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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국정 난맥상을 타개하기 위해 단행한 '7.7 개각'이 문제장관 3명만을 교체하는 '땜질 처방'으로 끝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나타난 국정의 극심한 혼란상을 감안할 때 총리 교체를 포함한 대폭 개각이 예상됐지만, 이 대통령은 한승수 총리와 환율관리 실패 등의 책임이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대부분의 각료를 유임시켰다.

 

내각 총사퇴 이후 27일이나 끌고온 개각이 규모나 내용면에서 어떠한 '쇄신'과 '감동'도 찾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야당에서는 "이 대통령이 벌써 정국이 안정됐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수언론들조차 '생색만 낸 개각', '찔끔 개각', '감질난 쇄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개각 요인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 대통령은 일본 <주니치신문> 사장 등과 가진 회견에서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 정부로 교체되면서 정치적인 구호도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시작한 탓에 (혼란은) 더 이상 크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8일 <주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교체의 폭이 크지 않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며 "사실 이번 내각은 이번 일(쇠고기 파동)이 있기 전 두 달 정도 일을 한 것인데 제대로 일을 해볼 기회도 없었다, 책임을 묻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쇠고기 추가협상과 2차례의 대통령 대국민담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 교체 등의 조치로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됐다고 보고, 소폭 개각 만으로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말대로 "책임을 묻기에 무리가 있다"거나, "더 이상 혼란이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지금까지 개각을 미뤄 왔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조각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등 파격적인 내각 교체 가능성까지 내비친 바 있다.

 

대통령 그릇된 상황 판단과 대처가 오히려 사태 키워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두 달 넘게 계속되는 동안 고비고비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상황판단과 대처방식은 사태를 수습하기 보다 오히려 논란을 키운 측면이 컸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쇠고기 졸속 협상을 타결지으면서 첫 단추를 잘못 꿴 이 대통령이 5월초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알아보라"며 제기한 배후론이 이후 언론에 보도되면서 타오르는 촛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미 촛불집회가 장기화 조짐을 보였지만, 뒤늦게 첫번째 대국민담화를 내면서 '광우병 괴담'을 거론하는가 하면, 추가협상이 채 타결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성급하게 두번째 대국민담화에 나서 비난을 자처했다.

 

추가협상 타결 직후에는 속전속결로 장관고시를 강행하는 바람에 등원을 준비하던 야당의 명분을 빼앗았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장관 고시를 1주일만 늦췄어도 야당이 국회에 등원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국회가 민생현안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은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뼈아픈 반성"을 얘기한 지 5일 만에 "법 질서 확립"을 치켜들며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혀 또 다시 '조급증'과 '무감각'을 드러냈다. 촛불집회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라 힘으로 눌러서 촛불을 끄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종교계의 '개입'을 불러 스스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진화하는 '촛불'... 이번 개각이 두고두고 화근 될 수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멀쩡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두고 "더이상 촛불시위는 없고, 깃발시위만 있다"는 식의 '필요없는 도발'로 촛불시위대를 자극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달 20일 청와대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하면서 이동관 대변인만 유임시킨 것이 결국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종단 대표들이 모여 촛불집회의 발전적 방향 전환을 탐색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게 바로 '7.7 개각'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각이 쇠고기 파동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은 물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땜질 개각'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내각이 총사퇴했던 그 때의 위기상황을 벌써 잊은 듯하다"면서 "오늘의 개각은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생색내기용으로, 오만한 개각"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혜 창조한국당 부대변인도 "보은인사와 돌려막기 인사에 이은 진정성 없는 인사방식을 다시 한번 소개한 것에 다름 없다, 전면적으로 내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총리보다는 강만수 장관을 교체하는 것이 이번 개각의 포인트였고, 대통령에게 수차례 이를 건의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워낙 강 장관을 유임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쇠고기 정국을 돌아보면 대처는 3박자 느리고, 낙관은 1박자 빠른 모습을 보여온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이번 '7.7 개각'이 새로운 진로 모색을 하고 있는 '촛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촛불이 '광우병 쇠고기'를 넘어 이명박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붙을 경우 이번 개각에서 강만수 장관 유임이 두고두고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태그:#7.7 개각, #강만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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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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