.

 

또한,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표심은 눈에 띄게 변화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의 모든 구에서 승리했고(100%), 지난 총선에서는 서울지역 48개의 선거구 중에서 8개를 제외한 40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다(83%). 그러나 공정택 당선자는 25개 구 중 8곳에서만 승리함으로써 서울지역 32%의 구에서만 승리를 거뒀다.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대결이 이명박 정부와 촛불민심 간의 대리전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서울지역에서 이명박 정부의 헤게모니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강남·서초·송파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타지역에서는 이미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인정하듯 이런 변화는 촛불이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는 결과다. 촛불시위가 처음 일어난 5월 2일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의 패배가 촛불의 패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촛불의 근본적 한계라기보다 3개월 동안의 성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척도일 뿐이다.

 

좌절할 것도 냉소를 머금을 이유도 없다. 지난 대선과 총선 이후, 한국 사회 보수화가 이제 겨우 긴 터널의 초입에 서 있을 뿐이라고 자조했던 현실은 급변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패배는 아직 촛불의 힘이 조금 모자랐을 뿐이다.

 

한계를 뛰어넘을 통찰력이 필요한 시기

 

이명박 정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교육자율화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양, 대기업 방송사 소유제한 완화 등 중앙의 권력을 유사 성향의 지방권력 혹은 시장권력에게 배분하려 하고 있다. 이에 반발하는 국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경찰관 기동대를 창설하고 언론장악에 나서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명박 정권은 언론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시장권력을 통해 통제하길 원한다. 국민이 반발하는 민영화를 국가가 추진하기 전에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지방권력으로 이양하고, 지방권력이 시장권력에게 이를 다시 이양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 또한 '분권'과 '자율'의 이름으로 시장권력에게 넘겨주고 있다.

 

이는 분권은 분권이되,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보수적 네트워크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실질적이고 안정적이며 장기적인 권력 장악이다. 이런 의도가 현실화된다면 그 어떤 권력이 탄생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튼튼하게 뿌리박힌 보수적 시장권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게 된다. 

 

'자율'과 '분권'의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전개되는 시장권력화를 저지하고 아래로부터의 시민권력을 창출시키는 것은 온전히 시민의 몫이다. 이런 의미에서 2년 후 지방선거는 정치·경제·시민사회에 촘촘히 뿌리박힌 보수적 네트워크와 이명박식 국가운영에 반대하는 촛불민심 간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격전의 장이 될 것이다.

 

촛불 시민이 주시해야 할 것은 '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을 통찰력이다. 이를 통해 현실의 한계와 문제를 파악하고 성과는 살리면서 긴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지역 68%개 구에서 촛불민심이 승리했다는 것은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촛불민심이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시 교육감, #교육감 선거, #선거패배,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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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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