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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대리 경질'이라는 황당사건의 주인공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는 두 번의 짧은 인연이 있다.

 

지난 대선 때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반도대운하'와 관련한 기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 뒤 한 설명회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강 장관은 나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그 기사 때문에 검찰 수사받느라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는 그 때보다 더 갑갑한 터널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내겐 그리 달갑지 않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우리 경제 정책의 수장인 그의 자질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기 위해서다. 친 정부신문인 <조중동>에게조차 몰매를 맞고,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성토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강 장관의 또다른 이면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첫번째 인연] 강 장관이 알려준 대운하의 또다른 진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6월 1일 '서울시, 경부운하 검토 후 폐기했었다' 제하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때인 지난 2004년 말 시정개발연구원(이하 시정연. 당시 백용호 원장)이 '서울시 교통 및 물류체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방안'이라는 주제의 자체 정책과제를 수행했는데 초기에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검토했으나 '사실상 도로·철도 등 다른 물류운송 수단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당시 이명박 캠프의 핵심 정책참모였던 강 장관이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백 원장의 후임으로 시정연 원장을 지낸 바 있다.

 

강 장관은 "시정개발연구원이 경부운하의 경제성을 분석한 뒤 폐기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당시 시정연에는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경부운하에 대한 경제성 분석을 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2006년 3·4월경 세종대 교수들에게 용역을 줬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말을 듣고 기자는 또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강 장관의 전임 원장이었던 백용호씨(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의 핵심 참모로 일했고 지금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가 시정연 사령탑을 맡고 있을 때, 자체 정책과제 수행 과정에서 사실상 '한반도대운하'를 폐기했다는 게 취재 중에 만난 관계자들의 말이었다. 결국 자체 연구에서 포기한 안을 강 장관이 재임 시절에 외부 용역을 통해 해결한 게 아니냐는 또다른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운하의 끈질긴 생명력은 이 때부터 시작된 듯 싶다.

 

대운하의 강만수의 공통점은 '끈질긴 생명력'

 

결국 강 장관은 세종대에 용역을 줬고, 대운하가 경제성이 있다는 분석보고서가 나왔다. 용역에 참가했던 3명의 교수 중 1명인 이상호 교수 역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에 참여했다. 운하에 대한 강 장관의 입장과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강 장관(당시 강 전 차관으로 호칭)과 기자의 일문일답을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 왜 당시 시정연이 서울시의 범위를 벗어난 경부운하 문제를 연구했나.

"서울 물동량을 검토하려면 경부축으로 유입되는 것도 연구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 당시 경부운하 뿐만 아니라 김포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만드는 문제와 한강 페리 구상 등 광범위하게 연구했고, 경부운하는 그 중의 한 과제였다."

 

- 세종대 교수들에게 용역을 준 시점이 2006년 3, 4월경이면 이명박 전 시장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다. 이 전 시장이 대선에 나간다는 것은 당시 자명했고, 오래 전부터 이 전 시장이 경부운하를 주장했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경부운하 공약을 내걸 수도 있다는 것도 예고된 것 아니었나. 시정연이 개인의 공약을 만드는 곳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오해를 할 수는 있는데 서울시 물류계획을 점검하면서 운하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 시정연 관계자들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사업 초기 경부운하를 잠깐 검토했다가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 전 차관께서는 "전문인력이 없어서 보류했고, 용역을 줬다"고 해명하고 있다. 왜 말이 다른가.

"그 사람들이 기자들을 제대로 상대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같다. 어찌됐든 내가 이야기하는게 구체적인 사실이다."

 

- 백용호 전임 원장 재임 당시 이 과제를 시작했다는데, 경부운하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지금 이명박 캠프의 자문그룹에 속해있는 백 전 원장인가.

"누가 지시해서 경부운하 연구를 시작했는지는 잘 모른다."

 

이같은 상황이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경찰은 시정연을 압수수색하고, 강 장관 등을 상대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수사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강 장관 시절의 시정연에서 작성한 경부 운하 타당성 연구보고서가 민간 연구단체인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에서 용역사업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연관성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부실수사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두번째 인연] 속빈 설명회에서의 싱거운 만남

 

강 장관과의 두번째 만남은 지난해 6월 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다. 자신의 제1공약이었던 '경부운하'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다른 경선후보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를 가졌다. 하지만 알맹이가 전혀 없는 속 빈 설명회였다.

 

가령 이렇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운하 반대론자들을 향해 "백두산 천지못은 맑다"고 반박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운하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천지와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이 대통령은 '골재 판매대금 등이 부풀려졌고 운하 사업의 경제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곽승준 교수(전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 골재 안 팔리면 내가 수출할테니, 걱정 마세요."

 

이날 설명회는 대충 이런 황당한 반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강 장관이 참석했다. 강 장관은 이 날 설명회가 끝난 뒤 기자에게 다가와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법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던 것이다. 강 장관은 기자에게 당시 "세종대에 용역을 준 보고서를 시정연에 요청하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와 비슷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기에 기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와의 두 번째 인연은 이렇듯 싱겁게 끝이 났다.

 

 

강 장관은 지금이라도 '보고서'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뒤에 사실 이 일은 잊고 지냈다. 당시 그가 한반도대운하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대통령 집권초기부터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그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일,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대운하를)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 보름도 안된 시점에서 그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운하에 새롭게 불씨를 지폈다.

 

강 장관은 이날 대운하 건설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검토를 거쳤으면 한다" "한 때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 60% 지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듯했다.

 

사실 운하반대 운동을 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승리'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8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끊임없이 운하를 반대해온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가정법'을 사용하면서 '포기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그날 바로 국토해양부가 운하 TF팀을 해체한다고 선언했기에 사실상 운하는 물건너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완전 포기 선언이 아니었기에 찜찜했지만, 정부 기구조차 없앤다니 사실상 포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에 그가 또다시 본색을 드러내면서 이 대통령의 '운하 포기 가능성 시사'는 촛불로 궁지에 몰린 정부의 단순한 립서비스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빨리 말을 뒤집어 운하반대론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강 장관이 바닥을 드러낸 이상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구시대적 망령 부활시켜 경제부활할 수 있나

 

우선 지난 6개월여의 기간동안 환율관리 실패 등으로 경제 위기를 불러온 그가 구시대적 토목경제의 망령인 한반도대운하를 다시 끄집어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이 대통령의 '747공약'이 궤도 수정을 하고 있는 마당에 그가 토목업자와 부동산 투기업자의 주머니만 불려줄 운하를 통한 단기부양책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운하의 경제성과 관련한 토론에서 운하 찬성론자들은 완패했다. 선진국에서도 운하는 사양산업임이 입증됐다. 아직도 운하에 미련이 있는 경제 수장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전국의 불도저를 동원해 우리 경제를 수렁에 처박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년여간의 논란 과정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계획을 변경하고, 아직도 노선조차 정하지 못한 한반도대운하는 누더기가 됐다. 그래서 아마추어 정책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가뜩이나 광우병 사태로 아마추어 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마당에 운하마저 추진한다면 아마추어 정부의 종말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 국민의 녹을 먹는 공직의 기본 자세부터 갖추지 못했다. 8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운하사업을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한때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 60% 지지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극히 제한된 기간에 한해서였다. 국민들이 운하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기 시작하고부터는 반대가 찬성 여론보다 월등히 높았다. 따라서 지금서 다시 운하를 끄집어내는 것은 국민을 거역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장관에게 국가 경제를 맡겨다간, 제 2의 촛불은 불 보듯한 것이다. "미친 소, 미친 물 너나 먹어"라는 촛불의 외침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지속가능 경제를 제시할 새로운 수장을 기대하며

 

이렇게 현실에 어둡고, 구시대적 경제관을 가진 인사가 국민 경제에 얼마나 기여할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강 장관의 유임에 대해 곳곳에서 성토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자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강만수 장관을 도중하차 시키면 국정에 차질을 빚는다…(중략)…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장관직을 좀 더 수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했다."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한미 쇠고기 협상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는 이 대통령, 그리고 국민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수시로 말을 바꿔가면서 고도의 집착증을 보였던 이 대통령의 오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 대통령이 지칭한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한반도대운하를 고려한 발언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그리고 막가파식 불도저 경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 투기꾼과 개발업자들만을 배불리기 위한 카지노 경제가 아니라 서민들의 장바구니 경제, 4년간의 삽질을 통한 단기 일자리 부양책이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 일자리 창출을 추진할 수 있는 또다른 경제 수장이 하루 빨리 임명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강 장관은 지난 6개월간의 경제 실정으로만도 교체되어야 한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청와대가 그만두게 해야 한다. 


태그:#강만수, #한반도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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