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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2학년 담임 회의를 하다가 학년부장과 언쟁이 있었다. 발단은 교내 독서경시대회 안내물을 담임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였다. 과학을 전공하는 부장이 도서와 작품목록이 실린 유인물을 힐끗 쳐다본 뒤 경영부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독서는 집에 가서 하도록 전달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

순간, 얼굴에 확 달아올랐다. 그렇잖아도 자습 시간에 책을 읽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예전의 발언이 가시처럼 꽂혀 있던 차였다. 독서를 마치 시답잖은 소설이나 만화책 나부랑이나 읽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역력했다.

 "왜요?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안 되나요?"

내 목소리가 꼿꼿하게 튀어나왔다. 부장은 나를 멈칫 쳐다보았다.

"게다가 지금은 독서경시대회 준비 기간이잖아요? 책을 읽어 시험을 준비하는 게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 준비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그래요? 그럼 국어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 독서경시대회가 있을 때까지만 학교에서 책을 읽도록 허락하겠습니다."

나는 지지 않고 부장의 말을 되받았다.

"안돼요. 경시대회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책을 읽도록 해야 해요."

그러자 부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자습 시간에 독서를 허락하면 아이들은 책을 읽느라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한번 책을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서를 핑계로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건 공부에 흥미가 없는 극히 소수일 뿐이에요. 설사 그렇더라도 자습시간에 숙제를 하든 독서를 하든 그것은 학생 스스로 선택할 문제가 아닌가요?"

독서 문제로 학년부장과 한판 붙다!

부장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밤늦게까지 자습지도를 하며 고생하시는 것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이지,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책은 집에 가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어요."
"그럼 독서는 집에 가서 여가로나 활용하라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학생들이 죽어라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책은 안 읽고 문제만 풀기 때문이에요."

내가 지지 않고 계속 대거리를 하자 부장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독서는 공부하다 피곤하면 읽어도 됩니다."

나는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부장의 말을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다. 정말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책 속의 드넓은 경지,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아우르는 발견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굳은 얼굴로 부장을 향해 단호하게 내뱉었다.

"선생님께서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아이들에게 언제든 책을 읽으라고 할 거예요."

내 말을 들은 부장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한 두 마디 거들려던 몇 명의 교사는 날선 공방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국 학급 조회 시간이 임박해져 이야기의 결말을 내지 못한 채 쫓기듯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선생님, 책 읽었다고 따귀 때릴 분위기였어요"

늦은 밤 학교의 복도 풍경
▲ 지금은 '야자'중 늦은 밤 학교의 복도 풍경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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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절망스러운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수학 담당인 담임교사가 자습 시간에 책을 읽은 학생을 적발하고 지적했다는 이야기를 일러준 탓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공부가 안 되어 머리를 식힐 겸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노라고 했다.

"나쁜 책도 아니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고요."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앞으로 다른 선생님이 뭐라 하시면, '국어 선생님이 언제든 책을 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 나머진 내가 책임질 테니까!"

'임전무퇴' 나는 한판 혈투라도 벌일 듯한 비장함으로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드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왜?"
"따귀라도 때릴 분위기였거든요."

순간 전신에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아무리 모든 것을 점수화하는 입시 체제에 치여 산다고 해도 교육의 근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교사로서 공감대는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던 동료였기에 새롭게 발견한 이질감은 실망으로 이어졌다.

인문계와 자연계 전공 교사의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들 또한 자녀를 둔 가장이 아니던가. 설마 자신의 자녀에게도 독서 대신 시험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겠지. 자녀에게 독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테니까.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만큼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그보다 먼저 갖추었어야 할 철학의 부재가 오만가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교사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전인 교육의 이념을 구현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전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인간 교육에 힘쓰는 이에게 청소년들의 독서는 매우 중요하다. 학교는 이해타산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어떤 직종과는 다른 곳이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 내 말에 동감은 하지만, 그런 나를 들먹이면서까지 독서를 강행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자꾸 성적에 짓눌려 독서를 기피하는 상황인데, 공식적으로 책읽기를 금지하고 나서니 학교에서 어찌 독서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모의고사 성적 앞에 무릎 꿇다

이렇게 많은 숙제를 두고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나.
▲ 그날 그날의 숙제가 적힌 칠판 이렇게 많은 숙제를 두고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나.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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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며칠 뒤였다.

학년 회의를 위한 날짜와 시간이 공지되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1학기에 실시된 두 번의 모의고사 결과를 비교 분석하고, 과목 성적과 학급 성적에 따라 과목 담당 교사나 학급 담임이 아이들의 방학 학습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문제는 모의고사의 결과였다.

두 번째 시험의 상위 등급의 누계가 첫 모의고사에 비해 23명이나 감소했다는 분석이 회의 자료에 명기되어 있었다. 문제는 감소 인원 중 내가 맡은 국어 과목에서 17명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과목이 다른 과목에서 쌓아놓은 상위권 학생들의 수를 깎아먹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업 시간에 종종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바른 삶인지 모색하는 데 할애를 하고, 문학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사회 이슈에 따라 그때그때의 논제를 설정해 패널을 구성하고 찬반양론으로 나누어 토론을 하는 갖가지 수업 모형을 준비하고 펼쳐왔던 나의 수업 방식이 성적을 수치화하는 모의고사 결과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었다.

나는 회의 시간 내내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물론 공식적인 지적이나 질책은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 과목의 결과는 내가 더 잘 아는 법 아닌가. 나는 비로소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이 전인교육을 위한 공교육의 현장이라기보다는 입시의 중간 관문인, 경쟁만이 난무하는 전쟁터라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그동안 너무 이상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뜨겁게 치받고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독서를 반대한 선생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몰라서 금지했던 것이 아니었던 거다. 이미 그들은 치열한 점수 경쟁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뇌와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어떤가. 오랜만에 담임을 맡고 보니 학년의 성적 책임이 담임 중심 책임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곧 학생들의 성적은 교사의 능력으로 귀결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대학 입시에 혈안이 된 아이들에게 점수 올리는 비법을 전수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만이 교사의 본분이고 역할이 되어버린 현실이라면, 내 수업을 듣던 몇은 씨알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나의 이상주의를 비웃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공감은 하면서도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강변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의 수업 방식에 불만을 품고 지켜보았을 아이들의 눈동자를 떠올리자, 이 현장에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태그:#독서, #교육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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