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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또 꿈은 있으되 실제로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의 사정도 각각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원생활을 말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인 기준에 따른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작한 지 불과 1년 남짓 밖에 안 되는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원생활을 소개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살 수 없지 않느냐?" 그리고 "욕심을 버렸다면서 결국 당신만 살겠다는 또 다른 욕심 아니겠느냐?"라는 비판이 따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전에 나는 일부러 '전원생활'이라는 단어보다 '농촌생활'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했다. 그러나 비록 앞으로 농촌에서 살게 될지라도 아직은 출퇴근하는 견습 농부이기 때문에 농촌생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또 생계형 귀농을 작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후 모든 글에서는 다소 거부감을 무릅쓰고 '전원생활'이란 단어를 쓸까 한다.


지난 초여름 아내가 캐낸 감자를 찍었다. 장날 5000원 주고 산 씨감자를 장난 삼아 심었는데 흙은 몇 곱절의 감자를 돌려 주었다.
▲ 감자 지난 초여름 아내가 캐낸 감자를 찍었다. 장날 5000원 주고 산 씨감자를 장난 삼아 심었는데 흙은 몇 곱절의 감자를 돌려 주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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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남도의 바다가 보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귀향의 꿈은 이룰 수 없었다. 한동안 그 꿈을 가슴에만 품고 살다가 본격적으로 소박하고 편안한 정원을 만들어 여생을 보낼 제2의 고향을 찾아 나선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겠다.

내가 노후 생활의 터전으로 농촌을 택하고자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내와 나의 건강 때문이었다. 우선 50대 초반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큰 문제였다. 몇 곳의 종합 병원, 한방병원, 심지어는 도사라는 사람들에게 기를 받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전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말로 할 것인가?

그리고 고질적인 발작성 심방세동 때문에 1년이면 한두 번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혈당 수치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높아진 나의 건강도 적잖은 문제였다. 심장병 때문에 좋아했던 등산을 접어야 했고, 미식가라고 들을 만큼 철따라 나오는 갖가지 음식 맛보기를 재미로 여기며 살았는데 갑자기 음식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의 마음고생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기운을 받으면서 채소와 과일만이라도 자급자족하겠다는 오랜 꿈도 실현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건강도 챙기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가지는 병도 없다. 그래서 두 주만 심으면 한가족이 먹는다고 했다. 금년 여름 고추와 함께 이웃들과 여러 번 나누어 먹는 기쁨을 맛보았다.
▲ 가지 가지는 병도 없다. 그래서 두 주만 심으면 한가족이 먹는다고 했다. 금년 여름 고추와 함께 이웃들과 여러 번 나누어 먹는 기쁨을 맛보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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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지 2년째, 요즘 아내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음에도 예전에 비해 고통도 훨씬 줄었다. 본인도 아주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아내는 호미를 다루는 선수가 되었다. 잔디밭과 텃밭의 풀은 거의 아내가 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혈당강하 약을 먹지 않음에도 혈당 수치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낮아졌다. 또 작년 봄 이후 심한 발작으로 응급실을 찾은 일도 없다. 매달 받던 정기 검진도 이제는 8주 간격으로 길어졌다. 물론 의사의 처방에 따라 계속 복용하는 약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보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 손으로 기른 농작물을 먹은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우리가 전원의 꿈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생각했던 저변에는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도 컸다. 각종 오염물질에 파괴된 환경, 그 환경에서 자라는 갖가지 농작물, 거기에 일부 농민들의 무분별한 농약살포, 수입 농산물에서 보인 농약성분과 중금속 등으로 인한 우리 식탁의 불안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는 경고를 들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공산품 먹을거리도 온갖 유해색소, 방부제, 각종 불확실한 첨가물로 인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르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요즘은 심심찮게 이물질까지 발견되어 우리를 놀라게 하는 현실 아닌가!

해충을 잡겠다고 뿌린 살충제로 인해 생태계의 파괴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을 살리자고 모기 죽이는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한 결과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모를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풀을 잡겠다고 함부로 뿌린 제초제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병을 얻고 엄청난 병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현실도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초제인 고엽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보도만으로도 알수 있지 않은가!

시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 키다리 해바라기와 봉숭아 시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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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래의 친구들 모임에 가면 예외 없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들먹이며 그 땅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귀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원생활에 관해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이란 아름다운 집, 넓은 정원, 멋진 '파고라'를 갖추고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전원생활이란 부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데 꼭 좋은 집과 훌륭한 정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농촌에서 살겠다는 뜻만 있다면 재산의 많고 적음은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소박한 전원의 꿈은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은 가난한 이들이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다. 부부가 의견일치를 보고 남자도 호미 잡을 각오만 한다면 서민들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요즘 시골에서 어렵지 않게 괜찮은 빈 집을 찾을 수 있다. 형편이 어렵거나, 자녀들의 교육문제 등으로 농촌으로 아주 옮기기 어렵다면 그런 집을 빌려 텃밭을 일구며 봄, 여름, 가을의 주말이라도 보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 시골의 고택을 관리만 해주는 대가로 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런 안내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밭은 풍성해서 좋다.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가 시간이 다르게 익어가고 상추, 케일 등 채소는 물론 미나리와 뽕잎 고구마 순도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눈을 돌려 찾으면 사방에 찬거리가 널려 있는데 굳이 '웰빙'을 따로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인가.

제초제나 살충제는커녕 화학비료조차 뿌리지 않았지만 날마다 갖가지 채소를 몇 이웃과 나누어 먹을 만큼 수확할 수 있다. 거기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웰빙'의 가치를 더하면 우리의 하루 소득은 단순 계산으로 불가능 하리라.


작고 가벼운 다용도의 농기구로 김매기의 지존이다.
▲ 호미 작고 가벼운 다용도의 농기구로 김매기의 지존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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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텃밭일지라도 뙤약볕에서 호미질은 고행(苦行)일 수 있다. 그러나 호미를 잡으면 생명의 근원이요 언젠가 우리를 받아줄 흙을 다시 볼 수 있다. 호미를 잡는 일은 그 흙을 살리고 내 가족을 살리는 수행(修行)의 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보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삶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본격적인 전원생활은 아니지만 1년 남짓의 경험을 메모한 글이다. 이 글은 한겨레 내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태그:#전원생활, #호미 , #농촌,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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