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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검역조건 완화에 따른 국민적 저항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해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스스로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전 정권 탓을 하기 있기 때문이다. 22일자 <중앙일보> 1면에는 바로 그 '설거지론'이 주요하게 걸렸다. 물론 반론이 끝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볼썽사나운 편들기가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분명하게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된 것은 수입이 금지됐던 뼛조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검역 중단을 선언했다. 문제는 한미FTA의 전제조건처럼 미국이 쇠고기 시장개방을 요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참여정부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을 수입하는 것으로 검역을 재개하였다. 물론 뼛조각이 섞여 들어오거나 하는 위생조건 위반이 발생하면 검역은 중단되곤 하였다. 미국은 전면개방을 계속 요구하였으나 참여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정결과를 보고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의 강화가 시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OIE는 미국을 광우병 통제국가로 분류하였다.

 

미국은 이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했다. 한국정부가 계속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21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공개한 관계장관 회의의 내용처럼 우리 정부는 월령제한을 푸는 문제를 검토했다고 한다. 국무총리와 농림부 장관 그리고 통상교섭 본부장 등이 참석한 회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 회의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분명하게 반대했다고 알려졌다. 송민순 전 외무장관은 노 전 대통령은 "월령제한을 풀면 한미FTA를 미국이 비준한다는 보장이 있느냐?"라고 묻고는 "다른 나라들도 월령제한을 풀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한다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니 차기정부에 넘기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이 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월령제한을 해제하는 조건중 하나인 OIE의 판정은 충족했다. 그러나 동물사료 금지조치의 강화는 충족되지 않았다. 동물성 사료금지조치의 강화가 실제로 시행되는 것을 봐가면서 판단하겠다. 관계장관 회의에서는 풀어야 한다는 중지를 모으고 건의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한미FTA의 비준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다른 나라도 월령제한을 해제하지 않았으니 곤란하다고 판단해서 유보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방미 앞두고 관료들 태도 변해

 

지난 정부에서 수입검역조건을 풀지 않았던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몰랐다면 그것은 더욱 무능한 정권이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이명박 정권의 관료들도 처음에는 월령제한 등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데이비드 방문 직전 타결소식이 알려졌다. 이 정도의 문제라면 대통령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농림 관료들도 부정적인 태도에서 갑자기 방침을 선회했다. 이 점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급히 타결된 것이 아닌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캠프데이비드 숙박비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30개월 미만의 모든 부위와 30개월 이상의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개방되었다. 전제조건이던 동물성 사료금지 강화조치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가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검역중단 조치를 할 수도 없는 검역주권 포기까지 단행했다. 시행하는 것을 보고 천천히 개방을 결정해야 할 조건을 오히려 약화된 채로 개방하게 된 것이다.

 

또 한미FTA를 위해서라는 변명의 여지도 없어졌다. 미국 의회가 이미 민주당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 민주당은 이미 한미 FTA를 비준할 의사가 없음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어차피 안될 비준을 위해서 우리의 검역주권을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설혹 한미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 치더라도 그것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 것이다.

 

후에 추가협상을 했지만 결과는 그리 변한 것이 없다. 본 협정은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추가협상 결과는 민간 자율에 의해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들여오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을 강제할 수단이 없고, 월령에 대한 우리의 검역이 아니라 미국측의 업자가 하는 검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협정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와 현 정부의 협상 태도는 전혀 달랐다

 

첫째, 결과의 차이다. 참여정부에서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들여왔고, 작은 뼈조각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검역중단조치를 취했다. 이명박 정부는 결과적으로 완전개방을 했고 우리 스스로 판단해 검역중단 조치를 할 수도 없다. 잠정적으로 미국 수출업자들이 자제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본 협정의 내용대로 갈 수밖에 없다.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둘째, 한미FTA 비준에 대한 태도다. 참여정부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쇠고기 문제를 들어준다 하더라도 비준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어차피 안될 비준을 촉구하는 의미로 쇠고기 카드를 소진해 버렸다. 한미FTA가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접어두고라도 국가 간의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셋째, 동물성 사료금지 강화조치에 대한 태도다. 참여정부는 강화된 조치가 시행되는 것을 봐가면서 광우병 통제에 대한 확신이 서면 월령제한 등을 풀겠다는 태도였다. 이명박 정권은 사료금지 조치가 사실상 더욱 완화된 것인데도 공포만 하고 나서 곧장 장관고시를 시행하였다. 개방을 가급적 안 하려 하는 태도와 명분을 억지로라도 찾아서 개방을 강행하려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참여정부가 잘했다고 칭찬할 생각은 없다. 국민이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본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비하면 낫다. 비슷한 것처럼 보려는 사람들의 눈이 이상할 뿐이다. 일을 이렇게 황당하게 저질러 놓고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후안무치한 일이다.

 

내용도 없어 보이는 기사 1면 톱에 올린 <중앙>

 

22일자 <중앙일보>는 홍정욱 의원의 설거지론을 받아서 대서특필을 하였다. 1면톱에 올렸을 뿐 아니라 별로 내용도 없어 보이는 기사를 크기부터 위압적으로 배치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설거지론에 대한 힘실어 주기가 아닌가.

 

반론 보도는 아주 작은 크기로 기사 끝에 초라하게 배치하였다. 설거지론에 대한 발언은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오지만 반론은 누가 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대형 신문사가 이렇게 특정 정치세력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일이 볼썽사납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하던 변명도 떠오른다. 참여정부가 이미 다 하도록 결정해 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 말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전 정권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홍정욱 의원의 주장 또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관계장관들의 논의사항을 마치 참여정부의 최종 결정처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물타기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서 시행했는지를 확인하고 발언하는 것이 옳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물타기, 그리고 대형 신문의 편들기 보도, 그것을 받아서 확산시키는 여타의 언론들, 모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필요한 때다. 정권과 여당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일수록 국민의 신뢰를 점점 잃게 될 것이다. 신문의 낯뜨거운 지면배치도 신뢰도를 갉아먹을 뿐이다.

 

쇠고기문제에서 보듯 모든 문제를 남탓만 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전 정권이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두지 않아서라고 핑계를 댄다. 자신들이 화면보호기 로그인을 못한 것도 전 정권 탓이다. 인사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도 전 정권이 인사파일을 안 줘서란다. 심지어 이제는 법으로 보장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자의적으로 축소 해석하여 형사책임을 운운하며 협박까지 하고 있다.

 

너무 물타기가 심한 것 아닌가? 이러니 국민과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국제 앰네스티의 판단에 법적조치를 운운하는 경찰청장의 태도가 이 정권의 아전인수격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타기와 편들기도 정도껏 해야 효험을 볼 수 있는 법이다. 그토록 철저히 부정하고 비난하던 전 정권의 설거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도 의문이다. 책임은 떠넘기고, 영광은 독차지 하려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못믿을 미쇠고기, #설거지론, #참여정부, #이명박 정권, #물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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