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판타스틱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판타스틱영화제


20일 귀찮다고 미루다가 호기심이 승리했다. 부천으로 향했다. 이미 개막작은 놓쳐 버렸고, 영화제 영화에 대한 정보도 홈페이지 밖에는 없고, 예매는 끝난 상황이라 무작정 부천으로 향했다. 홈페이지에 나온 적은 정보를 기반으로 5시, 8시에 볼 영화를 정하기는 했지만 현장표가 있는가는 전적으로 요행에 달린 상황이다. 단지 비가 오는 날이라 관객이 줄었다면 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제 상영관 중 하나인 부천CGV에 거의 5시가 다 되어 도착을 했다. 예상대로 계획했던 영화는 표가 없었고, 그래서 보게 된 영화가 <검은 띠>다. <검은 띠>는 일본 가라데 영화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군국주의 일본에서 가라데 무인들의 파란만장을 다룬 영화였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영화는 기대보다는 훨씬 나았다.

<검은 띠>의 특이할 만한 점은 무술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와이어 액션이나 카메라 조작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무술신들이 전혀 조잡하거나 나쁘지 않았다. 가라데라는 무술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태권도 신화와 최배달 신화에 가려져서 가라데라는 무술의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검은 띠>를 보면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에 충실해서 만든 가라데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가 있다.

8시에는 애초에 계획했던 <닥터 인페르노>를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당초 Pifan홈페이지에서는 X등급 영화로 표시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보기로 했었는데, 현장에서는 18등급으로 변경이 되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애초 계획대로 보기로 했다.

<닥터 인페르노>는 종잡을 수가 없는 영화라는 평가를 내리게 만든다. 흑백이 주를 이루는 영상이고, 잔혹한 장면이 계속 등장하지만 솔직히 이런 영화에 영화자체만 가지고는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느 관객의 말처럼 "저런 영화를 만든 사람의 머리 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20일에 본 두 편은 장르, 국적 심지어 등급까지도 사뭇 다른 영화들이다. 이 두 편만을 가지고 이번 Pifan을 규정하는 특징같은 것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영화제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이해 되었고, 나름대로 개별국가들의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이덴티티와 같은 것을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라도 드러내는 차원의 작품들이 출품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검은 띠>에서는 가라데라는 일본 고유무술의 역사성을 일본군국주의와의 연관에서 풀어 놓은 것이 명백했고, <닥터 인페르노>도 스페인의 무의식에 잠재하는 오랜 프랑코 독재의 악몽이 병원이라는 '제국'을 통해서 은유화된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두 작품은 각자의 나라의 역사성과 그 결과로서의 현재성에 연출진들이 나름대로 이정표를 세워보려는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 노력들은 다른 나라 다른 작품에서도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국을 벗어나 대한민국 부천까지 들어온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개별국가들의 개별적인 역사성과 현재성을 읽어보는 것, 그것을 이번 12th Pifan의 관람목표로 잡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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