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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배재대 교정에 들어선 이승만 동상
 지난 5일 배재대 교정에 들어선 이승만 동상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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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재대학교(총장 정순훈) 교정에 들어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쟁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동상 건립을 주도한 이 대학 총장이다. 또 다른 한편의 중심인물인 법학과 김종서 교수다.

김 교수는 이승만 동상 제막식을 앞두고 대학교수협의회 게시판에 "즉시 독재의 동상을 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막식 당일에는 직접 "신성한 캠퍼스에 독재자 동상이 웬 말인가"라고 새긴 피켓을 들고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이 대학 교정에 '법과대 교수 및 학생 일동' 명의로 내걸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도 김 교수가 주도한 일이다. 김 교수는  6·10 항쟁 21주년인 10일 저녁 서울에서 동료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는 이날 촛불을 들기 전에 이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 총장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올렸다.

그는  이글을 통해 "왜 이런 일을 저지르셨냐"고 물었다. 그는 "배재대학교를 그저 우남 기념사업회나 우남연구회의 앞마당쯤으로 생각하셨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독재자의 동상 건립은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에 촛불을 밝혀 든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재자의 동상을 즉시 철거하고 이승만의 호를 따서 지은 우남관이라는 건물의 명칭도 바로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또 "이는 촛불집회에 나선 모든 국민들의 자랑으로 남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재대 교정에 '법과대 교수 및 학생 일동' 명의로 내걸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형 현수막. 김종서 교수가 주도한 일이다.
 배재대 교정에 '법과대 교수 및 학생 일동' 명의로 내걸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형 현수막. 김종서 교수가 주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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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철거로 징계받은 졸업생 규합할 것"

김 교수의 이 같은 입장에 이 대학 구성원과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배재대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졸업생들의 모임인 민주동문회 선배들과 동상 건립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함께 보조를 맞출 예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9년 이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향자씨는 "지난 87년 6월 항쟁 당시 교정에 세워진 이승만 동상을 철거했다는 이유로 대학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바 있다"며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도 제대로 못 하는 일을 재직 교수가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이어 "87년 6월 항쟁 당시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려 학교당국으로 부터 징계를 받은 졸업생을 규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은 지난 1987년 2월, 당시 배재대 졸업동문들이 기증해 세운 것이나 같은 해 6월 항쟁 과정에서 재학생들에 의해 철거됐다. 학교 측은 수년 후 동상을 재건립했으나 학생들이 페인트를 끼얹는 등 철거운동이 계속되자 1997년 자진철거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은 대학총동창회와 총학생회와 함께 지난 5일 동상을 또 건립했다.

아래는 김 교수가 총장에게 질의한 질의문 전문이다.

총장님께 드리는 글


피켓 든 두 대학교수 법학과 김종서 교수(오른쪽)와 '우남관을 주시경관으로' 피켓을 들고 있는 이규봉 교수(가운데)
 피켓 든 두 대학교수 법학과 김종서 교수(오른쪽)와 '우남관을 주시경관으로' 피켓을 들고 있는 이규봉 교수(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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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법학과 교수 김종서입니다.

지난 6월 5일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이 캠퍼스에 세워졌습니다. 저는 이에 항의하고자 몇몇 교수님, 학생, 동문들과 함께 피켓시위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전국은 잘못된 쇠고기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민이 손모아 든 촛불은 이제 쇠고기를 넘어서 국민주권의 함성으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전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정권 퇴진까지 주장하며 민주주의의 함성을 높이고 있는 이 때, 배재대학교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독재자였던 이승만의 동상이, 바로 총장님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 전문에 명기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헌법교수로서,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견딜 수 없었고, 바로 그 심정을 "민주의 촛불과 독재자의 동상"이라는 글과 피켓시위라는 행동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총장님께서 동상제막식에서 "배재대학 설립에 대한 정부인가까지 마쳤는데 불행스럽게도 4.19 혁명이 일어나 늦게서야 부지를 팔아 이곳 대전에 대학 건물을 세우게 됐다"(<오마이뉴스> "'독재자'의 귀환, 이승만 동상 우뚝 서던 날")는 축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동상은 배재대학교 총동문회와 배재대학교 총학생회가 함께 건립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그것이 학교당국의, 아니 총장님의 의지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해서 저는 감히 총장님께 묻고자 합니다.

왜 이런 일을 저지르셨는지요? 민주주의의 함성 앞에서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건국대통령리승만박사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우남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동상 재건립을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하고 생각하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배재대학교를 그저 기념사업회나 우남연구회의 앞마당 쯤으로 생각하셨던 것인가요?

설마 총장님께서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 향후 배재대학교의 앞날에, 그 구성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 못하셨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치, 쇠고기협상을 졸속으로 타결시켜 놓고는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강변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처럼, 배재대학교 구성원과 대전 시민들이 왜 반대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셨거나 의도적으로 그 목소리를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만약에 알면서도 동상 건립을 강행하신 것이라면, 구성원과 시민들의 뜻에 반하는 일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꼴이 될 것이니, 총장님은 더 이상 배재대학교 구성원의 지지를 받는 리더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이런 사실을 모르고서 동상 건립을 감행하신 것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혼자서만 몰랐다는 점에서 총장님의 리더십과 대학운영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 알고서 했든 모르고서 했든 총장님이 감행한 독재자의 동상 건립은, 적어도 배재대학교 구성원에게는, 또는 함께 살아가는 대전 시민의 입장에서는, 또는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에 촛불을 밝혀 든 국민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님이 하실 수 있는 선택은 명확해집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두 달 가까이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함으로써 세살부터 여든까지 남녀노소 모든 시민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이명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거나,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제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식하여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지금 즉시 독재자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히 총장님께 요청드립니다.

독재자의 동상을 즉시 배재대학교에서 철거하십시오. 그리고 독재자 이승만의 호를 따서 지은 우남관이라는 건물의 명칭도 바로 잡으십시오. 그것만이 총장님 스스로를 영예롭게 하는 길이며, 배재대학교 구성원들과 대전시민의, 아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집회에 나선 모든 국민들의 자랑으로 남는 길이 될 것입니다.

총장님의 현명한 판단이 있으시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저는 다시 촛불을 밝히러 갑니다.

6·10 시민항쟁 21주년이 되는 날,  법학과 교수 김종서 드림


태그:#이승만, #배재대 , #김종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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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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