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압에 나선 전투경찰대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진압에 나선 전투경찰대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촛불 집회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촛불 든 국민도 힘든 일이지만 진압에 나선 전투경찰대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애초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훈련소로 자진 입소한 청춘들이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투경찰대원이 되어 가족과 친구들이 대부분인 국민을 상대로 전투를 하게 되었다.

전투경찰, 굴욕의 역사가 낳은 '사생아'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지금의 전투경찰은 의무경찰과 전투경찰로 나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가 전투경찰로 차출된 '작전전투경찰순경'과 군인이 아닌 경찰 업무로 군 복무를 하겠다는 이들이 선택한 '의무전투경찰순경'이 그것이다. 이들은 전경과 의경을 가릴 것 없이 '전투경찰순경'이라는 이름으로 군 복무를 대신한다.

전투경찰은 굴욕의 역사가 낳은 '사생아'이다.  미국에 작전지휘권을 넘긴 이승만 정부는 공비 토벌을 이유로 '서남지구대특별법'을 만들었다. 미국의 허락 없이 군 병력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공비 토벌이 끝나자 특별법은 폐기되었고, 그것을 부활시킨 이가 박정희였다. 애초 설립 근거는 '대간첩작전'이었으나 전두환 정권이 '치안업무 보조'를 추가함으로써 오늘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간첩(무장공비를 포함한다)의 침투거부·포착·섬멸 기타의 대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지방경찰청장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국가경찰기관의 장 또는 해양경찰기관의 장 소속하에 전투경찰대를 둔다." - 전투경찰대설치법 제1조 (설치 및 임무) ①항

대간첩적전을 수행해야할 전투경찰이 '치안업무 보조'라는 미명 아래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의무경찰이야 본인이 선택했으니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하지만 훈련소에서 차출된 전투경찰의 경우 '치안업무 보조' 임무를 놓고 갈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일이라는 게 국방의 의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투경찰에게 부여된 업무를 무작정 거부할 수도 없다. 전투경찰대설치법이 그걸 말해준다.

"직무상 공격하여야 할 적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공격하지 아니하거나 직무상 당면하여야 할 위난으로부터 이탈한 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제9조 (벌칙)②항

법에는 직무상 '공격해야 할 적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없이 공격하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대간첩작전에서의 '적'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적'이지만, 전투경찰법은 집회나 시위를 하는 국민까지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부모와 친구들을 적으로 만드는 전투경찰대법

전경들 가슴에 한 시민이 꽃을 꽂아 주었다. 잠시 후 고참이 와서는 이 꽃을 꺾어 버렸다.
 전경들 가슴에 한 시민이 꽃을 꽂아 주었다. 잠시 후 고참이 와서는 이 꽃을 꺾어 버렸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집회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전투경찰법에는 집회 참가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연일 벌어지고 있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어린 여학생과 아이들, 노인, 주부까지 모든 이들이 전투경찰에겐 '적'인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육군훈련소로 입소한 청춘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졸지에 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을 적으로 돌려야 하며, 그 적을 곤봉과 방패로 공격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라는 것이 따로이 있을 수 없으니 상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징역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전투경찰이다.

정당한 사유와 상관 없이 전투경찰법은 또 다른 벌칙을 만들어 두고 있다. 그러니 집회 현장에서 아버지를 만나도, 형과 누나를 만나도 방패로 찍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전시·사변 또는 간첩의 출현으로 작전에 동원된 경우에는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82.12.31> - 제10조 (벌칙)①항

여기에서 상관이라고 하면 직업상 경찰인 사람들을 말한다. 직업 경찰들은 전투경찰을 수족처럼 부리지만 그에 대하여 전투경찰은 어떤 반항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양심적으로 판단했을 때 부당한 명령일지라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과 같은 신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전투경찰대원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며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을 상대로 전환복무 해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괘씸죄'가 적용됐는지 근무태만을 이유로 15일의 영창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차출되는 전투경찰, 심리적 갈등 커

그런 비극은 행정심판을 청구한 전경대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단보다 거센 군기와 내무반 생활로 인해 빈번한 사고를 일으키는 곳도 전투경찰이다. 군인으로 복무한다면 생길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해야 하는 전투경찰은 그 중에서도 '국민을 적으로 규정 짓고 공격하는 일'이 가장 곤혹스러울 것이다. 전투경찰대원이 정신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건강한 정신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청춘들이 국민의 얼굴을 방패로 찍고, 국민의 뒷머리를 곤봉으로 때리는 훈련을 받아야 하니 그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도 없다. 정체성 혼란으로 생기는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국가에서 나 몰라라 하는 실정이고 보면 불쌍한 것은 '전투경찰'이라는 말도 맞는 듯싶다.

반면 직업 경찰들은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직업 경찰은 치안 서비스를 담당하며 '민중의 지팡이'로 직장 생활을 한다. 그러하니 그들은 집회를 진압함에 있어 가장 적법하게 쓸 수 있는 '전투경찰대'를 동원한다. 힘든 일을 굳이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촛불 집회 진압을 전투경찰에 맡긴 경찰 간부들이 그 시간 당구장에서 당구를 쳤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국민이 적이 아니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잘못하다가 '목'이라도 달아나면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큰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투경찰대원들은 다르다. 국가에서 정한 법을 어길 수 없기에 상관의 명령이라면 섶을 지고라도 불로 뛰어들어야 하는 게 전투경찰의 신분인 것이다.

애타는 것은 부모들 "우리 아들 육군으로 보내줘요!"

이쯤되면 애가 타는 것은 전투경찰 아들을 둔 부모와 가족들이다. 청천병력 같은 일이 하도 많이 생기니 하루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없는 그들이다.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무사고를 빌어 보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다.

어차피 적으로 규정 짓고 싸우는 싸움이니 그것은 전쟁과 다름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부상을 입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지난 28일 밤 조선일보 앞에 세워진 차벽 뒤에는 부상당한 전경이 구급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경 부모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구급대원이 도착하자 서로 자기 아이를 옮겨달라고 소리쳤다. 어떤 어머니는 경찰 간부에게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애원했으나 그 애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차가 병원 후송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이되 경찰이 아닌 전투경찰은 오늘도 적을 상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야 하고 국민은 그들의 곤봉과 방패를 피해 밤거리를 뛰어야 한다. 그 중에선 전경대원의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다.

"위에서 하라면 하는거야. 그냥 우리는 어떻게하면 더 날카롭게 날을 갈아서 찍어내릴까 이런 생각뿐이야."

어느 블로그에 실린 전경대원의 말에서 우린 대한민국이 처해진 현실을 본다. 슬픈 대한민국의 6월이 그렇게 간다. 


태그:#전투경찰, #진압, #촛불, #유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