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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저녁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모셔진 고 이병렬씨 영정.
 9일 저녁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모셔진 고 이병렬씨 영정.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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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고 이병렬씨가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면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경찰은 이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그의 분신을 '정신이상자의 우발적 행동'쯤으로 치부하거나 아예 다루기를 꺼렸다.

그러나 여러 정황들과 최근에 같이 활동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의 분신을 그저 '정신이상자가 벌인 극단적인 행위'라거나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티 이명박 카페' 전북 모임에서 같이 활동한 '새의 선물'(카페 별명)에 따르면, 이씨는 전북 전주시에서 처음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던 5월 3일부터 이 집회에 참석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는 자원봉사단으로 참여해 촛불을 만들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했다. '새의 선물'은 "표정은 항상 밝은 편이었고, 이야기가 항상 논리정연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원봉사단에서 같이 일을 한 안티 이명박 카페의 '포타포스'(카페 별명)도 "말씀을 많이 하지 않고 묵묵한 편이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는 딱 부러지게 내세우시는 분이었다"고 그동안 이씨를 본 느낌을 말했다.

이 카페 회원들은 이씨를 '촛불집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남아서 다른 참가자들을 챙겨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기억하고 있었다. 또 신문을 많이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노동자였다. 3년 가량 동사무소에서 기능직으로 일했던 것이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던 때였지만, 이것 저것 자신의 노동력이 허락하는 대로 일을 해왔다. 이씨의 동생 용상씨는 "형은 덩치가 작고 체력이 강하지 못해서 주로 서비스업종에서 일했던 것으로 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올해 들어 노동부의 직업훈련 2개 과정을 이수하고 노동사무소에서 구직활동을 했다. 지난 5월 20일에는 전주지역의 한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주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촛불집회에 자주 못 올 수도 있다'며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추리·FTA·태안·대운하 등 사회 현안에 동참...고 허세욱씨와 닮아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민주노총 허세욱 조합원. 지난 효순미선이 투쟁 당시부터 집회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여해왔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민주노총 허세욱 조합원. 지난 효순미선이 투쟁 당시부터 집회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여해왔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택시노동자 고 허세욱씨. 지난 효순·미선이 투쟁 당시부터 집회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여했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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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씨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된 촛불집회 뿐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한미FTA 반대 투쟁, 전주방송(JTV)해고자 복직 투쟁, 서해안 기름 피해 100일 행사,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 운동 등에서 이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가 2006년 2월 민주노동당, 올해 2월 민주노총 공공노조에 각각 가입해 성실히 활동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지난해 4월 1일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 결국 숨진 택시노동자 고 허세욱씨다. 이병렬씨의 죽음은 허세욱씨의 그것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허씨의 분신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중학교 중퇴라는 그의 학력을 부각시키면서 애써 그 죽음을 외면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참여연대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과 한미FTA 반대 투쟁의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고 청와대 앞 1인시위도 벌였다는 고 허세욱씨.

허씨의 죽음 당시 기자가 만났던 그의 주변 사람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신문을 스크랩하면서까지 열심히 공부했고 주변의 그 누구보다도 한미FTA의 허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허씨를 평가했다. 또 항상 겸손하고 봉사를 즐겼던 사람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결국 1년여 간격을 두고 분신을 선택한 허씨와 이씨는 '사회문제를 고민하던 가난하고 선량한 노동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또 두 사람은 독신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허씨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이씨는 처와 딸이 있었지만 이혼하여 10여년 전부터 혼자 살아왔다.

'말 안통하는 정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답답함'


무엇이 이 '가난하고 선량한 노동자'들을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았을까.

 지난 5월 25일 고 이병렬씨가 분신하면서 유포한 유서.
 지난 5월 25일 고 이병렬씨가 분신하면서 유포한 유서.
ⓒ 안티 이명박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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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28년, 미친소 MB타도 투쟁 1년, 5월 18일 03시 40분 이름 없는 전사가 투쟁으로 이제 망월묘역에 갔다. 오늘 난 다시 간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보수친미정권 명박을 규탄하기 위해, 아니 타도하고 끌어내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 지금의 어영부영하는 단체들, 관계자들, 혁명의 정신으로 죽음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속도 싸움도 정당한 폭력해야한다. 꽃병, 쇠파이프, 총, 그래야 진정 열사 혼이다." - 고 이병렬씨가 분신 당시 유포한 유서

(전략) 토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평택기
지 이전, 한미FTA 토론한 적 없다. 숭고한 민족을 우롱하지 말라. 실제로 4대 선결조건, 투자자정부제소권, 비위반제소건 합의해 주고, 의제에도 없는 쌀을 연막전술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마라. 언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후략)  - 고 허세욱씨가 자택에 남긴 유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노동열사 故이병렬 민주시민장'
- 빈소 : 서울대병원 2층 4호실

- 장례식 : 6월 14일

08:30 발인
09:00 출발(서울시청까지 도보 이동)
10:00~11:30 영결식 / 서울시청 광장
11:30~15:00 차량 이동(서울→전주)
15:00~16:00 노제 / 전주 코아백화점 앞
16:00~18:00 차량 이동(전주→광주 망월동)
18:00 하관식 / 광주 망월동 묘역
19:00 범국민 촛불 추모의 밤 / 전국 동시다발

이씨는 이명박 정부가 반대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귀기울이지 않는 것에 대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고, 허씨는 한미FTA에 반대하는 약자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노무현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남긴 유서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다. 국민들이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을 이들이 대표로 짊어지고 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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