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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부시 만나 활짝 웃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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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10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화두다. 부시 미 대통령이 어깨를 두른 모습으로 파안대소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사진이 오늘 아침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한겨레>도, <조선일보>도, <경향신문>도 그 사진을 썼다. 각도는 달랐지만, 그 메시지는 명징했다.

오늘 <경향>과 <조선>에는 접근하는 시각은 판이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 칼럼들이 각각 실렸다.

불안과 긴장...<경향신문>이 본 '파안대소'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는 오늘 기명칼럼에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파안대소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을 이렇게 읽었다.

"부시나 라이스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그렇게 행복하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 그리고 포옹·어깨동무의 제스처는 시민들을 안심시키기보다 불안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주권 일부를 넘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지기는커녕 미국 앞에 무장해제됐"기 때문이다.

이명박식 표현대로라면 '잃어버린' 지난 10년 동안 균형있는 한미관계에 대한 시민적 요구는 부쩍 커졌음에도, 이 대통령은 이에 걸맞은 줏대있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기는커녕 미국 앞에 '무장해제'를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쇠고기 협상·재협상·추가협상·고시의 고비마다 미국과 시민 요구가 대립했지만, 그는 시민이 아닌 미국의 요구에 응했"기 때문이다.

이대근 에디터는 김대중·노무현은 말할 나위도 없고, "김영삼도 미국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으며 "박정희와 이승만은 미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갈등을 두려워 말라'고 권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비판과 권유에 과연 귀를 기울일까? 아마 이대근 에디터도 이명박 대통령이 태도를 바꾸리라고 기대하고 이런 글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된 대통령이 대한민국 시민보다 외국을 더 대표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계속될 때 예상되는 파국적 결말에 대한 걱정 반 경고 반의 심정에서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피력해본 것일 게다.

오늘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는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나 여당이나 재계가 앞다퉈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하는 것을 두고 <경향신문>은 '"미 쇠고기 먹자" 이상한 정부'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8일 의원회관내 의원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 미국산 쇠고기 시식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8일 의원회관내 의원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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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미국산 쇠고기 등심 스테이크 시식회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한우보다 맛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예찬론까지 폈다. 청와대는 당초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불고기를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방문 후 귀국해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겠다고 밝혀 오늘로 그 식단을 미뤘다.

정말 이상한 정부다. 아무리 미국산 쇠고기 안전 문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쇠고기 협상을 잘못해놓고 미국산 쇠고기만 선전하는 게 한국 정부인지, 미국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의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청와대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다퉈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에 나서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의 강력한 주문 때문이다.

이들 신문들은 정부가 잘못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필요 이상으로 커진 만큼 "대통령과 대통령의 손주들까지 먼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 모범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다그쳤다.

이런 글이 나올 때도 그랬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나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입증한답시고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여는 것 따위는 정말 황당한 행태다. 한우 농가라도 찾아 한우농가들의 시름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미국산 쇠고기 홍보대사와 같은 일을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하는 것은, <경향> 이대근 에디터의 지적처럼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의 정체성이 의심되는 헷갈리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이념과 입장의 차이를 떠나 국가의 대표로서, 또 국민들의 대변자라면 당연히 먼저 챙기고 취해야 할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미 대통령과 어깨를 겯고 파안대소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결코 편히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불도저?... <조선일보>가 본 '파안대소'

최보식 <조선일보> 사회부장 또한 오늘 '과연 속았을까'라는 제하의 태평로 칼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물론 그가 접근한 시각은 이대근 <경향> 에디터와는 딴 판이다.

그는 '불도저'라는 이명박의 평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두 달 넘게 서울 도심을 마비시키는 동안 시위대의 정면에 나서지 않은 이명박, 특별기자회견에서 '소녀같은 감성'을 내비친 이명박, 그리고 장고 끝에 장관 3명을 겨우 바꾼 이명박, 시원시원하고 통이 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좌고우면하고 눈치보고 잔계산에 능하다는 인상밖에는 없는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더 이상 '불도저'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보식 부장의 칼럼은 이렇게 끝맺는다.

"시중에는 '우리가 속았어'라고 한탄하지만, 실제 그가 속인 적은 없다. 당초 우리가 그를 잘못 봤는지 모른다. '불도저'가 아닌, 이 낯선 대통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일 수 있는 칼럼이다. 같은 편한테서 속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힘든 일도 없다. 그런데 속은 것을 떠나 처음부터 잘못 보았을지 모른다니….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이런 냉소적인 칼럼에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자면 그는 '불도저' 같은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대통령의 조카들까지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여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식의 주문에 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경향신문> <한겨레>에 실린 이 대통령 사진과 <조선일보>에 실린 이 대통령 사진은 각도만 다를 뿐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파안대소하고 있는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경향>-<한겨레>와 <조선>은 전혀 딴판이다. 칼럼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이 국가 경영의 측면에서나, 또 정치적인 맥락에서 자신들의 활로가 될 수 있을지 심사숙고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쓰다고 다 약은 아니다.


태그:#한미정상회담, #대통령의 웃음,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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