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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살 된 베틀과 55세의 랄히씨.
 45살 된 베틀과 55세의 랄히씨.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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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만 남은 탓인지 랄히씨의 눈매는 유독 부리부리해 보였습니다. 인도 바라나시 슬럼가 중 하나인 바그와날라에서 이제 마지막 남은 사리 직조공인 랄히씨.

전통 인도 여성복인 사리를 짜온 지 45년째, 그의 나이는 쉰다섯입니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때 그는 사리를 짜기 시작했고,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직조공 기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자신이 짠 사리를 종류별로 보여주는 랄히씨. 눈동자에 생기가 넘칩니다.

랄히씨는 후진계급(OBC, Other Backward Class)에 속합니다. 한 때 인도 최고의 장인 중의 하나로 번영을 누렸던 사리 직조공들은 대부분 카스트제도 하에서는 최하계급인 달리트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쇠퇴해가는 계급'을 의미하는 후진계급이라는 이 호명은 오늘날 그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난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쭉 여기서 살았어요. 벌써, 그러니까 45년이 되었네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사리를 짜면서 살았어요. 내 형제 여섯 모두 사리를 짰지요. 지금은 다 죽고 나와 동생만 살아있지만요. 동생은 더 이상 사리를 짜지 않아요. 그냥 막노동꾼이랍니다."

"지금은 이 마을에서 겨우 두세 가구만 사리를 짜고 있답니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 거의 다 사리를 짰었지요. 모두 사리 짜는 걸 그만두고 (자전거) 릭샤를 끌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어요. 일감이 점점 줄어서 사리 짤 일이 없어요. 그것만 해서는 굶어죽으니까요. 나야, 다른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늙었지요. 그래서 그냥 사리만 짜고 살아요. 종일 사리를 짜도 하루에 10루피밖에 못 벌지요. 일감을 받으면 사리를 짤 비단이나 수놓을 이것저것들을 산답니다. 제가 직접 무늬를 놓지요. 난 어떻게 무늬를 놓는지 아버지에게 배웠어요. 그런데 요즘엔 재료값이 너무 올라서…."

 랄히씨가 짠 사리.
 랄히씨가 짠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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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는 남자가 짜고, 실패는 여자가 감고

랄히씨는 그의 사리 이력만큼이나 오래된 베틀을 보여주었습니다. 베틀과 함께 한 4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오래된 진흙집이 그의 작업실입니다. 가난한 슬럼인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이 이런 진흙집에서 삽니다.

랄히씨의 사리에 들어가는 또 다른 손과 발이 하나 있습니다. 수놓을 실을 골라 실패에 감고, 작은 장식이나 술도 골라놓는 손. 버려진 자전거를 이용해 실패에 실을 감습니다. 그녀는 아주 능숙한 숙련공이지요. 가난해져버린 사리공들이지만, 이곳에도 성별로 일이 나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사리를 직접 짜는 일은 남자들만 합니다. 여자들은 이렇게 실을 감는 일이나, 사리에 수를 놓거나, 다른 잔일들만 합니다. 남편과 함께 사리를 짜는 경우를 제외하고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사리를 짜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사리 직조공들과 카펫 직조공들의 가장 큰 가시적인 차이점입니다. 인도에서 사리는 남자들만, 네팔에서 카펫은 주로 여자들이 합니다. 네팔에서 크고 작은 카펫공장은 대부분 남성들이 운영하면서 카펫을 짤 여성들을 고용하여 생산합니다. 인도 직조공은 장인의 개념, 네팔 직조공은 노동자의 개념을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고물 자전거를 이용해 능숙하게 실패에 실을 감는 소녀.
 고물 자전거를 이용해 능숙하게 실패에 실을 감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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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대신 자전거 릭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마을에서 사리를 짰던 빠루씨가 사리 일을 접었습니다. 그래서 랄히씨가 이 마을에 남은 마지막 사리 직조공이 되었습니다. 어딘지 힘없어 보이는 빠루씨. 예전에 결핵에 걸려 치료를 받았지만 그 뒤로도 건강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먹는 것도 충분하지 않아 기운도 없고 며칠 전부터는 아예 일을 할 수 없어 집에 있습니다. 사리 짜는 일로는 입에 풀칠을 하기 어려워 얼마 전부터 자전거 릭샤를 끌고 다닙니다.

"초등 5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어요.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열 살 때부터 일해야 했지요. 사리 짜는 건 열여섯 살 때 배우기 시작했고요. 형제 둘도 사리를 짭니다. 형이 15년 전에 베틀을 10000루피를 주고 샀는데, 그걸로 함께 사리를 짰어요. 중간 상인이 원재료와 문양을 주면 한 5일 뒤 완성되지요. 그렇게 주문이 있을 땐 하루에 30~40루피를 벌고. 받은 돈은 모두 먹을 걸 사지요. 그것도 부족하지만."

바그와날라는 점점 더 슬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라나시의 한 인권 단체가 마을 아이들을 위해 교실도 짓고 수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의 생계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사리 짜는 베틀은 하루하루 먼지로 뒤덮이고 있고, 결핵이 이들의 건강을 침입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바그와날라보다 훨씬 더 번성했던 무슬림 사리 직조공 마을인 로타의 직조공들의 삶도 이처럼 몰락해가고 있습니다.

 빠루씨와 그의 아들, 뒤에는 자전거 릭샤.
 빠루씨와 그의 아들, 뒤에는 자전거 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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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슬림 사리 직조공들의 마을, 로타.
 무슬림 사리 직조공들의 마을, 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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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으로 고통스런 나날들, 무슬림 사리공

맑은 하늘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한 시간도 훨씬 넘게 떨어져 있는 이 마을. 이곳이 바그와날라 슬럼보다 훨씬 크고 잘 사는 마을임을 마을 입구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튼튼한 벽돌집들. 집도 더 크고, 길도 더 넓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약간 다릅니다. 남자들은 작은 하얀색 모자들을 쓰고 있고, 여자들은 검은색 사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있거나, 색깔은 다르지만 머리부터 온통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입니다.

숨술하크씨는 아이가 일곱이나 됩니다. 지난 3여 년 동안 결핵을 앓아온 그는 몇 달 전부터 베틀에 다시 앉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얼마 하지 못하고 지쳐버립니다. 숨술하크씨가 아팠던 3년 동안 아내 아크흐타리와 큰딸이 생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도 결국 몸이 아프게 됐습니다. 하루에 겨우 40루피로 아홉 식구가 먹고 살다보니 막내아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며칠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핵으로 야윈 숨술하크씨와 그의 베틀.
 결핵으로 야윈 숨술하크씨와 그의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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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없는 '무료 진료'

숨술하크씨는 정부가 사리 직조공들에게 지원하는 의료 지원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숨술하크씨는 2006년에 이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면 무료로 발급을 받아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공짜로 받는 무료'는 없습니다. 숨술하크씨는 이 카드 신청을 위해서 200루피를 마을 이장에게 지불했습니다. 각종 지원서나 제출할 서류를 이장의 손길 없이 준비하거나 제출하는 건 어느 마을에서나 불가능합니다. 이장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발급받은 카드는 해마다 갱신해야 하니, 어쩌면 매년 이런 뒷돈을 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뒷돈을 줘도 발급받는 데 한참이나 걸립니다. 하지만 숨술하크씨에게 선택이란 없습니다.

 아내 아크흐타리와 영양 부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막내아들.
 아내 아크흐타리와 영양 부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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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발급받은 의료카드로 병원에 가도 어찌된 일인지 무료가 아닙니다. 해당 정부 의료 기관은 마을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40루피나 주고 오토릭샤를 타야 합니다. 5루피는 진료 등록비, 5루피는 엑스레이 검사 수수료, 기타 2루피. 결핵 환자들은 많은 약을 먹게 되는데 이러한 약에 대한 비용도 부담해야 합니다. 이렇게 4개월 동안 치료받았지만 결핵은 아직도 몸에 붙어 있습니다. 그 유명한 결핵 퇴치 시스템은 왜 숨술하크씨에게 못가고 있는 걸까요.

"지난 2년 동안 사리 상인에게 8000루피를 빌렸어요. 아내와 막내아들이 아팠고, 나도 아파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죠. 아내와 아이는 5일 동안 입원했어요. 막내아들은 영양 부족 진단을 받았지요. 아이 치료를 위해 2500루피를 써야 했어요. 늘 먹는 걸 줄여서 돈을 아껴야했지요. 그리고 먹는 게 줄어드니 영양이 부족할 수밖에요."

엥겔지수 100을 넘어가는 사람들

식량 배급 카드는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곤 한계선 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카드입니다. 그러나 숨술하크씨가 소지한 식량 배급 카드로는 곡물을 구입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 정부는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연간 수입 1만2000루피를 기준으로 하여 생활환경(TV·냉장고 등 생활용품 구비 현황)을 조사한 뒤 빈곤 한계선 이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노란색 카드와 빈곤 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흰색과 빨간색 카드 중 하나를 발급합니다. 빨간색 카드는 극빈 가족에게 발행해 줍니다.

카드별로 발급 비율이 정해져 있어서 혜택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빈곤 한계선 아래에 해당되는 흰색과 빨간색 카드 소지자만이 해당 상점에 가서 싼값에 쌀·보리·설탕·연료기름을 구입할 수 있으며, 노란색 카드로는 연료만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40~50루피를 벌까말까 하는 수준이면 연수입이 1만 루피도 못 되어 빨강카드 발급대상이 될 수 있을 텐데, 생계가 악화되고 배고픔에 시달려도 당국에서는 배급 카드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바꿔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숨술하크씨의 식량 배급 카드에는 연수입이 1만8000루피로 적혀있습니다. 극빈층 생활을 하는데도 숨술하크씨가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버는 돈을 모두 식품을 구입하는 데 써야 하고, 부족할 때가 많아 돈을 빌려 먹을 것을 구입하고 있으니, 숨술하크씨 가족의 엥겔지수(전체 소득 중 식료품비 비중)는 당연히 100을 넘어섭니다. '엥겔지수가 100을 넘어선다'는, 모순으로 보이는 이 표현은 이들에겐 현실입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사실 엥겔지수 따위는 의미 없는 지표일 겁니다.

그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며 자신에게 사리 짜는 걸 가르쳤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15살 때부터였지요. 아버지, 할아버지, 증고조부 할아버지 모두 사리를 짰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우리는 먹을 것도 입을 옷도 충분했어요. 이틀에 한 번씩은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두 번이나 먹을까요.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숨술하크씨의 형은 이미 사리 짜는 일을 그만두고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나마 하루에 70루피는 벌 수 있으니까요. 그중 절반은 건설 고용주가 보증금으로 예치한다고 늘 가져갑니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숨술하크씨는 사리를 계속 짭니다. 로타 마을의 많은 사리 직조공이 일을 그만뒀고 절반 이상이 결핵에 걸렸거나 걸려 있습니다. 그래도 힘주어 말합니다. "기계로 짠 사리는 질이 너무 나빠요. 그 사람들이 다시 베틀로 사리를 짰으면 좋겠어요. 바라나시 사리 산업이 다시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요."

사리는 예술...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

 라자이씨네 진흙집과 가족들.
 라자이씨네 진흙집과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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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브람푸르 마을의 라자이씨도 사리 산업이 부활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하지만 가난해도 손님에게 굵은 설탕을 접시에 내놓습니다. 가난한 달리트들이지만 언제나 손님이 오면 마실 물과 함께 먹을 것을 내놓습니다. 비스킷, 알 수 없는 라면과자, 집에서 만든 스위트(남아시아 사회에서 대중적인 과자 혹은 디저트 음식으로 아주 달콤하다), 설탕. 이런 접대용 음식들이 가난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라자이씨는 줄곧 웃는 표정이었습니다. 최근 아내가 출산한 막내아들도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이젠 좀 나았고, 일감은 별로 없지만 간혹 사리도 짜고, 자전거 릭샤를 끄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가 빠듯하지만 먹을 게 있긴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땐 빌려서 식량을 삽니다. 금이 간 진흙집이지만, 집이 있습니다.

"릭샤는 내 것이 아니에요. 돈을 주고 빌렸지요. 낮 시간만 빌릴 때에는 20루피, 종일 빌릴 때는 35루피를 줘야 해요. 엊그제 종일 릭샤를 끌었는데 100루피 넘게 벌었어요. 하지만 이 일은 사리 짜는 일보다 훨씬 힘들어요. 일용 건설 노동일도 했었는데, 그 일은 중간에 쉬는 게 전혀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지요."

10년 전엔 사리 짜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엔 한 달 내내 사리를 짜고 릭샤를 끌어서 번 돈이 1500루피입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금액입니다. 일이 없어 못하거나 아파서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열두 살 때부터 계속 짠 사리.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배운 사리 직조 기술.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사리 짜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라자이씨. 그는 사리 짜는 일을 즐기는 장인입니다.

"나는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수공 사리 짜는 사람들을 지원해줬으면 해요. 원자재를 싼값에 구입하도록 보조해주고, 정부가 사리를 구입해서 판매했으면 좋겠어요. 사리는 예술입니다. 나는 그게 자랑스러워요."

 사리를 짜는 라자이씨.
 사리를 짜는 라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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