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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사회의 최대 화두는 미국 쇠고기 문제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태평양을 건너올 것으로 예견되는 '광우병 공포'일 것이다. 하나의 외교문제 정도가

아닌 일국의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까지 몰고가고 있을 정도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광

우병 소' 문제와 인간 광우병 공포.

 

원인도 정체도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현실과 국민들이 즐겨먹는 먹거리 중 하나인 쇠고기를 통해 감염되며 일단 걸리면 100% 사망에 이른다는 그 무차별성은 광우병을 에이즈(AIDS)보다 더 두려운 질병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최근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작금의 이런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지난 2월 출간되

었던 한 권의 일본 소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콜링_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

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에 의해 변화된 커뮤니케이션과 인간관계

속에서 태어난 현대인들의 공포와 고독함의 무서움을 다룬 호러 미스터리 소설로 일본의

권위있는 미스터리 문학상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한 작가 야나기하라 케

이(柳原 慧)가 쓴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지금 한국의 독자들이 이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책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여 방치되

었다가 주인공들에 의해 발견되는 여성 '쓰시마 에미'의 직접적인 사인이 바로 '인간 광우

병'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렇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가장 커다란 비밀을 담고 있는 키워드인 '리가버러지한케머켜든다'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문장의 의미를 풀어가면서 지금 한국인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며 두려워하고 있는 질환인 인간광우병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간밤에 꾼 꿈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쓰시마 에미의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정상적인 프리온을 만나게 되면 잇달아 모

양이 바뀐다고 한다. 리본처럼 깔끔한 나선을 그리는 정상 프리온이 평평한 막대기 모양으

로 변하고, 뇌 안에 축적된다.

 

이상 프리온에 둘러싸인 신경세포는 활동을 저해 받고, 망가지고, 소실되어 뇌에는 구멍이 뻥뻥 뚫린다. 그녀는 그것을, 뇌가 벌레에게 먹히는 것을 느꼈을까? 기묘한 벌레가 뇌 속을 파먹으며 기어 다닌다. 자신의 의식이, 기억이 벌레의 먹이가 되어 구멍이 뚫려 나간다. 급기야 전부 벌레에게 먹히고 만다. 존재조차, 목숨조차. '리가버러지한테머켜든다' 그말은 그야말로 이상 프리온에 먹혀 존재가 소실되려는 여자의 비통한 외침이었던 것이다" (책본문 223~224쪽)

 

이는 최근 각종 언론을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인간 광우병의 발병 기전과 진행

증상을 그대로 서술하는 한편, 그것을 '뇌가 벌레에게 먹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인간 광우병에 걸린 '쓰시마 에미'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막연한 공포에 떨며 기술한 일기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 내용 역시 단순

한 픽션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발병 사례도 없기에 환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영국에서 취재해 온 단편적인 영상으로만 소개되고 있는 인간 광우병의 진행과정이 이 책에서는 몸서리쳐질 정도로 상세하게, 그것도 1인칭 시점으로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하여 아직까지는 그 감염 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쇠고기를 통한 경구 감염'이 아닌 ' 기 감염자의 태반 추출물을 직접 주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불법 성형 시술이라는 방법으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의 시체에서 추출한 이상 프리온 감염물을 타인에게 직접 주입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시오리가 건조 경막을 통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에 감염되었음을 안 것은 1987년. 건조

경막으로 만든 콜라겐을 주사로 놓아 준 뒤 몇 년 지난 무렵이었다. 미국에서 크로이츠펠

트 야콥병 감염 환자가 한 명 나와 독일의 건조 경막 수입이 금지된 것이다. 잠복기가 얼마

나 되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시오리 자신은 의심이 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안심할 수

있었다.

 

광우병 소동에서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의 존재가 부각되고, 후생성이 '라이오듀라' 사용금지 명령을 내린 것은 1997년. 미국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지 무려 10년이나 지난 뒤였다. "늦었죠. 그때까지 일본에서 사용된 건조 경막은 50만 개. 감염으로 인정된 것은 약

100건. 확률은 5천분의 1. 그렇지만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질 거예요. 잠복기가 끝나 앞으로

발병할 사람이 늘어날 테니까요. 겁이 났죠.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가 어떤 식으로 죽

는지 내 눈으로 봤으니까." (책본문 280~281쪽)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2000년, 20만 명의 환자들에게 광우병에 감염되었을 위험이 있는

경뇌막을 이식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엄청난 사회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뛰어난 인체 친화성과 약효로 각광받아 온 태반 추출물 등이 이상 프리온에 의하여 바이오병기로 만들어져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대량 살상 흉기로 둔갑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

일까. 게다가 그 결과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야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

처럼 두렵고 섬뜩한 공포는 또 없을 것이다.

 

<콜링_ 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의,

외모지상주의, 성형중독,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인간 광우병) 등 지금 우리 현대사회

를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거기에 호러와 미스터리, 서스펜스적인 재미를 더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흥미를 한층 더 돋우게 만든다. 책장을 처음 넘기면 나오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독백, 그리고 곧이어 오감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끔찍한 시체 처리의 현장 묘사, 그러나 이런 도입부와는 달리 이 작품은 독자들의 혐오감을 자극하여 재미를 주는 말초적인 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와 가치는 다양한 의외성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책 <콜링_ 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윤덕주 옮김/ 스튜디오 본프리 발행/ 가격 9,800원


콜링 - 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윤덕주 옮김, 스튜디오본프리(2008)


태그:#책, #광우병, #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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