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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할 게 너무 많아서 피켓이 비좁다!"

 

15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등장한 새로운 피켓 구호다. 지난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린 뒤 45일째. 광우병 문제에서 출발한 촛불시위 이슈들은 공영방송 사수와 조중동 폐간운동, 공기업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촛불집회가 정치투쟁으로 변질됐다고 질타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촛불집회 성격이 대운하와 공공개혁 반대, KBS 감사 문제 등으로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촛불집회가 상시화 돼 '프로'들을 중심으로 정치집회, 정치투쟁의 장, 정권퇴진의 장으로 변해선 국민호응을 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언론들도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이 점차 줄고 있다"며 '촛불동력 소진론'을 제기했다. 지난 6월 10일 '6·10 100만 대행진'으로 '촛불동력'은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하강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에는 "미 쇠고기 점검단 진실은폐, 용서할 수 없다", "반정부적 민영화 반대 대신 공공성 강화 외치자" "쇠고기 월령 이슈화-국면전환 위한 꼼수인가" "이명박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에 할 말 잃다" 등의 네티즌 글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민심은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얘기다. 

 

정권퇴진운동 벌이면 역풍 맞을까

 

이 가운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20일까지 정부가 '한미 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20일까지는 앞으로 3일 남았다. 성난 '촛불민심'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승우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촛불집회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밤샘 형식의 규모와 형태에 변화가 생길 수는 있지만, 좀체 사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놨다.

 

하 교수는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민간 차원의 '국민투표'를 통한 정권무력화, 정권퇴진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며 "행정권력에 협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불복종운동'을 확산하는 것도 정부에 광우병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납세거부나 학교 안보내기 운동, 전투경찰의 육군 전환배치 요구 같은 '불복종운동'도 정부로서는 매우 부담이 되는 '카드'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45일째 이어지고 있는 촛불정국은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자각 강화운동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결국 미국을 상대로 '빈 주머니 협상'을 하고 돌아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대표단을 비롯한 이명박정부를 향해 전 국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여 정권퇴진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해구 "수위 높이면 운동사회 부담... 제도정치권으로 이슈 넘겨야"

 

이 같은 입장에 반대하는 정해구 민주화운동기념연구소장은 "선거로 선출된, 100일 채 지낸 대통령을 향해 정권퇴진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섣부른 정권퇴진운동으로 자칫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으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정권퇴진운동에 동의하는 세력은 좌우를 떠나 많지 않을 것"이라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지나치게 수위를 높이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현재와 같은 촛불정국이 더 확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운동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면 결국 '운동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소장은 "이번 촛불집회는 자연발생적으로 태동한 현상인 만큼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면서 "정치권과 국회에 문제를 해결하라고 공을 던지면서 제도정치권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대의민주주의제도가 살아 있는 한 직접민주주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정 소장은 "상당 부분을 제도정치영역으로 넘겨야 한다"며 "아래로부터 수렴된 여론을 정당정치에서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정 소장의 이 같은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박 실장은 "제도정치권인 민주당도 촛불집회에 나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판에 국민이 어떻게 제도정치권에 이 어마어마한 이슈를 넘길 수 있겠냐"며 "제도정치권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은 정치학자들만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촛불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선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생활인들이 어떻게 매일 밤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밤샘을 할 수 있겠냐, 매일 수만명씩 광장에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촛불이 식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실장은 "이미 이명박정부는 한자릿수 지지율을 받는 정권으로 이미 통치능력을 상실했다"며 "공기업 민영화든, 한반도 대운하든 국민의 반대를 딛고 쉽게 밀어붙이기 어려운 형국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명박정부는 이미 식물화·무력화·박제화 됐다는 진단인 것이다. 박 실장은 "촛불정국을 정치적으로 결론내려는 시도 자체가 성급한 강박관념이자 조급증"이라며 "이미 촛불은 민주주의운동이자 정부비판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한홍구 "단군 이래 최초 전국민 인강 열공시대... 순회방문에 장사 없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같은 맥락으로 진단했다. 한 교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내건 '정권퇴진운동'에 너무 심각하게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고 피력했다. 이 정도도 못하면 물러가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는 "이명박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지금 국면은 국민도 정부도 모두 불안한 상황"이라며 "이명박정부가 '보수대연합' 등 민의에 반하는 방식으로 고립무원을 자처하면 보수세력 내부에서 먼저 '정권퇴진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소환제나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국회에 제안하는 방법은 고려할 수 있겠지만, 현 국면에서 광우병 이슈를 '제도정치권에 맡기자'는 주장은 네티즌들에게 쉽게 먹힐 것 같지 않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 교수는 "촛불집회에 가보면 국회의원이 국민 대표성을 갖고 참여하는 게 아니라 'N분의 1'의 시민 자격으로 촛불 들고 앉아 있다"며 "동의하는 구호만 채택하는 방법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광장에서 과연 시민들이 제도정치권에 이 이슈를 넘겨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국을 분명히 진단하지 못한 채 "배 아프다는 사람한테 빨간약 주는 식으로 대처하는 상황이라면 촛불은 더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만 군중이 매주 '주말 나들이시위'를 계속 하는 한 정권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한 교수는 "단군 이래 최초로 전 국민이 야간 '정치자율학습'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전국민 인강(인터넷 강의)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시대'"라고 전했다. 해방 이후 좌익들이 집단적으로 정치학습을 하기는 했지만 규모가 매우 작았다는 한 교수는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집단으로 거리에서 정치학습을 한 유래가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홍구 교수는 "촛불들이 지난 11일부터 '순회방문'에 나섰다"며 "제 발로 걸어나온 자발적 시민들이 광화문 찍고, 걸어서 마포대교 지나 여의도 KBS 앞에서 공영방송 사수 외쳐주고, 도로 종로와 광화문으로 와서 '조중동'에 딱지 붙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이번 촛불민심이 쉽게 꺼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 따라서 한 교수는 이번 '촛불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예측불허"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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