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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응기조 이면에는 "촛불국면이 꺾였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촛불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야 한다'는 답변보다 높게 나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와 촛불집회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언론사 기자들에게 "이제 '촛불집회'라는 표현은 안 써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당초 촛불집회 시위대를 일반 시민과 폭력시위꾼으로 분리하는 전략을 쓰던 이명박 정부는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전체 촛불집회 시위대를 '폭력시위꾼' '폭도'로 싸잡아 매도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를 강제종료시키기 위해 공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사전정지 작업이다.

 

주말인 29일 청와대와 정부·검경이 "최루액을 살포하겠다"며 강경진압을 천명하고 나선 것이나, 30일 새벽 광우병대책회의와 참여연대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도 촛불국면을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와 청와대의 무리수는 촛불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 28일 집회에는 '6·10' 이후 최대 인파가 다시 모였다. 대책회의는 2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중 촛불집회와 주말인 5일 전국 100만명이 참가하는 대국민 촛불대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촛불이 꺼졌다고 장담하는 정부가 오히려 더 큰 촛불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매맞는' 국회의원에게 국회 개원 기대?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오전 논문 표절 의혹으로 발령이 보류됐던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대통령은 정진곤 수석을 향해 "공직자 되기 힘들죠?"라고 웃어보인 뒤 "교육부문(의 개혁을) 계속 진행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써, 그동안의 논란을 씻어내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박형준 홍보기획관도 공식 임명했다.

 

이로써 2기 대통령실 비서진에 대한 조직개편과 인선이 마무리 됨에 따라, 청와대는 이번 주부터 촛불정국으로 뒤숭숭했던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 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29일) 브리핑에서 "시위가 오늘을 고비로 진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취임 초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 출발하는 심정으로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본격적인 국정 챙기기를 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병원 경제수석이 지난 28일 수석 임명 후 처음으로 충남 태안군을 찾아 농어촌 현장을 둘러보고 농업인들과 간담회를 연 것이나, 이 대통령이 이번 주초 충북지역을 방문, 충북도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지역내 민생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본격적인 민생 행보에 나섬으로써 지난 한 달이상 촛불집회로 중단됐던 외부행사를 재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초·중·고등학교 급식소를 찾아 학생들을 설득하고 주부·학부모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당·정·청 간의 협조체제도 강화할 예정이다. 이 대변인은 "7월 3일 여당 전당대회에서 지도체제가 정비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당·정·청 간의 협조체제도 보다 책임 있고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8대 국회 개원이 한달 이상 지체된 상황에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정상화는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국정수습책의 한 축인 개각과 관련 국회 개원을 선제 조건으로 내건 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전경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강제 연행되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국회 개원은 갈수록 요원해 보인다.

 

청와대 대변인에게만 안 보이는 '촛불집회'?

 

정부와 청와대는 민생행보를 통한 국정정상화와 함께 2개월 가까이 계속된 촛불정국을 탈피하기 위해 시위대를 '과격·폭력시위꾼'으로 매도하는 등 강경 기조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이른바 강온양면 전략이다. 촛불집회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국정정상화는 물론 정권의 존립기반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조치다. 

 

이동관 대변인은 "언론에서 '촛불집회'라는 표현은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는 한편, "초기에 평화적인 의사표현, 문화제적 성격이 가미됐던 촛불집회와는 이미 너무나 많이 성격이 변질됐다"며 "소수에 의한 불법 폭력시위화되고 있는 데 대해서, 이른 바 국민들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폭력성만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여론조사에서조차 국민의 절반 이상(53.8%)이 "경찰이 과잉진압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또한 40% 가까운 국민들은 여전히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점에서 이 대변인의 해석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청와대 대변인이 자의적인 해석을 근거로 언론에 대해 특정 표현의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편집권에 대한 간섭이자, 언론 자유의 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자칫 5공화국 시절 '보도지침'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촛불집회'를 부정하고 싶은 청와대의 욕구는 검경의 공안정국 조성 흐름과 맞닿아 있다. 경찰은 "심야 불법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집회조차 불허했다.

 

이는 결국 도심 곳곳에서의 '게릴라성 시위'를 양산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마찰은 더욱 격렬해졌다. 정부와 청와대의 원천봉쇄 방침이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하고, 다시 경찰의 폭력진압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은 "촛불집회에 10%도 안 되는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고 입을 맞추고 있지만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여전히 유모차 부대가 선두에 나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갔던 촛불들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주말 시위대의 규모는 '6·10' 이후 최대인 10만 명을 넘겼다. 오는 7월5일에는 전국 100만의 촛불을 예고하고 있다.

 

멀쩡히 있는 촛불집회를 두고 "더 이상 촛불집회는 없다"는 식으로 착각한 게 현 사태를 야기한 근본 원인이다. 모든 책임은 '뼈저린 반성'을 잊은 채 힘으로만 돌파하려는 이명박 정부에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태그:#촛불문화제,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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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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