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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집회 현장에서 너를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다. 어쩐지 너를 거기서 만났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어. 사실 그동안 오래 잊고 지냈던 선배나 후배 동기들을 그 거리에서 많이 만났거든.

 

너를 만나고 내가 처음 한 말 기억나느냐. "결국 못 참고 나왔군!" 너도 나와 사정이 다를 것 같지 않았지. 현실의 문제에 발목 하나 겨우 걸쳐두고 사는 일에만 분주했던 우리를 결국 이 거리로 나오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가 툭 한 마디를 던졌지. "형, 요즘 집회는 참 이상하지 않아? 긴장감이 없어." 그렇게 얘기하면서 너는 웃었어. 이상해서 싫다는 건지, 이상해서 좋다는 건지 그 표정은 좀 복잡한 것처럼 보였지. 네 말을 듣고 둘러보니 촛불집회의 풍경은 참 이상하더군.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전경들과 열심히 대치를 하고 있는가 하면 한쪽에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한쪽에선 소규모 공연이 이뤄지고 있어. 쥐약 전단을 붙이고 컴퓨터 마우스를 끌고 다니는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는 한참 웃었지.

 

의약상자를 들고 분주히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보였어. 전경들이 방패를 도로에 찍으며 사람들을 압박해오는 바로 앞에서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도 있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어쩐지 흐뭇한 마음이 되더라고.

 

경찰 방송차량에서 경고방송이 들려오면 이즈음엔 어김없이 "노래해! 노래해!" "개인기! 개인기!" 하는 연호들이 들려오지. 이런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무척 궁금하더라. 행여 무력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이를 제지하기도 하지.

 

다른 쪽에선 준비해온 김밥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어. 경찰이 강제 해산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집에도 가지 않고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오가면서 구호를 외치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겪었던 거리 시위랑은 푸척 다른 풍경이야. 낯설어서 너도 그랬겠지만, 나도 처음엔 이런 시위에 적응이 잘 안 되더라. 그런데 이상한 건 너나 나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 시위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함께 거리로 나섰던 90년대 초반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인 건 사실이야. 가뜩이나 소심한 내가 선배들과 함께 택을 받고 거리로 나섰을 때, 이제야 고백하지만, 언제 정경과 일명 백골단에 의해 붙잡힐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그러다가 경찰이 최루탄이나 이른바 지랄탄이라도 쏘아대는 날이면 눈물 콧물, 침까지 다 쏟으며 어느 골목이든 상점이든 숨어들기 바빴지. 91년 5월은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어.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죽어 있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매캐한 최루탄가루가 쏟아지던 그때, 우리에게 시위란 비장함 그 자체였지. 그러니 지금 이 발랄한 시위 군중 앞에서 우리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몰라.

 

이즈음 촛불시위는 흡사 거대한 공동체처럼 보여. 이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이 실감한 정치적 이슈들을 자신만의 언어나 이미지로 표현한 피켓을 들고 나와 이들은 스스럼없이 광장에서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들은 모든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트북과 PC캠을 들고 집회군중 사이를 누비는 1인 미디어라 할 수 있는 시민 기자들은 이곳에서 발생하는 소통을 인터넷을 통해 또 수백 만에게 중계하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수십 만이지만, 실제로 이 집회라는 광장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들은 수백 만이지 않겠어? 희한하지?

 

이 소통은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언론까지 끌어들이고 심지어 이들을 진압하는 전경들마저 끌어들이고 있어. 어떤 부정적인 언사가 발생해도 이 소통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꿔버리는 힘이 이들에겐 있는 것처럼 보여. 지난번 맥도날드 사건처럼 말이야.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이 거대한 소통의 공동체에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이 촛불집회는 어디로 흘러갈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쉽사리 진단하지 못하고 있어. 인터넷에선 대의와 대안이 없는 촛불집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눈에 띄더구나. 어쩌면 너나 나의 마음 한켠에도 그런 생각이 숨어 있는지 몰라. 그런데 이들이 거리로 나온 건 인터넷이란 광장의 토론에 의해서였듯이 그런 토론과 소통에 의해 반드시 길을 잡아갈 거라고 믿어.

 

이렇게 거대한 소통의 공동체를 이뤄낼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이, 그 방향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일 거야.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어딘가로 향해 간다는 사실일 거야. 그 어딘가는 지금까지 우리가 품어왔던 희망과는 전혀 다른 희망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오늘(10일) 저녁 100만명이 모인다고 하는구나. 너도 그 100만명 속에 한 명이 되어 네 할 일을 하고 있겠지. 나 역시도. 오늘 거리에서 보자꾸나.

덧붙이는 글 | 김근 1973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이월' 외 네 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뱀소년의 외출>이 있다.


태그:#촛불문화제, #김근, #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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