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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포장이 하도 그럴싸해 포장 뜯기가 아까울 때가 있다. 겉포장을 뜯어내고 나면 또 속포장이 있다. 심지어는 삼중 사중으로 된 것도 많다. 속에 있는 내용물의 용기 또한 얼마나 멋있는지. 이런 경험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겉만 그럴싸한 제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쓰레기를 줄인다는 의미에서도 겉치레 포장은 지양해야 한다.

깻잎 가격이 천차만별

그런데 며칠 전에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도 상품 질이 좋았던 경험을 했다. 나는 이틀 동안 두 마트를 방문해야만 했다. 한 번은 딸내미 반찬을 위해, 다른 한 번은 우리 집 반찬을 위해. 그러다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깻잎 10장 한 다발이 천차만별의 가격이라는 것을…. 어떻게 작은 깻잎이 이리 가격이 다를까.

깻잎김치를 담그기 위해 10장을 한 다발로 묶은 깻잎을 A마트에서 묶음당 240원에 샀다. 싼 가격이라며 아내는 꽤 많은 양의 깻잎을 사가지고 와 깻잎김치를 담갔다. 담근 깻잎김치로 맛있게 식사를 하는 중에 딸내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은 아내가 말했다.

“아이가 워낙 바빠 못 내려오겠다는군요.”
“그럼 반찬 만들어 놓은 것은 어떻게 하고?”
“내일 우리가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주말이라 쉽지 않을 텐데.”

그러나 자식 당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 우리부부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깻잎김치를 비롯하여 만든 밑반찬들을 챙겨가지고 빗속을 뚫고 서울 사는 딸내미에게 갔다. 딸아이와 점심을 외식으로 하고 딸아이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딸아이가 우산을 가지러 간 사이 우리부부는 B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기로 했다.

5장을 오른쪽으로 하고 다른 5장을 왼쪽으로 하여 포개 분홍색 비닐 끈으로 묶은 모양이 같았다.
▲ 갯잎 5장을 오른쪽으로 하고 다른 5장을 왼쪽으로 하여 포개 분홍색 비닐 끈으로 묶은 모양이 같았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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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그럴싸한 깻잎

휘휘 돌아 진열대의 상품들을 구경하다 아내가 깻잎이 진열된 채소코너 앞에 멈춰 섰다.

“어? 이 깻잎이 왜 이리 비싸죠?”

나도 다가가 살펴보니 360원이라고 적혀 있다. 하루 전에 A마트에서 산 가격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받았다.

“그러게 말야. 이거 가격표 잘못 붙인 것 아닐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A마트에서 샀던 깻잎 하고 같은 상품으로 보였다. 크기만이 아니고 묶은 모양까지 같았다. 5장을 오른쪽으로 하고 다른 5장을 왼쪽으로 하여 포개 분홍색 비닐 끈으로 묶은 모양이 같았다. 한참만에야 발견한 사실이지만 다른 게 있다면 ‘세척 깻잎’이라고 쓰인 게 달랐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바로 옆에는 굉장한 값을 매긴 고급(?) 깻잎이 살포시 포장지를 덮고 누워있다. 가격표는 1280원, 아니 이렇게 비쌀 수가?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그 깻잎은 10장 들이 세 다발씩 밀봉 포장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한 다발에 427원인 꼴이다. 그리고 버젓이 상품회사(농장의 이름인지 포장회사의 이름인지는 몰라도)의 이름까지 선명하고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깻잎이 포장을 입고 있으니 그럴싸해 보였다.

실은 친환경이나 무공해 제품이라면 가격차이가 날 수 있기에 세밀히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화장품 광고카피가 얼핏 머리를 스쳤다. ‘00 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랬다. ‘세수 한 번 했을 뿐인데’, ‘깔끔한 포장지 한 번 덮었을 뿐인데’ 가격은 그렇게 달랐다. 가격만이 아니라 보기에도 먹음직해 보였다.

가격만큼 확실한 질적 차이가 있을까

깻잎 앞에서 멈칫거리는 아내에게 ‘까짓 거 비싸면 얼마나 더 비싼데 망설이냐’며 포장지에 담긴 비싼 깻잎을 사자고 했다. 깻잎김치는 딸아이에게 다 가져다 줬기에 우리가 먹을 것이 없었다. 한 번 맛본 깻잎김치 맛을 잊을 수 없기에 거의 강요하다시피 아내를 채근하여 깻잎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깻잎김치 담그기에 들어갔다. 거금을 들여(? 상대적 가치로 볼 때) 산 깻잎이기 때문에 같은 맛이거나 더 못한 맛이면 아내의 추궁은 전부 사자고 한 내게 떨어질 것이다. 조바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갖은양념을 해 깻잎에 포개 넣던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 이 깻잎이 훨씬 크네요. 부드럽기도 하고, 확실히 제값을 하는데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구.”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난 인터넷을 뒤졌다. ‘좋은 깻잎을 고르는 법’을 알려고. 좀 뒷북을 치는 행동이긴 해도 비싼 것을 사라고 한 내 주문이 혹시 겉치레만 한 것을 산 것이라면 가장(家長)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는가.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다 섭렵한 이후 내린 결론, 좋은 깻잎은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냄새를 맡아보면 향이 좋아야 한다. 우선 보기에 싱싱해야 하고 줄기가 옅은 초록색으로 생생하고 윤기가 흐르며, 솜털같이 붙어있는 잔가시가 선명하고 겉은 까실까실하고 가장자리의 윤곽이 뚜렷해야 한다. 물을 많이 뿌려놓은 것은 오래된 것일 수 있다.’

다행히 우리가 좀 비싸게 산 것은 이런 구비조건에 부합된 것이었다. 그러면 맛도 좋을까? 그게 또 다른 나의 고민이었다. 이번 깻잎은 순전히 내 의도로 샀기 때문이다.

양파를 송당송당 다지더니 파와 부추를 송송 썰어 모아 한편에 둔다. 그런 다음 막 터앝에서 따온 약간 약이 오른 고추를 잘게 썬다. 그리고 우리 집에만 있는 양념....
▲ 깻잎김치 양파를 송당송당 다지더니 파와 부추를 송송 썰어 모아 한편에 둔다. 그런 다음 막 터앝에서 따온 약간 약이 오른 고추를 잘게 썬다. 그리고 우리 집에만 있는 양념....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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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김치의 달인, 제값 한 깻잎

아내는 양파를 송당송당 다지더니 파와 부추를 송송 썰어 모아 한편에 둔다. 그런 다음 막 터앝에서 따온 약간 약이 오른 고추를 잘게 썬다. 그리고 우리 집에만 있는 양념, 뽕잎가루와 표고버섯가루를 고춧가루, 참깨와 함께 그것들 위에 뿌린다. 이 외에도 무엇인가 집어넣었는데 그것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라나.

다음으로 진간장을 깻잎이 푹 잠길 정도로 준비했는데 특이한 것은 금방 물을 팔팔 끓여 간장과 희석하는 것이었다. 아마 이게 우리 집만의 비법인 모양이다. 우리 집은 특히 짠 것을 싫어하기에 간장에 재우는 깻잎김치의 특성상 짜질 수 있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아내가 고안한 방법인 듯하다.

몇 시간이 흐른 후 기다리던 맛 테스트 시간이 다가왔다. 깻잎을 사라고 한 나에 대한 심판도 내려질 시간.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깻잎김치를 젓가락으로 잡아 입으로 가져오는 순간, 아내가 먼저 맛을 보고는 이렇게 외친다.

“굿! 참 부드럽고 맛있어요. 딸내미 가져다 준 것 하고는 비교가 안 되어요. 역시 비싼 것이 제값을 하네요.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나도 한 잎 먹으며, 가격을 생각하며 한 말은 오직 이것뿐.

“그래, 이 맛이야! 돈 값을 하는 경우가 다 있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겉만 그럴싸한 상품들에 속고 살아왔다. 가격과 질이 정비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한다. 상자의 겉만 보고 샀다가 속에 썩고 벌레 먹고 알이 작은 과일이 들었을 때 느낀 절망감, 아마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운동을 하다 만났던 노부부 농부가 생각난다. 노부부는 같은 크기의 복숭아를 골라 상자에 담고 있었다. 겉도 속도 같은 걸로. 싫다고 마다하는데도 굳이 복숭아를 먹고 가라며 우리를 잡으셨던 동네 어르신들. 내가 복숭아를 샀을 때 겉에만 그럴싸하고 속은 안 좋은 것들이 들었던 경험을 말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쓰나. 이렇게 골고루 넣어야지”

그렇다. 여기 정답이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는 ‘겉볼안’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겉볼안’이었다. 지금까지 참 기분이 좋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 21TV,좋은생각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깻잎, #깻잎김치, #겉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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