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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을 주워 생계를 꾸리는 노인들, 시간이 흐를수록 탄식만 는다던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삼십 년 넘게 장터를 떠돌며 살아온 장돌뱅이들, 덤프트럭과 퀵서비스 기사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몽골에서 만난 두 소년과 한국을 다녀간 조선족 등 네 해째 나는 이들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이들의 탄식과 눈물 젖은 목소리를 몇몇 지면을 통해 보고해왔었다. 돌아보건대, 이들의 탄식과 분노, 절망의 목소리는 불혹의 나를 바로 세워준 회초리이자 죽비이기도 했다."(이 책, '여는 글'에서)

겉그림. 평범해서 또 너무 흔해보여서 잊기 쉬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박영희 지음. 삶이 보이는 창, 2007.
▲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겉그림. 평범해서 또 너무 흔해보여서 잊기 쉬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박영희 지음. 삶이 보이는 창, 2007.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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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처럼, 이런 저런 삶의 궤적을 좇아서 다니다 보면 어느 것 하나 남 이야기일 수 없다.

쓰고 버린 물건들, 그러니까 고물 같은 것들을 모아서 입에 풀칠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결코 지구 밖 우주 이야기는 아니다. 목숨을 걸고 도로 위를 달리는 퀵서비스 세계 역시 우리가 거니는 길 곳곳에서 마주치는 일상이다.

누군가 애써 보아주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 묻혀버릴 많은 우리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박영희 시인도 있다. 개인 르포 기사를 모아 세상에 내놓은 이 책에는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면 금세 발견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들을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삶이 보이는 창, 2007)를 통해 다시금 또박또박 살펴본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딜 가나 다 비슷비슷하다는 흔한 반응을 뛰어넘고, 먹기 위해 사는지 또는 살기 위해 먹는지를 묻는 질문도 뛰어넘어서 투명하고도 허무해 보이는 세상에 예쁜 색을 입혀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렇게 일부러 쉬이 지나쳐버릴 일상과 사람들에게 색을 입혀주어 세상에 한 마디 하게끔 하는 일은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가 바라던 바다. 책은 고물 이야기, 아니 고물을 줍는 노인들 이야기로 첫 발을 내딛었다.

소외된 일상의 끝모를 신음,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삶의 궤적은 출발지, 경유지, 기착지가 다 다르다. 그러나 희한한 것은 누구도 먹고 자고 싸는 일에서, 살고 지고 흘러가는 기본 틀에서 그리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굳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이렇게 우연한 일치점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이 어찌 구성되었는지 알기 위해 목차를 살펴보던 중 참 재밌다 싶은 점을 발견했다. 어찌 보면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장별 구분이 없이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각 이야기가 시작하는 쪽수만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내 눈에는 얽히고 설켜서 시작도 끝도 구분 지을 이유가 없는 우리 삶인 듯했다. 누구 삶이 더 훌륭하고, 누구 삶이 좀 덜 훌륭하다는 식으로 구분 지을 이유가 전혀 없는 똑같은 기준이 목차 구성 방식에 들어있는 듯했다.

책은 고물 줍는 노인들, 새벽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 위험한 질주에 이력 난 퀵서비스 종사자들, 이벤트 도우미 여성들, 세월에 밀린 탄광 종사자들, 노동자인지 아닌지 모를 덤프트럭 기사들 등등 '소외된 삶의 현장을 찾아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책은 그들 삶을 추적했다기보다 그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나 부안 방폐장 부지 건설에 얽힌 사연처럼 논란과 비난이 오갔던 이야기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겼다.

흔한 일상이지만 그래서 더 외면하기 쉬운 대한민국 '그림자'들의 애환은 이 책에서 나름대로 색을 입고 잠시나마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있어서 세상이 돌아간다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바로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이며 내일로 가는 길목이다'라고.

어느 농부는 자신들을 '기타 국민'이라고 했다. 농촌을 소외한 정책을 들고서 어찌 세상을 튼튼히 세울 수 있느냐는 질책도 아끼지 않았다. 뿌리와 같은 농촌을 버리고서는 도시가 꽃이 될 수 없다는 날카로운 비유가 그 '기타 국민'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면, 맛있는 밥상을 끌어안고 앉아서 밥알을 흘려가며 '바보상자' 속 농촌을 구경(?!)하는 것은 그야말로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할 위험한 태도이다.

박영희 시인은 일본에서 르포작가로 활동하는 하야시 에이다이씨가 한 말을 빌려 이 책이 담고자 했던 뜻을 풀어내었다. 하야시씨의 말에는 같은 사람끼리 서로 구분 짓고 거리 두는 태도에 대한 과감한 질타가 있고 르포성 글이 담아내야 할 가치가 들어있었다. 그의 지적은 박영희 시인에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요 부탁이요 때론 강한 요구였다.

르포작가 하야시 에이다이는 빛과 그림자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잘 말해주었다.

"진정한 문학은 뿌리에 있다. 작가라면 이 뿌리들의 아우성과 신음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꽃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그 꽃을 꺾어서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가 아름답고 행복한 꼭 그만큼의 고통과 눈물이 뒤따르거나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 '여는 글'에 실린 르포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씨의 말

오늘 먹고 살 일에 바쁜 이들에게는 뜬구름 같기만 한 개발 정책에 밀려서 또는 현실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빠지고도 법적 기준에 미달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우리 옆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의료 정책, 복지 정책 사각지대에 내몰린 사람들 이야기가 우리 바로 옆에도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은이는 각 사연마다 '취재를 마치고'라는 취재 후기를 남겼다. '소외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평범한 일상 그대로 책에 담겼고, 뒷이야기와도 같은 취재 후기가 그 끝 모를 평범한 일상에 흐릿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15가지 사연 아니 결국엔 그보다 더 많은 사연이 얽히고 설킨 이 책은 '여는 글'과 보조를 맞추어 줄 '닫는 말' 없이 끝을 맺었다. 무언가 또다른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듯이. 그렇다면 혹시,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서둘러 '닫는 말'을 상상할 게 아니라 차라리 계속해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장별 구분이 없이 무작정 시작하여 분명한 종착지 없이 끝난 이 책도 그럴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외된 삶의 일상을 찾아서' 떠나는 끝없는 여행은 사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덧붙이는 글 |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글/ 박영희 , 사진/김윤섭·김홍구·박영희·박정훈·안성용·염기동, 삶이 보이는 창, 2007.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 소외된 삶의 현장을 찾아서

박영희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7)


태그:#인간, #인권,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박영희,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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