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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3살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프로필에 나와 있듯이 가입한 정치적인 단체가 있다거나 지금까지 어떠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적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대학생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은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이었습니다. 

 

사진에 나와 있듯, 주말이면 주로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모습은 이렇습니다. 집회에 참가하는 날이면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새벽이면 길거리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입 돌아갈까 걱정하며 새우잠을 잡니다.  

 

처음 집회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가 회원으로 있는 여성커뮤니티에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서부터입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폭력·과잉·강경진압이 실제로 시민들에게 행해졌고 어린 학생·장애인조차도 무자비하게 짓밟혔습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 날의 상황과 사진들은 공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민주주의의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인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80%가 본다는 '조중동'에는 토요일의 상황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언론 플레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몇원에서 몇십만원까지... 자발적으로 시작된 모금행렬

 

이런 언론과 그를 조정하는 정부에 분개한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분개한 네티즌들은 이 와중에도 진실을 보도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응원하며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광고를 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이트에서 각종 모금이 시작되었고 작게는 몇원에서 크게는 몇십만원까지 개인의 사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모금에 동참하였습니다. 네티즌들의 힘이 얼마나 폭발적인가를 알게 해주는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금액은 비단 광고게재로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밤을 새며 촛불을 밝히는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운동으로 번졌고 새벽에 허기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D사이트의 음식갤러리 회원들의 모금현황입니다. 약 2천만원정도가 모여 김밥 1만줄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생수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키보드 워리어'라는, 주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던 네티즌들의 역할은 시작됐습니다. 현장에 나간 사람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실시간으로 현장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주었습니다. 또 전경과 대치하는 위험한 상황이나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책까지 모색해 실시간으로 문자전송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뜻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의 숙제',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시작

 

상황이 급박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론은 "평화집회"를 외치는 시민들을 거리의 무법자로 몰아갔습니다. 쇠고기로 시작된 운동은 차츰 현 정권과 언론, 기업간의 유착관계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 더 이상의 침묵시위는 의미가 없고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왜곡된 보도를 일삼는 조중동을 압박하기 위해서 그들의 최대 수익원인 광고를 막기 위해 '조중동 광고 금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들의 명단을 '오늘의 숙제'라는 제목으로 정리를 해놓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당 회사에 전화를 해서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기업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민들이 지불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이 부당한 언론의 광고료로 사용되는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롯데와 농심을 필두로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의 건전한 의견을 받아들여 진심어린 사과문을 공지하고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불매운동 중에도 이른바 '훈 중소기업 살리기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훈 중소기업이란 훈남·녀에서 사용되는 '훈훈하다'라는 뜻의 훈과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고 지지하는 중소기업'의 합성어입니다. 그 운동의 예로 <한겨레>에서 운영하는 참거래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초보농부의 눈물어린 상추'와 오이는 40분만에 품절됐습니다. 접속이 폭주하여 사이트가 다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커뮤니티 내에 "상품은 보지 말고 결제부터 누르고 빨리 나와라" "택배를 받았을 때 뭐가 왔을지 기대된다" 등의 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온라인의 네티즌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졌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앞서 말씀드렸던 음식갤러리에서 김밥과 생수를 현장에서 보급하는 모습입니다.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진 지 약 2주 정도 만에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김밥 싼 은박지만 봐도 물린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다가도 김밥에 붙어있는 민주주의 응원 스티커를 보면 모두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시위에 참가하느라 중·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병든 닭처럼 졸고, 대학생들은 시험 준비를 하지 못해 F학점을 맞고,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고, 피곤에 찌들어 얼굴에 뾰루지가 나는 상황에서도 이런 든든한 지원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31일, 어마어마한 인파가 서울광장에 모이다

 

 

우리의 배후는 보급품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의료진, 민변에서 나오신 분들은 실제로 현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었고, 커피봉사를 하거나 라면을 끓이시는 분들은 각자 낮에는 직장에 가시거나 학교에 다니시는 시민들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결합하여 매일밤 우리를 지원해 주시기 때문에 촛불집회는 그 울타리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촛불집회에 나와서 신체간증을 하시며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집회에만 나오면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찐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5월 31일 집회는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을 본 하루였습니다. 경찰 추산과는 다른 어마어마한 인파가 서울광장에 모였습니다. 강제진압이 정점에 다다른 이날의 새벽은 지옥 같았습니다. 새벽이 되자 CCTV를 차단하고 조명을 꺼서 현장상황을 전달해주던 네티즌들은 당혹해 했습니다. 불을 꺼서 눈을 가려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를 얼마나 감추려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방패를 방어를 하는데 쓰는 물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들은 시멘트 바닥에 방패 끝을 갈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시민들을 폭행할 때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여러 명이 한 사람을 에워싸고 비참하게 때렸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대치를 할 때에는 살수를 마구 뿌렸습니다.

 

청와대 앞 700m까지 진입했기 때문에 강경진압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여기까지 나오게 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의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명명백백한 독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등한 위치에 있지 않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집단구타, 살수로 폭력을 조장하는 경찰

 

31일 이후 인터넷상에 올라온 피 흘리는 많은 사람들 외에도 살수로 인한 저체온증·구토·경련·피부병 등등을 일으킨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새벽 4시경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강제연행을 할 때 사람들의 카메라를 빼앗고 부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살수에 옷과 온 몸이 젖어 휴대폰 카메라 한 번 꺼내 들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촬영하기 열악한 상황에도 인터넷에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왔다면 실제로는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음이 자명합니다. 31일 역시 국민들의 화를 증폭시키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눈'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카메라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최전방 닭장차 앞에서 대치 중일 때 한 남자분이 차 위로 올라갔습니다. 닭장차 위에 올라가면 전경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직선으로 살수를 하여 위험해지기 때문에 비폭력 평화시위를 추구하는 시민들은 그 남자분에게 내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내려오지 않아 저는 그 분을 설득하려 옆에 계신 아저씨의 목마를 타고 그 분과 마주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길 자신의 친구가 전경들에게 잡혀갔는데 수십 명의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구타를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울며, 무릎을 꿇고 빌고 있어서 친구를 풀어달라고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복받쳐 오르는 마음에 저는 차마 그 분에게 더 이상 내려오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닭장차 위에 올라가는 것보다 더한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집단구타를 하고, 물을 쏘고, 자진 해산하는 시민을 강제 연행하는 등의 행동이 평화시위를 자극하여 폭력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기만 한 '조중동만의 세상'

 

 

그 다음날인 6월1일 역시 '조중동 세상'은 31일의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웠습니다. 평화집회를 외치며 잡았던 전경을 무사복귀시켜주었던 시민들의 모습은 조중동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세상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청와대로 쳐들어가려다 저지당한 폭도들·빨갱이로 전락'한 시민들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상황이 확대되면서 각 지상파에서 촛불집회의 강력진압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의 위험성과 그로 인해 다치고 피 흘린 사람들의 영상·인터뷰 등을 본격적으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KBS의 한 프로그램 실험에서 물대포에 의해 마네킹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본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 중에는 가장 안전한 것이 물대포라며 스프링클러 정도의 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물대포가 안전하면 경찰서의 화장실마다 제 사비를 들여서라도 비데로 꼭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자, 정부에서는 언론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KBS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YTN에 자신의 측근이자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사장에 내정했고, 이에 대한 YTN 기자 및 사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각 방송사에서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각방송사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비록 처음부터 우리의 편에 서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에게는 시민들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고 언론인으로서의 신념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담이지만 제가 현장에서 나가서 인터뷰를 몇 차례 했었습니다. 그 때 만난 M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제가 "어차피 기사로 사용하지 않을 거면서 인터뷰는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그 기자 분은 "계속 기사를 쓰고 있으나, 윗선에서 기사를 삭제하거나 무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언론 탄압을 막고자 시민들은 언론을 지키려고 자발적으로 시청에서 여의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공영방송인 KBS가 무너지면 다른 것도 차츰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벌써 20일을 넘기고 있는 현재까지도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몇 백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 새 KBS 앞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국민을 뜻 따르겠다더니, 다시 소화기 분사?

 

지난 19일, 이명박 정부는 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약속했으나, 미국으로 파견되었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을 순조롭게 이끌어 내지 못하자 급하게 특별 기자회견으로 말을 바꾸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며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으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날 이순신동상 앞쪽에서 가수 양희은씨가 가슴 찡한 노래를 불렀으나 현장에서도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들리지 않아 노래를 하는지 마는지도 몰라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그 노래를 들으셨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특별 기자회견 이후 일부에선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수차례 겪은 말 바꾸기를 다시 겪을 것이고 알맹이 없는 회견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론이 양분된 가운데 국민들의 뜻을 따르겠다던 기자회견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들을 향하여 또 소화기를 발사하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 이야기입니다. 스프레이식 소화기가 아닌 큰 소화기를 시민들 얼굴에 정면으로 발사하였습니다. 실시간 중계를 하던 방송 화면도 희뿌연 연기에 가려져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화기를 맞은 사람들의 눈은 충혈됐고, 눈물도 흘렸습니다. 심한 경우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는 여경은 "여러분 평화시위를 한다더니 이게 평화 시위냐"며 "여러분의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평화시위는 보장하나 여러분은 불법시위를 하고 있고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방금 소화기를 뿌린 전경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시민들은 웃었습니다.

 

여전히 조중동은 우리의 역사적인 아픔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친북·좌파'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동아일보>는 지난 13일 '[사설]本色 드러낸 '광우병 대책회의'을 통해 "공기업 민영화 및 교육 자율화 저지, KBS MBC 현 체제 사수는 자신들의 좌파 이념과 지지 거점을 지키겠다는 소리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제가 아는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뚜렷한 정치적인 성향이 없고 그저 거짓말하는 언론이 싫고 미친소가 식탁에 오르는 것이 싫고 내 친구, 내 가족이 다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설령 우리가 빨갱이라고 한들 각목과 쇳덩이를 들고 나와 비무장상태의 시민들에게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하는 뉴라이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번 일로 제가 가지고 있던 현 정부에 대한 '마지막 가능성'이란 불씨는 꺼졌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정부에 반감을 가지는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이 퇴진하는 날까지 촛불을 밝힐 것입니다. 


태그:#세계시민기자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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