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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부시 만나 활짝 웃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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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간 이명박-부시 시대의 한미관계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과 쇠고기 파동이 벌어지기 이전까지 미국으로부터 전례없는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근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홀대'를 받고 있다.

1월 24일 부시 대통령은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를 면담했다. 미국 의회의 하원과 상원은 '처음으로' 각각 2월 7일과 14일 이명박의 당선을 축하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리고 4월 중순에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했다. 이러한 '처음 시리즈'가 보여주듯,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명박 정부를 홀대하고 있다. 7월로 예정되었던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8월로 연기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도 방한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에 서명도 하지 않은 채, 한국 대표단을 돌려보내 미국산 쇠고기에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그리고 독도 문제로 한일간에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이전까지 한국령으로 명시됐던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미국 국무부는 이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도 표기 변경은 '일본 달래기'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명박 정부에 대해 '환대'에서 '홀대'로 돌아선 것일까? 우선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 사안과 관련해 중립을 지키겠다는 '원칙적 입장'이다. 그러나 중립을 지키는 것과 BGN이 이전의 표기를 바꿔 사실상 분쟁지역이라고 공식화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독도의 분쟁지역화는 일본의 오랜 목표였고, 미국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일본 달래기'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해서는 안된다는 일본의 강력한 요청을 뿌리치고 해제 방침을 의회에 통보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까지 나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잊지 않겠다'며 일본 달래기에 적극 나섰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독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일본의 로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의 동맹 전략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을 중시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의 강력한 반발에도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강행함으로써, 미일동맹에 '적신호'가 켜졌다. 독도 표기 변경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미일동맹의 급한 불을 끄려고 했다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미국 국무부가 BGN의 지명 표기와 관련해 정부 기관들이 면밀히 점검했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미국의 한국 홀대에는 이명박 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기대 심리는 한껏 높여놓았으나 실제로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복원'이니, '한미 전략동맹'이니 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들어줄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쇠고기 전면 수입 이외에는 별로 해준 것이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부정해온 노무현 정부가 이미 상당 부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 걸친 이라크 파병,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합의 및 대부분의 비용 부담, 전략적 유연성 원칙적 수용,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고 한미FTA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복원'이라는 정치적 수사에 걸맞은 '기타 목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사안들은 이명박 정부도 수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사일방어체제(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전면 참여가 있다. 국내 여론 및 북한과 주변국들과의 전면적 대결을 불사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또한 이미 40%를 넘어선 방위비 분담금을 50%로 올려주는 것 역시 국민 여론과 거리가 멀고, 이라크 파병 재연장 및 아프가니스탄 재파병도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사안들이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말뿐인 한미 전략동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불만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1차적인 책임은 노무현 정부 때 "전두환·노태우 때보다 강화된 한미동맹"(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발언)을 복원하겠다던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불만 있어도 어쩔 수 없을 것'

마지막으로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관계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면서 부시 행정부에게 '다루기 쉬운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부시 행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상대는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외교적 결례와 일방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미관계에 손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한미관계는 상당히 손상되어 있다.

다음달 5-6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외교는 양국 대통령과 정부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국민 여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으로 수그러들었던 한국의 반미 감정은 쇠고기 파동과 독도 문제를 거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두 정상이 쇠고기와 독도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어설프게 '한미 전략동맹 선언'을 추진했다가는 반MB-반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될 수 있다. 반미감정 확산의 두 주역이 부시-이명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독도, #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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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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