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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단고기 장밥과 좁쌀밥.
 평양 단고기 장밥과 좁쌀밥.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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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진지 드셨어요?'라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나요?

국민소득이 100불에도 못 미치고 먹고 사는 게 삶의 전부였던 시절.

명절이나 어른 생신날은 아이들에게는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날, 세뱃돈 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집안 어른 되는 집은 어려운 중에도 고기는 먹여야 되겠는데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은 마당에서 키우던 닭이니, 몇 마리 잡으면 온 가족이 달라붙어 닭 선지부터 벼슬까지 버릴 것 하나 없이 온갖 것을 음식재료로 써서 음식을 만들었다.

먹고 산다는 것이 빤한 시절이니, 이럴 때 큰집 도와준다는 핑계로 식구들을 다 끌고 가 배터지게 먹었지만 하나도 흉이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그런 날은 푸성귀만 먹던 우리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병치레 어머니 "개장국이 먹고 싶구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총각선생님'은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횟배와 영양실조와 결핵에 시달려 공부보다는 단백질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허구헌 날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며 뱀을 잡아먹으며 아이들 체력을 키웠다.

아니 쉽게 얘기하자. 이 땅에 라면이 등장한 것은 1963년의 삼양라면이 최초였다. 아직도 보릿고개가 있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라면을 '기근을 면해줄 식품'으로 극찬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굶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겠다.

농경문화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늙어죽지 않는 한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잡는다는 것은 망조 든 집안의 대들보를 빼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애완동물'이란 것은 마당에 놓고 기르던 닭이나 개새끼가 아니라 황소에게 더 걸맞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골탑'이 무엇인가? 이렇게 배곯고 사는 것이 못 배운 탓이라며 늙어 죽을 때까지 나를 돌봐줄 장남을 위해 대들보 같고 한 식구 같은 소를 팔아 대학등록금 마련해 주어 생겨난 말 아니던가? 식구들은 못 먹어도 군불 때서 소죽 끓이고 새벽부터 나가 밭 갈고 냇가에서 씻어주고 내 새끼처럼 등 긁어 주던 소 아닌가? 주인과 떨어지기 싫어 눈물을 그렁이는 소를 팔고 매몰차게 돌아서며 논둑을 걸어오는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95세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는 50대에 병치레 하면서 잡숫고 싶은 음식을 말씀하시라 했더니 "나 개장국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집에서도, 집안 식구들 중에서도 그런 음식을 먹은 적이 없어서 놀랐다. 그리고 당황했다. 어떻게 여자가 그런 음식을 들 수 있는가 하고.

그러나 그만한 연배의 여자들도 '그냥' 접할 수 있는 음식이겠구나 라고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개장국'이라는 단어는 예쁜 입에서 항문을 '똥구멍'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방송에서 국악이 흘러나오면 "무슨 기생음악이냐"고 슬며시 다이얼을 돌리는, 구습을 타파하자는 '신식교육' 영향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푸아그라와 샥스핀, 개장국의 차이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푸아그라 반대 단체 '푸아그라 폐지 선언'의 포스터(출처: www.stopgavage.com).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푸아그라 반대 단체 '푸아그라 폐지 선언'의 포스터(출처: www.stopgavage.com).
사실 육개장은 개장국이다. 물론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소의 양지머리나 개고기 살은 육질이나 맛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된장국물에 고기를 찢어 넣고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 푹 끓인 '탕'은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허한 몸을 보양하는 데 그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좋은 음식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고기를 늘상 먹으니 영양보충을 위해 개 대신 마블링이 잘된 값비싼 꽃등심도 먹고 값싼 미국산 쇠고기로 '스테이크'도 해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옛날에 소도 잡을 수 없고 돼지 잡기도 눈치가 보이는 터에 닭처럼 마당에 돌아다니는 개를 잡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않았겠는가?

풍속화를 보면 한편에서는 남녀가 희롱을 하고 있고 한쪽 마당 귀퉁이에서는 이에 상관없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누워있는 개를 보게 된다. 한창 춘색이 도도해질 즈음 난데없이 나타난 개새끼가 하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내려다보며 흥을 깨버리니 어찌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부엌에서는 뒤로 와서 킁킁대고 밥상 차려놓으면 물고 튀려고 허연 눈자위를 내리깔며 곁눈질하는데 이 정도면 빗자루 맞을 천덕꾸러기지, '엄마 간다'하며 품에 담싹 안고 가는 애완견은 아닌 것이다.

음식은 규범이 아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이고 수요가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영장류를 먹는 사람들도 있고, 맛있는 거위간 요리인 '푸아그라'를 먹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좁아터진 닭장에 집어넣고 먹이를 억지로 먹여 비대한 지방간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이고 준다고 먹지도 않을 것이다. 샥스핀은 누구나 좋아 한다. 샥스핀 요리는 값이 비싸지거나 포획하는 상어수를 줄이거나, 지느러미만 떼고 버려지는 상어로 인한 환경오염과 양심이 찔려  먹지 않게 되면 저절로 없어질지도 모른다.

개장국은 보신탕이 아닌 개장국일 뿐

동대문 먹자골목 개장국집
 동대문 먹자골목 개장국집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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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부터 잘못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개장국'이면 개장국, '육개장'이면 육개장이지. 거기에다 '보신'이니 '사철'이란 이름은 왜 붙인단 말인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평 용문사 앞에 뱀이니 뭐니 해서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파는 보신촌이 있어 '용문산 뱀은 새벽 이슬 맺힌 약초만 먹고 자라서 효험이 100%다'라고 선전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정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땅 투기로 벌은 돈을 주고 며칠씩 묵고 먹으면서 간절하게 강림하시는 그 날만 기다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온다.

엊그제 유선채널에서 소의 생식기를 요리로 파는 음식점을 보여주는데 여자 분들도 입을 가리고 겸연쩍은 듯 웃고 고개 돌리며 인터뷰에 응한다. 재방송이었지만 그렇게 방영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문제가 됐다면 방송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만약 '소' 대신 '개'였다면 반응이 어떨까?

관습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과 유난을 떨며 '거시기'만을 찾아 먹는 것은 어느 것이 더 엽기적일까? 소는 이미 식용으로 공인되어 있어 아무 부위나 썩썩 잘라먹어도 되는 것일까? 4가지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여름 특선 스튜와 '효리주'와 함께 먹는 전골 2인분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개장국은 정력이 좋아지는 보신탕이 아니라 그저 개장국일 뿐이다.

개고기는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었던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관습적으로 먹어오던 음식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음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누가 먹으래서 먹을 것도 아니고 남들 싫어하는데 그냥 쫓아서 먹을 것도 아니다.


태그:#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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