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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본당 신부로 사목한 곳은 전북 김제 수류 성당이다. 성당 신부와 스님이 작은 분교에서 아이들과 공을 차는 영화를 찍을 만큼 정겨운 산골이다. 그야말로 언덕 위에 자그마한 성당이 있고 그 아래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13일 오전 10시부터 교구청에서 사제 연수가 있었다. 첫 사랑과 같은 첫 본당 수류성당 신자들이 뒷마당에서 대나무 돼지구이를 정성껏 준비하고 있었다. 큰 대나무를 반으로 자르고 그 속에 돼지고기를 넣고 소금을 뿌리고 오가피잎으로 덮고 대나무를 다시 조립해서 철사로 묶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일에 싸서 장작 위에 놓고 고기를 구었다. 기름이 짝 빠진 연한 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여럿이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자식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매일 촛불문화제를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컵에 초를 꽂는가 하면, 촛불과 유인물과 종이피켓을 나누어 주고, 홍보 전단이나 T셔츠를 판매하기도 한다.

 

자리 정리를 도와주고 질서를 유지하며 함께 촛불의 바다에 나가 어둠을 밝히고 집회가 끝나면 초와 피켓 등의 쓰레기를 정리한다. 그리고 광장 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 긁어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일도 쉽지 않는데, 자기 용돈이나 사비를 털어서 촛불문화제를 지원하고, 서울까지 원정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꿀맛 같은 대통삼겹살 구이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염치불구하고 고기를 싸 달라고 부탁했다. 10통 정도를 챙겨서 자원봉사자들이 자주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갔다. 촛불문화제 끝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먹기 위해 대통구이를 맡겨놓았다. 그리고 저녁미사를 드리고 8시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오거리로 갔다. 

 

촛불문화제 뒷정리를 마치고 9시 30분쯤 자원봉사들과 식당으로 갔다. 신문지와 호일을 벗기고 도마에 대통구이 삼겹살을 썰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궁금한 사람들,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들이다. 거대한 빙산이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보이지 않게 빙산을 받쳐주는 한 몸의 커다란 빙산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문화제 역시 빙산의 뿌리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수고 없이 불가능하다.

 

자원봉사자 격려 파티에 초등학생 자원봉사자도 엄마와 함께 자리했다. 사회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촛불처럼 뜨거웠다. 자원봉사자가 직접 발효시켜 만든 흑맥주와 쫄깃쫄깃한 대통구이 삼겹살은 환상적인 맛을 연출했다. 사랑과 격려,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술자리였다.

 

내일 다시 촛불을 들기 위해 11시쯤 아쉽지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다. 매일 학교수업을 마치고 오거리 광장으로 나오는 자원봉사자 총무(이유리 씨)가 “광우병 쇠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민영화와 한미FTA가 백지화되는 날까지 촛불을 들자”며 건배를 제안했다.

 

“끄집어!” “내리자!”

“누구를!” “쥐박이를!” 

“어떻게!” “국민의 힘으로!”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거뉴스와 참소리에 올립니다. 


태그:#촛불자원봉사자, #촛불문화제,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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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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