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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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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이제 '폭도'가 됐다. <조선일보> 27일 사설 '청와대만 지키면 나라는 무법천지 돼도 그만인가'에서 시위대를 '난동배' '폭도'라고 지칭했다. 이런 식이다.

"그 때(25일 저녁)부터 26일 아침 6시까지 11시간 동안 광화문 일대는 난동배들이 날뛰는 무법 해방구가 돼 버렸다."

"무정부 상태가 다른 게 아니다. 폭도가 날뛰고, 경찰은 두드려맞고, 기자가 집단폭행을 당하고, 신문사는 테러당하고, 선량한 시민은 겁이 나 나다닐 수가 없다. 그게 정부가 없는 것이지 무엇이겠는가."

<조선일보>는 '청와대만 지키는 이명박 정부'는 '정부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수천명의 시위대도 통제 못해 서울 한복판을 무법천지로 방치하고 국민 재산을 못지켜주는 정부라면 정부 자격이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을 질타했다.

5월 말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나온 시민들이라고 평가했던 <조선일보> 최보식 사회부장도 27일 1면에 직접 쓴 기사(청와대만 지키는 정권)에서 '일반 시민들'의 이름으로 "이 정부가 존재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부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가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의 존립 필요성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를 '난동배'로 모는 <조선>과 <동아>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 강행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26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50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뒤 '조선일보 폐간'을 외치며 조선일보사의 관계사인 코리아나호텔 로비에 흙과 쓰레기를 집어 던졌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 강행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26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50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뒤 '조선일보 폐간'을 외치며 조선일보사의 관계사인 코리아나호텔 로비에 흙과 쓰레기를 집어 던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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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왜 이리 세게 이명박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조선일보>가 3면 한 면을 털어 전한 어제(26일) 새벽과 어젯밤 광화문 풍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어제 새벽 광화문 풍경을 전한 기사에서 "시위대들이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로 몰려가 망치로 현관의 제호를 떼어냈으며, 먹다 남은 라면쓰레기 등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현관 유리문에 던지거나 앞쪽에 쌓아놓았다"고 보도했다.

'어젯밤'에도 조선일보사 일부 부서가 입주해 있는 코리아나호텔 로비가 시위대들이 투척한 오물 등으로 뒤범벅이 됐으며, 동아일보 사옥은 시위대가 던진 돌 등으로 일부 대형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또 시위현장을 취재 중이던 <동아일보> 변 아무개 기자가 시위대에 끌려 다니면서 폭행을 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조선일보>는 25일 밤과 26일 새벽 촛불집회와 경찰의 진압 소식 등을 전한 26일자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을 '광화문, 법은 죽었다'로 뽑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자사 기자가 폭행당한 소식 등을 전한 27일자 기사의 제목을 '시위대, 동아-조선일보 사옥 잇단 공격'으로 뽑았다. 광화문에서는 그래도 조금 떨어져 있어 시위대의 '직접 공격'을 피해간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공권력이 짓밟히고 있다'로 달았다.

조·중·동이 일제히 시위의 폭력성과 과격성을 부각시키고, 공권력의 무력화를 문제 삼고 나서는 것은 결국 경찰의 강경진압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조선일보>가 "청와대만 지키는 정부와 대통령이 과연 존재할 의미가 있느냐"는 식으로 다그친 것은 더욱 그렇다.

그들이 그동안 당한 수모와 곤경을 생각해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전한 것처럼 두 신문사는 어제 그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와 봉변을 당했다.

시위대가 현관 등에 두 신문사를 비난하는 스티커 등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오물을 현관 앞에 투척하는가 하면 여기에 집단 방뇨까지 했다고 하니, <동아일보>사나 <조선일보>사 사람들이 겪었을 수모가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할 만 하다. 거기에 현판까지 떼이는 수모까지 당하고, 취재 기자 까지 폭행당했으니 그들로서는 '무법천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경찰의 시위대를 '폭도'나 '난동배'들로 몰아붙이며, 법질서를 내세워 경찰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과 시위대의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두 달 가까이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축제 같은 평화 집회와 시위로 일관해왔던 촛불집회이지만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 이후 그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다. "지금껏 평화적 의사표현으로 얻은 게 뭐냐"며 비폭력 원칙을 더 이상 고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세를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 측의 대응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불과 얼마 전 '뼈저린 반성'을 운위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정체성 도전 엄단' 방침으로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잠시 시위 진압 등에서 유연하게 대응했던 경찰의 태도도 강경 진압 쪽으로 돌아섰다. 어제, 그제 밤샘 시위에서는 다시 살수차를 동원했다.

과격해지고 있는 시위대와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는 경찰의 충돌이 예사롭지 않다. 상황이 이런 마당에 강경진압을 촉구하는 조·중·동의 여론 몰이는 결국 경찰의 무리한 진압을 불러 파국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중·동에 대한 분노, 이전과는 다르다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강행에 반대하며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밤샘시위를 벌인 가운데 26일 새벽 일부 시민들이 동아일보 정문 유리를 깨부수어 놓았다.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강행에 반대하며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밤샘시위를 벌인 가운데 26일 새벽 일부 시민들이 동아일보 정문 유리를 깨부수어 놓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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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파업이나 시위 등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했던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사정이 판이하다는 점에 대해서 조·중·동도 오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위나 집회 등이 대부분 '특정집단'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지금의 사태는 바로 <조선일보>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 주력이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나온 '촛불'들인 까닭이다.

조·중·동은 요 며칠 사이 '촛불'이 변질됐다는 주장을 많이 편다. '순수촛불'은 줄고, 그 자리를 '프로촛불'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조·중·동에 대한 광고주 불매운동도 많았고, 집회나 시위 때마다 조선일보사나 동아일보사 앞에 가 항의시위를 한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광고주 불매운동이 과거와는 전혀 딴판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과거 이들 신문사 앞 어떤 항의집회나 시위에서도 지금과 같은 과격한 행위는 없었다. 조·중·동이 그런 차이를 간과한 채 과거와 같은 강경 대응만을 부추겨서는 되레 거센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조·중·동은 그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왜 이처럼 크고 과격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검찰의 사법처리에 기대 광고를 할 수 있고, 경찰의 보호를 받지 않고는 취재할 수 없는 신문사라고 한다면 그 존재 의의가 의심되지 않겠는가.


태그:#조중동, #촛불집회, #강경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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