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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촛불정국 장기화의 후유증인 모양이다. 촛불정국이 40일 넘게 지속되니, 흔히 하는 말로 개나 소나 한 마디씩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인세 수입이 가장 많은 축에 드는 작가인 이문열씨는 '촛불 진압 거병론'을 주장했다. 그는 17일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예전부터 의병이란 것이 국가가 외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라며 "이제 (촛불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촛불시위를 일종의 '내란'으로 본 것이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서 이상하게 네티즌이라는 게 무소불위의 정부 위에 있는 권력이 되어 버렸다"면서 "이른바 조중동 신문에 대한 광고탄압은 범죄행위이고 집단 난동"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이씨는 지난 2001년에도 진보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홍위병'에 비유해, 자신의 말처럼 '시대와의 불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주사(酒邪)파' 주성영의 '생명 상업주의'와 '안보 상업주의'

 학생과 시민들이 16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광우병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와 조중동 심판, 공영방송 지키기’ 주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과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16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광우병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와 조중동 심판, 공영방송 지키기’ 주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과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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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나섰다. 그는 18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우리나라 네티즌들 가운데 형편없는 수준의 네티즌들이 많다"면서 "인터넷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허위 정보를 양산하고 유포하고 퍼 나르고, 사회를 왜곡시키고 이런 사람들이 다 문제있는 사람들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16일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천민민주주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제하고, "아테네가 멸망한 이유가 이 천민민주주의 때문이었다"면서 "우리가 선거를 통해 이룩한 '정권교체'를, 거짓된 '생명 상업주의자'들의 거짓 선전선동에 속아 빼앗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라고 선동했다.

'천민민주주의'는 '천민자본주의'에 빗댄 표현이다. 그렇다면 생명 상업주의는? 어디서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 '안보'라는 상품을 파는 극우-보수언론을 공박할 때 사용하는 '안보 상업주의'에 빗댄 것이다. 주 의원도 "듣기 좋은 '생명'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이념을 팔아먹는 '생명상업주의자'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입에서 '이념을 팔아먹는 생명상업주의'라는 말이 나오니 아이러니다.

'안보 상업주의'의 지적재산권은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에게 있다. 강 교수는 일찍이 <조선일보> 등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배경을 "신문을 파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가장 안전한 카드인데다 애국심까지 들먹일 수 있는 명분까지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안보상업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촛불정국에서 '1인 미디어'가 각광을 받았지만, 강 교수는 우리나라 '1인 저널리즘'의 원조다. 그는 95년에 1인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창간한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통해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했다. 요즘 네티즌에게 인기 절정인 논객 진중권 교수도 실은 강준만 교수가 있었기에 떴다.

강준만이 뿌린 '안티조선' 불씨, '아고라'에서 '집단지성'으로 진화

강준만 전북대 교수(자료사진). 강준만 전북대 교수(자료사진).
 강준만 전북대 교수.
ⓒ 인물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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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안티조선 운동'의 선구자다. 아니, 그는 '안티'보다는 '제몫 찾아주기' 운동을 제창했다. 그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면서도 전체 지면의 30% 이상을 일반 독자에게 할애해 대중에게 '안티조선'이라는 의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광장'을 제공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기폭제가 된 <월간조선>의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도 그의 글을 통해 발화했다.

결국, 촛불정국에서 점화된 불매와 광고압력 등 조중동 반대 현상을 보면, 강 교수가 '1인 저널리즘'을 통해 척박한 땅에 뿌린 '안티조선'의 불씨가 인터넷의 '아고라'에서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와 집단지성'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또 일찍이 언론학자로서 방송 미디어의 각성과 신문 비판을 주문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 신문을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신문보다 방송에 '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짖는 형국이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기 전까지 방송은 군부독재정권의 '주구'였다. '땡전뉴스'로 통했던 공영방송은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만 해도 '혁명을 위해서는 성(性)도 도구화한다'는 공안수사기관의 논리를 여과없이 전파했다. 6월항쟁에 불을 당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것은 <동아일보> 등 신문이었다.

그러나 방송은 그 뒤에 방송민주화운동을 통해 어두운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더구나 소유구조상 신문은 여전히 사주(社主)에게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방송은 눈치 볼 사주가 없다. 그러니 방송이 조중동을 비판하는 데 과거처럼 자격지심이나 자기검열을 가질 이유가 없다.

'조중동 지적재산권자' 정연주, '촛불 공적' 조중동 공격받는 아이러니

'안티조선'을 거론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정연주 KBS 사장이다. 정 사장은 원래 <동아일보> 출신이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모임인 '동아투위' 활동을 하다가 <한겨레>가 창간되고 나서 <한겨레>에 합류했다. 2003년부터 KBS 사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 이명박 정부와 보수우파 세력 그리고 조중동의 대표적인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조중동'이라는 용어의 지적재산권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한겨레> 논설주간 시절 '정연주 칼럼'에서 조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중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는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2)'라는 칼럼에서 당시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고대앞 주사(酒邪)' 사건을 이렇게 질타했다.

 18일 문광위 KBS국정감사에서 정연주 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KBS 정연주 사장.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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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잘 둔 덕'에 세습사주가 되어 언론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곳이 어디 <동아일보>뿐이겠는가? 한국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은 모두 이런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세습사주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들은 조폭처럼 자신들의 영역확대를 위해 피투성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면 이를 감추기 위해 일치 단결하여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번 김병관 회장의 술주정 해프닝은 <한겨레>와 <한겨레21>,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그리고 <시사저널> 등에만 보도됐을 뿐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 일간지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조폭성 사주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한국 신문들의 뒤틀린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신문의 지면을 통해서는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기업주의 도덕성을 수없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불투명하고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서는 '조폭의 의리'를 발휘하여 한사코 침묵한다."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언론에 일정 부분 조폭성이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심지어 조중동은 부수확장 경쟁을 하면서 서로 칼부림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다만, 그들의 조폭성이 무서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조중동의 조폭성을 질타한 그가, 촛불정국에서 백만 촛불의 '공적'이 된 조중동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조중동의 조폭성 공포로부터의 해방

지금은 그런 풍경이 사라졌지만, 40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어릴 적에 손 대신에 갈고리를 찬 상이군인이나 팔뚝에 문신을 한 폭력배에 대한 공포를 경험한 일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시장에서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수금해가는 갈고리 찬 상이군인과 버스 안에서 흉포한 언행으로 물건을 강매하는 폭력배에 대한 어릴 적 공포감이 오랫동안 남았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슬픈 이야기지만, 돌이켜보면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을 당한 사람들과 사회 부적응자에 대해 국가가 보호 의무를 방기했거나 '골치 아픈데 알아서 먹고 살아라'고 적당히 방치한 결과였다. 결국, 힘없는 서민들은 갈고리와 문신이 무서워 돈을 뜯기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13일 밤 서울광장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고등학생들이 '공영방송 KBS 지키기' 촛불집회에 합류하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13일 밤 서울광장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고등학생들이 '공영방송 KBS 지키기' 촛불집회에 합류하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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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된 촛불정국은 조중동 불매와 광고주에 대한 압력 등 소비자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조중동 반대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조중동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다.

신문방송을 보면 가끔 '겁 없는 십대'들이 힘을 합쳐 강도나 폭력배를 잡은 미담이 실리곤 한다. 이번 촛불정국에서도 그랬다. 조중동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겁 없는 십대'들이 먼저 잽싸게 잽을 날렸다. 처음에는 약간 겁도 났겠지만 막상 찔러 보니 붙어볼 만했다. 한번 '방울'이 달린 조중동은 이제 아이들에 이어 주부들도 가세해 주걱으로 뺨을 후려칠 만큼 '동네 북' 신세다.

국민은 이제 안다. 그동안은 조중동이 막연히 무서워서 피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더러워서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집단지성'의 촛불을 들어 '동굴의 우상'(偶像)을 깨고 '아고라의 진리'를 깨닫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강준만과 정연주가 10년 전에 뿌린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와 '안티조선' 운동이 비로소 '아고라'의 광장에서 '조중동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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