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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는 골목길 나들이를 할 때면 꽃만 잔뜩 보입니다.
▲ 창영동 꽃 제 눈에는 골목길 나들이를 할 때면 꽃만 잔뜩 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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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성당 나들이를 합니다. 저는 집을 지키고 있다가 골목길 나들이를 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자전거를 탑니다. 제 팔꿈치와 무릎이 안 좋아서 못 타고 있는 자전거이지만, 아무리 몸이 안 좋다고 해도 자전거가 하염없이 서 있기만 한 모습을 날마다 지켜보자니, 자전거한테 미안하고 제 몸한테도 미안합니다.

6월 9일 낮 세 시 이십 분. 바야흐로 여름 햇살이라고 할 만한 조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그렇지만 지난해와 견주어도 덥지 않은 한낮. 자전거를 몰고 창영동 우리 집에서 도원역 앞으로 오르막을 달립니다. 달리는 동안 골목집마다 새롭게 피워올린 꽃그릇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지난해에도 익히 보았고, 사진으로도 수없이 담은 모습이지만, 그때와 오늘하고 같을 수 있으랴, 생각하면서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석 장…… 담습니다.

지난해에는 고추농사를 지은 골목집은 올해에는 고추를 안 심었습니다. 이분들은 고추농사를 제대로 아는 분일까.

빈터가 있으면, 어김없이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사. 골목집 사람들 농사. 산업도로 공사예정터에도 텃밭을 일구는 골목사람들.
▲ 여러 가지 텃밭농사 빈터가 있으면, 어김없이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사. 골목집 사람들 농사. 산업도로 공사예정터에도 텃밭을 일구는 골목사람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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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마름병은 돌려짓기를 하면 생기지 않습니다. 조금만 심으면 생기지 않는 고추마름병이지만, 많이 심으면 이듬해에 꼭 걸리게 되는 고추마름병입니다. 지식인과 공무원이 읊조리는 어려운 말로는 ‘탄저병’인 ‘고추마름병’. 이 병이 생기면 다섯 해 동안은 고추를 심으면 안 됩니다.

고추가 좋아 죽겠으면 어쩔 수 없이 심고 또 심으며 약을 쳐야 하는데, 고추가 좋아 죽겠다고 하더라도, 한 해에는 고추, 다음해에는 감자, 이듬해에는 가지, 다음해에는 배추, 그러고서 콩, 그 뒤 다섯 해가 돌아왔을 때 다시 고추를 심으면 고추마름병은 안 걸립니다. 또한, 밭뙈기를 알맞게 나누어서, 자리마다 다 다른 푸성귀나 곡식을 달리 심으면 푸성귀와 곡식은 튼튼하고 싱싱하게 잘 자랍니다.

오늘은 마침 도원역 앞 신호를 잘 받습니다. 찻길에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건넙니다. 숭의동야구장 앞 네거리에서 굽는치킨집 앞으로 꺾습니다. 닭집 옆 살짝 비알진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이 골목으로 접어들면 어디로 가려나, 하고 머릿속으로 길그림을 그립니다. 조금 달리니 골목에서 자전거 타고 노는 아이가 보이고, 옆으로는 장미넝쿨이 우거진 집 쇠문에 널어 놓은 이불이 보입니다.

(1) 창영동 골목꽃
(2) 허물고 있는 숭의동 공설운동장
(3) 광성중고등학교 앞쪽, 빈 집터 텃밭
(4) 비알진 내리막 한켠 빌라 앞에 일군 스티로폼 농사
▲ 골목길에서는 (1) 창영동 골목꽃 (2) 허물고 있는 숭의동 공설운동장 (3) 광성중고등학교 앞쪽, 빈 집터 텃밭 (4) 비알진 내리막 한켠 빌라 앞에 일군 스티로폼 농사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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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옷 입은 까까머리 아이들도 보입니다. 벌써 학교 마칠 때인가. 시계를 보니 아직 네 시가 안 된 때. 요 둘레에 있는 광성중학교 아이들 같습니다. 저 학교는 인문계일 텐데, 요새 시험철이라도 되는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자전거를 세운 다음 골목 모습을, 골목 한켠에 소담스레 가꾼 텃밭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요 텃밭도 틀림없이 예전에는 집이었지 싶은데. 헐려 없어진 집자리에 이렇게 텃밭을 일구었나 보네. 나무도 퍽 우거지고 푸성귀는 푸른 잎사귀가 싱싱하고.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던 아이한테 어머니가 되는 분이 제 모습을 구경한다며 기웃기웃합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좀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해서), 텃밭으로 바뀐 집자리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 앞을 지나가던 까까머리 하나가 “깜장 고무신이 어쩌고 ……” 하는 말을 자기 동무와 주고받습니다. 저 녀석들이 내 신을 보고 저러나 보군. 자기들하고 거의 두 띠 동갑일 아저씨를 옆으로 스쳐 가면서 함부로 할 말이 아닐 텐데. 참 버르장머리없구만. 불러세워서 다그쳐 줄까? 다그친다고 저 녀석들이 왜 다그치는지 알거나 느낄까?

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에서는 아이들도 걱정없이 뛰놀고, 이불도 널 수 있습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에서는 아이들도 걱정없이 뛰놀고, 이불도 널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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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자리 텃밭을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광성중고등학교 뒷문. 남녀 경찰 둘이 학교 앞에 마련된 나무그늘 쉼터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떱니다. 학교 앞쪽으로는 높은 옹벽이 쳐져 있고, 옹벽과 학교문 사이로는 시멘트길 하나와 조그마한 숲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문득, 앞쪽으로 숭의야구장과 인천공설운동장이 보입니다. 어, 그런데 공설운동장은 울타리를 세우고 허무네.

그렇구나. 지금 인천시장은 인천에서 길디긴 역사와 이야기를 남긴 야구장과 축구장을 헌 다음, 이 자리에 새로운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고 했지. 해마다 빚에 허덕이는 월드컵경기장이 있는데에도 굳이 새로 하나 더 짓겠다고 하는 축구전용구장이라. 그래, 그예 저 건물을 헐버리는구나. 저 공설운동장 트랙을 안 달려 본 인천사람이 없고, 저 공설운동장에 ‘단체 응원(학교에서 동원하는 응원)’을 안 가본 인천사람이 없으며, 저 옆 야구장에서 눈물콧물 안 쏟아 본 인천사람이 드물 텐데.

1982년 삼미슈퍼스타즈가 있기 앞서부터 인천 고교야구가 벌어질 때면 언제나 북적이던 숭의야구장. 프로야구가 들어서고 삼미슈퍼스타즈와 청보핀토스와 태평양돌핀스를 거쳐 현대유니콘스까지 쓰던 숭의야구장. 그러나 현대 재벌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서울로 옮겨가려고 버렸던 숭의야구장. 현대 재벌이 인천을 버리며 들어선 에스케이 재벌은 쓰지 않은 숭의야구장. 이 야구장도 올해에는 헐린다지.

호젓한 골목 한켠에 늘어놓는 꽃그릇과 빨래. 가파른 언덕받이 골목집.
▲ 골목길, 골목집 호젓한 골목 한켠에 늘어놓는 꽃그릇과 빨래. 가파른 언덕받이 골목집.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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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들이쉬고 내리막을 달립니다. 그러나 내리막은 끊깁니다. 계단이 나오는군요. 어쩐지. 아이들이 이쪽으로는 안 오고 다 저쪽 길로만 간다더니. 왜 이쪽 길은 이렇게 했을까. 차가 못 다니는 길이기 앞서 자전거부터 못 다니는 길이네. 왜 이렇게 길을 끊어 놓았을까.

내리막 끝에서 자전거에서 내려, 오르막은 자전거를 밀며 올라갑니다. 남녀 경찰 두 사람은 아직도 담배와 수다를 잇고 있습니다.

광성중고등학교 뒷문을 지나니 곧바로 다시 내리막. 이 학교는 언덕받이에 지었는가 봅니다. 내리막 끝에 이발관이 있고, 왼편으로는 도원슈퍼. 슈퍼 앞을 지나고 헌옷 모으는 집 앞을 지나니 왼편으로 퍽 가파른 오르막이 보이는 골목길. 자전거를 끼긱 세웁니다. 올라가 볼까?

가파른 오르막 오른쪽에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골목을 다니기 어려운 어르신을 헤아려서 마련된 계단이지 싶습니다. 겨울이면 길이 얼어서 다닐 수 없어서 마련한 계단이기도 할 테고요. 그런데, 예전에 이 동네가 다닥다닥 달동네였을 때에도 이러한 계단이 있었으려나.

조금 멀리 떨어져서 담은 골목꽃.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가서 바라본 골목꽃. 얼마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꽃은 늘 다르게 우리한테 느껴집니다. 골목길도, 또 골목사람 삶도, 또 우리 이웃 삶도,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 멀리 떨어져서 담은 골목꽃.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가서 바라본 골목꽃. 얼마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꽃은 늘 다르게 우리한테 느껴집니다. 골목길도, 또 골목사람 삶도, 또 우리 이웃 삶도,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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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골고개길을 오르니, 언덕 끝에 5층짜리 아파트. 이 언덕받이에 아파트 지었으려면 퍽 힘들었겠군. 그러나 이 아파트도 오래되었다며 재개발 지구. 그래, 이제 5층짜리 아파트는 다 없애고 있으니까. 여기라도 다른 수가 있겠나. 그런데, 딱 스무 해쯤 앞서만 해도 이 5층짜리 아파트는 이 황골고개길 골목에서 ‘있는 사람 사는 집’이라 하지 않았으려나?

아파트 들머리에 가지런히 놓인 꽃그릇을 구경하며 땀을 들입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친 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밀면서 걷습니다. 광성중고등학교 담벽과 맞닿은 골목집 앞에 섭니다. 빨래널개를 펼치고 빨래를 가득 널어놓고 있습니다. 이 앞으로 텃밭을 제법 넓게 일구는 집이 보입니다. 텃밭 옆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계십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지나가면서 “안녕하셔요!” 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합니다. 인사하기 앞서까지는 굳은 얼굴이던 두 분이, 인사를 하고 난 뒤로는 활짝 핀 웃음얼굴입니다.

인천 중구 도원동과 선화동 골목길 모습들. 이 모습들은 지금 이대로 이곳에서 조용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문화입니다.
▲ 골목길이란 인천 중구 도원동과 선화동 골목길 모습들. 이 모습들은 지금 이대로 이곳에서 조용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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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미터쯤 다시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니, 인천 중구 시내가 넓게 펼쳐집니다. 높은 산은 아닌 야산이랄까, 아니 동산이랄까, 이런 언덕받이에서도 시내가 잘 보입니다. 그렇지만, 엊그제 비바람이 몰아치고 난 다음임에도 하늘은 썩 파랗지 않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에는 하늘이 제법 새파랬는데, 올해에는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 하늘도 뿌연 파랑입니다. 이틀이 지나면 그예 잿빛이고요.

길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어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면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를 쑤시다가 저기를 쑤시다가, 왔다갔다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지 싶은 초등학생 하나가 제 맴돌이를 빤히 지켜봅니다. 망설이며 오가는 동안 이 골목 저 골목 다 돌게 되고, 이내 선화동과 맞닿은 도원동 골목을 지나갑니다. 조금 넓다 싶은 길로 접어들면 자가용과 짐차가 씽씽 달립니다. 조금 좁다 싶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차는 한 대도 없을 뿐더러 오토바이도 다니지 않고 고즈넉합니다. 더없이 조용합니다.

인천에는 담쟁이넝쿨이 집 벽이나 울타리를 가득 메운 집이 꽤 많습니다. 한두 해에 걸쳐 이룬 넝쿨집이 아닙니다.
▲ 담쟁이집 인천에는 담쟁이넝쿨이 집 벽이나 울타리를 가득 메운 집이 꽤 많습니다. 한두 해에 걸쳐 이룬 넝쿨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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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길’이라 이름붙은 도원동 골목을 걷습니다. 이제, 자전거는 거의 안 타고 끌기만 합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아주 천천히 달리더라도, 골목집마다 문이나 울타리나 벽 앞에 늘어놓은 꽃그릇을 구경할 수 없어요. 자전거로 느리게 달릴 때보다 더 천천히,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쭈그려앉아서 몇 분 동안 꽃그릇을 들여다봅니다. 드문드문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나를 보지 말고, 내가 보는 이 고운 꽃을 함께 보아주면 좋을 텐데.’

골목길을 사이에 놓고, 이쪽은 선화동, 저쪽은 도원동인 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걷다가 합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살피니, 골목집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문간에 나와서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으레 혼자서 해바라기를 하고 할머니들은 둘씩 셋씩 또는 너덧씩 짝을 지어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동네 어르신 앞을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모두 다섯 차례 인사를 했는데, 딱 한 분만 인사를 안 받고 다른 분들은 한결같이 웃음으로 인사를 받아 줍니다. “젊은 친구는 사진을 찍는가 보네?” 하면서 넌지시 말을 걸어 주는 분도 있습니다.

스티로폼에 심은 푸성귀로는 상추가 가장 많고, 고추가 다음으로 많습니다. 옥수수도 보입니다. 스티로폼 그릇에 심은 옥수수라니. 한두 달 지나고 다시 오면 열매 익은 모습도 볼 수 있으려나?

골목길 마실을 할 때면, 제 눈에는 꽃만 들어옵니다. 아니, 이곳, 인천 배다리 둘레 골목길에만 이렇게 꽃밭과 꽃집이 많은지 모를 일입니다만.
▲ 내 눈에는 꽃들만 골목길 마실을 할 때면, 제 눈에는 꽃만 들어옵니다. 아니, 이곳, 인천 배다리 둘레 골목길에만 이렇게 꽃밭과 꽃집이 많은지 모를 일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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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쪽으로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니 집집마다 빨래를 마음껏 바깥 골목에 널어놓습니다. 꽃그릇 옆에는 어김없이까지는 아니나, 꽤 많은 데에 걸상이 놓여 있습니다. 차가 자주 들락거리는 데에는 걸상이 바깥에 놓여 있는 일이 드뭅니다. 차 아닌 사람이 오가는 골목에는 나팔꽃도 심고 나리꽃도 심으며 뭐라뭐라 이름이 긴 빨갛고 큰 꽃도 심습니다. 할머니들한테 여쭈어 이름을 들었지만, 꽤 긴 영어 이름이라 외우지 못합니다. 어느 꽃은 할머니들조차 이름을 모릅니다. “몰라, 그냥 예쁘니까 심지.”

하긴. 우리가 그 꽃이 ‘사람이 지은 이름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곱다고 느끼겠습니까. 누군가 처음 지은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 나름대로 곱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창 골목꽃 구경에 빠져 있을 무렵, 손전화가 울립니다. 지역방송국에서 산업도로 반대 문제와 얽혀서 취재한다며 나왔다고, 저보고도 오면 좋겠다는 연락입니다. “네, 지금 선화동인데, 곧 가겠습니다” 하고는 따순 햇살 내리쬐는 골목 마실이 아쉬워서 십 분 남짓 더 돌아다닙니다. 사진기 저장장치 숫자가 4으로 떨어집니다. 이제 넉 장밖에 못 찍습니다. 눈으로만 구경해야 합니다. 어쨌든 가야지, 생각하며 아쉬움을 삼키며 돌아섭니다.

고추포기와 상추로 이루어진 꽃그릇이 가지런히 늘어선 골목집. 이 앞을 지나가다가 가슴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이 꽃길을 거닐 분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서.
▲ 꽃길 고추포기와 상추로 이루어진 꽃그릇이 가지런히 늘어선 골목집. 이 앞을 지나가다가 가슴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이 꽃길을 거닐 분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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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율목수영장 옆을 스치고 광성중고등학교 앞문을 스칩니다. 학교 앞 높은 울타리에서 때까치 두 마리를 만납니다. 어라, 여기에도 때까치가 사나? 우거진 숲은 아니더라도, 곳곳에 조그맣게 숲이 이루어진 데가 있어서 거기에 사려나? 고 작은 숲에는 약 칠 사람이 없어서 풀벌레나 애벌레가 꽤 있을 터이니 때까치 먹이가 될 수도 있겠군.

늦었다 싶어 큰길로 나옵니다. 차가 싱싱 달리는 여덟 찻길(팔차선)입니다. 호젓한 골목에 있다가 큰길로 나오니 귀가 쨍쨍 시끄럽습니다. 집에 닿아 자전거를 올려놓고 낯을 씻고 밥 몇 숟갈 퍼먹고 방송국 사람을 만납니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슨 사진 찍으셔요?”
“저는 헌책방을 찍습니다. 그리고 인천에 돌아온 다음에는 골목길을 찍습니다.”
“아직 사진으로 찍을 만한 골목길이 있나요?”
“(싱긋 웃으면서) 다녀 보면 찍을 곳이 많이 있어요. 안 다녀 본 사람들은 모르지만요.”

방송국 사람들하고는 짤막하게 이야기를 끝내고, 셈틀에 사진파일을 옮겨넣은 뒤, 다시 사진기를 챙겨들고, 이번에는 자전거를 놓고 골목 마실을 다시 나갑니다.

골목길 할머니들이, 제가 고추포기와 상추 꽃그릇 찍는 모습을 보더니, "젊은 친구는 사진을 찍는가 보네?" 하고 넌지시 말을 걸어 줍니다. 골목길 나들이를 하는 동안, 꽃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땀도 흘립니다.
▲ 젊은 친구는 사진을 찍는가 보네? 골목길 할머니들이, 제가 고추포기와 상추 꽃그릇 찍는 모습을 보더니, "젊은 친구는 사진을 찍는가 보네?" 하고 넌지시 말을 걸어 줍니다. 골목길 나들이를 하는 동안, 꽃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땀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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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골목길, #골목, #인천, #배다리, #골목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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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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