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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펑나무가 사원의 지붕을 점령하고 한 몸이 되었다.
▲ 거대한 뿌리가 점령한 타프롬 사원 거대한 스펑나무가 사원의 지붕을 점령하고 한 몸이 되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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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인가 우리 집 개 '메리'가 미쳤다. 눈에 누런 인불을 켜고 마루 밑으로 들어가 평소 따르던 나한테까지 '컹컹' 짖어댔다. 아버지가 마을 어르신들끼리 추렴하신 개고기를 드시고 찌꺼기를 개밥그릇에 넣어 주었는데 그걸 먹고 나서부터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유달리 영리했던 놈이라 제 놈이 먹은 고기가 동족의 고기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결국 마을 어른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메리는 땅에 묻혔다. 보신탕 애호가였던 동네 어른들은 '미친개를 먹으면 사람도 미친다'며 먹지 않았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족의 고기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그 고기를 사람에게 다시 먹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보면서 그때 생각에 섬뜩해진다.

나무가 뿌리내린 사원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흔적만 남았다.
▲ 사원을 초토화시킨 나무 나무가 뿌리내린 사원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흔적만 남았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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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DDT(살충제)를 공중 살포했다. 모기 박멸에는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DDT를 먹은 바퀴벌레를 도마뱀이 먹고 그 도마뱀을 먹은 고양이들은 약물중독으로 자꾸 죽어갔다. 결국 고양이들이 씨가 마르자 쥐떼가 급속히 번식해 섬은 페스트(흑사병)와 발진티푸스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월남전에 참전하신 작은 아버지에 따르면 미군이 '베트콩' 근거지를 없앤다고 밀림에 고엽제를 살포할 때 한국군들이 그걸 몸에 새하얗게 뒤집어 썼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 때문에 지금은 각종 암과 피부병, 신경통에 시달리고 있고 작은 아버지 역시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숨어들어 통곡했다는 통곡의 방
▲ 통곡의 방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숨어들어 통곡했다는 통곡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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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하는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다스린다고 복종하는 것이 아닌데 끊임없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결국 그것이 재앙이 돼 자연의 엄청난 복수에 직면하게 됐을 때 후회하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시골에는 빈집이 참 많다. 빈집을 지켜보면서 자연의 힘에 새삼 놀란다. 사람이 몇 달만 머무르지 않아도 지붕에 비가 새고 서까래가 썩어들어가 괴기스럽게 변한다. 어떻게 아는지 쥐와 개미 등 온갖 곤충과 날짐승들이 지붕 아래로 모여들어 대들보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수백 년 고관대작의 대옥도 3년을 넘기지 못한다.

나무뿌리 사이에 고개를 내민 관음상이 은둔중인 수도자 같다.
▲ 나무뿌리에 숨은 관음상 나무뿌리 사이에 고개를 내민 관음상이 은둔중인 수도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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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승려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캄보디아의 타프롬 사원도 몇 백 년만에 폐허로 변했다. 자연의 힘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장대하고 파괴적인 것 같다.

타프롬 사원은 12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만든 불교 사원이다.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첨탑 그리고 566개의 집단 주거 시설을 갖춘 이 사원을 당시 3000명의 성직자와 1만2000명의 일꾼들이 관리했다고 한다. 면적은 가로 600m, 세로 1000m로 앙코르와트 유적에서는 큰 사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사원 지붕을 덮어 이제는 공존하는 나무뿌리
▲ 사원을 뒤 덮은 자이언트 팜나무 사원 지붕을 덮어 이제는 공존하는 나무뿌리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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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크메르왕국 멸망 후 방치되어 지금은 이엥나무와 스펑나무 같은 열대림이 건물 전체를 덮었다. 천장과 돌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주변이 빠르게 밀림으로 뒤덮이고 있다. 사원 곳곳에 유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방치되어 있고 자이언트 팜나무 뿌리가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듯 건물 담과 벽을 덮으며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베어내거나, 껍질을 벗기거나, 약을 주사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무를 죽였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건물 틈새로 뿌리를 내린 나무가 제거되자 오히려 건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그런데 역으로 이 기괴한 자연과 유적의 공존을 보려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나무와 유적이 뒤엉킨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대신 성장억제제를 정기적으로 주사해 나무 뿌리에 의한 더 이상의 파괴를 막고 있다.

구멍난 곳에 보석이 박혀있는 곳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모두 도굴당했다.
▲ 보석의 방 구멍난 곳에 보석이 박혀있는 곳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모두 도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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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는 돔 형식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이다. 천장을 개방해 해와 달빛이 비추게 했으며 벽에는 사파이어와 루비와 같은 진귀한 보석을 수천 개 박았다. 해와 달이 하늘의 중앙에 자리 잡으면 보석들이 빛을 발하는데 왕은 그 빛으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어머니의 영혼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모두 도굴당하고 현재는 남아 있는 게 없다.

'통곡의 방'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통곡한 방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방에서는 박수를 치거나 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울리지 않는데 건물 벽에 기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 '쿵쿵쿵' 소리가 방 전체에 울린다. 참으로 신기하다.

지붕 위를 뒤덮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
▲ 지붕 위를 뒤덮은 스펑 나무 지붕 위를 뒤덮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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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는 타프롬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끌려온 백성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방이라고도 전해진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울어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 맘 놓고 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때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죽어가던 사람들의 한이 건물에 서려 가슴을 치면 소리가 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자연은 가만히 놔두면 된다. 모든 재앙의 원인은 인간이 건드리는 데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자연은 인간이 탄생시킨 것들과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무생명을 흙으로 데려간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이제는 중단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출구
▲ 사원 뒤편의 관음상 출구 그나마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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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침입을 피한 탑들
▲ 사원 내부의 불탑들 자연의 침입을 피한 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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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타프롬사원, #앙코르와트, #통곡의방, #씨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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