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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화계사 주지)이 최근 촛불 정국과 그 이후에 대한 의견을 담은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주>

참담한 희열.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컨테이너 장벽을 바라보면서 느낀 심정입니다. 앞으로 저 촛불의 물결은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저 장벽은 또 언제까지 우리들 마음의 감옥이 될 것인지 아득했습니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를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촛불 이후를 말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엽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날, 2008년 6월 10일은 '국민 승리'의 현장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컨테이너 장벽이 그것을 '선언'했습니다. 컨테이너 장벽은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의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국가는 비폭력으로 일관한 촛불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를 휘둘렀습니다. 그럴수록 촛불은 더 타올랐습니다. 촛불을 든 국민은 국가 권력의 폭력 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촛불 승리의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난국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협상'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설사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할지라도 그것이 최선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이겨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국민은 대통령의 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끝내 국민을 이기고 말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전제군주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탄핵 당한 껍데기 대통령이 되겠지요. 국민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는 초라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현재의 위기가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민심'이라는 국정 기반을 거의 잃어 버렸지 않았습니까. 진정으로 국민에게 지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살 길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데, 천심에 항복하는 일에 부끄러워 할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부디 장벽 뒤로 숨지 마시고 차라리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재협상은 소신에 반한다. 하지만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원한다면 하겠다. 정부의 섣부른 판단으로 비롯된 문제지만 그에 따른 고통은 모든 국민이 분담할 수밖에 없다. 감수해 주시겠는가. 그렇다면 재협상을 선언하겠다"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국민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국민도 대통령을 믿을 것입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절박한 과제는 신뢰의 회복입니다.

 

국민에게 지는 것이 그렇게 어렵거든 "대중이 원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선가(禪家)의 전통을 참고하십시오. 군대식 일사불란이나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닙니다. "대중이 나를 공부시킨다"는 뜻의 다른 표현입니다. 간곡히 바라건대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세계 어느 국민보다 열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중을 재협상의 지렛대로 쓰십시오.

 

2008 5·6월 촛불을 승리로 기록하자

 

이제 우리 모두는 2008년 5월과 6월의 '촛불'을 역사의 승리로 기록하는 일을 할 차례입니다. 이미 우리 국민은 정부와 정치권에 '민의'를 관철시킬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습니다.

 

촛불 민심은 이명박 대통령만큼이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국민 주권 승리'를 역사적 승리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촛불의 의미를 왜곡하려는 기도가 성할수록 숫자 따위에 연연해하지 말고 초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100만 촛불로 확인한 국민 주권은 10대 소녀들에게 빚진 바가 큽니다. 그들이 마련한 '마중물'의 순정한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며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로 어른들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촛불 민심을 '진보 대 보수' 대결 구도로 회칠하려 하지 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의 몫으로 촛불 민심에 화답해야 합니다.

 

2008년의 100만 촛불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뜨겁게 확인시켰습니다. 이제는 진정한 주인 노릇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생모라고 우기는 두 여인에게 "나눠 가지라"고 한 솔로몬의 판결을 알 것입니다. '촛불'이 먼저 나라의 주인으로서 친어머니의 마음으로 나라의 머슴들이 어떻게 주인을 섬기는지를, 보수의 반격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연민의 눈'으로 지켜볼 때인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위한 또 다른 촛불을 준비하면서.


태그:#수경스님,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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