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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인사인 홍관희 박사가 통일교육원장에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촛불시위 와중에 이 얘기를 하는 게 뜬금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홍 박사를 통일교육원장에 내정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목되는 인사 문제가 심각하다 못해 얼마나 엉뚱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잘 알려졌다시피 홍 박사는 "6·15 공동선언은 이적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남북 당국 간 대화를 끊었다. 대화 단절의 결정적인 이유는 남한 정부가 6·15와 10·4 선언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계속 6·15와 10·4 선언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우리가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나마 태도를 바꿨다. 김 장관은 12일 6·15 8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정부·여당은 야당일 때는 '퍼주기'라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북한에 옥수수 5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형국인데 비록 직접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은 아닐지라도 통일교육원 수장에 "6·15는 이적행위"라고 공언하는 인사가 들어올 상황이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분명하고, 대체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겠다는 것인지…, MB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정말 헷갈린다. 

 

문제는 더 있다. 통일교육원장에 누구를 앉힐 것까지 이 대통령 본인이 직접 신경을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통일교육원장 내정은 사실상 통일부 장관의 권한이다. 그렇다고 김 장관이 직접 홍 박사를 골랐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나도는 말은 지난 4월 총선 때 서울 중랑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홍 박사를 배려하기 위해 정부·여당의 '누군가'가 통일교육원장으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홍 박사는 통일교육원장 공모에 응했고, 관련 전문가들로 이뤄진 심사위원회가 추천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부는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통일교육원장에 공모한 인사들 가운데 경력이 충분한 사람도 탈락했다"며 "정부가 어떤 설명을 하든지 결국 자기 사람 심기 위해 홍 박사를 밀어붙인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사 난맥이 정책 난맥으로 이어져 정권이 뿌리째 흔들거리고 있다는 비판이 극심한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자체부터 이명박 정부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 잘 드러난다.

 

MB의 "겸손한 자세" 언급은 '습관성 입버릇'?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번 반성한다는 말을 했다.

 

지난달 22일만 해도 "국정 초기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다,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최근 종교계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역시 반성의 말을 했다.

 

최근 청와대 수석과 내각이 일괄 사퇴하면서 이 대통령의 행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관심거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는 별 기대감이 없다.

 

이 대통령이 '낮은 자세', '국민을 섬기겠다'고 강조한 것은 결코 최근의 일이 아니라 거의 '습관성 입버릇'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9일 당선이 거의 확정됐을 때 이 대통령은 "이번에 전폭적 지지는 개인이나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라고 확신한다"며 "앞으로 국정은 국민을 받들어 섬기는 자세로 하겠다"고 말했다. (☞ 관련 동영상 보기)

 

이 대통령은 그날 밤 11시 18분께 '겸손한 자세로,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는 제목으로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고 "최선을 다해주신 정동영·이회창·문국현·이인제·권영길 후보 등 모두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그분들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기자가 기억하기로는 역대 그 누구보다는 '가장 겸손한' 당선자였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딴판이었다. 그것도 정권을 잡고 한 1년 정도 지난 뒤도 아니고, 인수위 시절부터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다.

 

문제가 생기면 반성한다는 식의 말은 했지만, 실제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다. 언뜻 기독교적 배경도 엿보이는 '겸손한 자세, 낮은 자세'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별 뜻 없는 습관성 멘트일 수 있다.

 

3개월 MB의 경제 실력은 보수진영 전체의 실력일 수도

 

이 대통령 지지도가 폭락하자 보수 언론을 비롯한 보수진영 전체가 비상이 걸렸다. 주로 이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주문한다. 그러나 현 정부가 겪은 혼란이 과연 이 대통령 개인 탓인지 의문이 든다.

 

이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일부 말실수가 있었다고 하지만 대운하를 포함한 정책 상당수는 보수진영 전체가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500여만 표라는 역대 대선 최대 득표 차로 당선됐지만, 기권자가 포함된 전체 선거인수를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이 대통령의 실질 지지율은 30.5%에 불과했다. 국민의 70%는 이명박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과거 10년은 역사책에서 지워버려라'고 국민이 허가권을 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이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보수진영 전체였다.

 

'고소영 S라인', '강부자 내각' 비판이 나왔지만 보수진영은 "그 정도 흠 없는 사람 어디 있나?", "도덕보다는 능력을 보자"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숱한 의혹이 있던 이 대통령의 대선 압승은 앞으로 국민들이 도덕적 결함은 눈감아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였고, 따라서 '고소영'·'강부자'는 '소수 좌파'들의 트집 잡기에 불과했다.

 

대선 때 이명박 지지 CF로 유명한 국밥집 할머니 강종순씨가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도둑질을 안한다"고 주장한 것(☞관련 기사 <"있는 사람들이 정치해야 도둑질 안 해">)이 한 사례다.

 

쇠고기 파동이 이렇게 까지 확산된 것은 단지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는 경제난이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만 하면 금방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다.

 

정부·여당은 "집권한 지 불과 3개월인데...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라고 주장할테지만 "MB만 집권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아도 된다"고 선동했던 사람들은 정작 그들 자신이다.

 

정부·여당은 수도꼭지론자들이다. 수도꼭지를 쾅쾅 틀어놓으면 바가지에 물이 넘치고, 그러면 못사는 사람들도 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경제 성장은 대기업과 재벌 우선 성장론이다. 이들 기업이 잘 돌아가야 하청 업체에도 주문이 밀려들고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데 환율 인상과 이자율 인하를 추진했다. 해외 수출이 많은 대기업과 재벌들은 혜택을 보지만 물가 불안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니 이른바 50여 개 품목으로 MB 물가지수를 개발해 물가 통제를 하려 했는데 이는 1980년대 한국 경제에서나 횡행했던 방식이다.

 

문제는 이게 단지 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취했던 정책이냐는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MB가 아니라 보수진영의 다른 사람이 집권했다고 하더라도 이 방식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3개월간 이 대통령의 '경제 실력'은 대단히 형편없었는데, 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보수진영 전체의 '경제 실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1997년 IMF 사태가 단지 YS 개인의 무능력뿐 아니라 재벌 위주의 경제 성장에 목매고 있던 수십 년 한국 경제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폭발한 것이었듯 말이다.

 

보수진영은 촛불 시위의 배후를 좌파 시민·재야 단체로 본다. 이른바 좌파 시민·재야 단체사람들은 속으로 제발 그럴 수 있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하려고 해도 이제는 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진영은 촛불 집회의 배후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한국 보수진영은 지난 10년간 '반대'라는 호흡기에 연명했을 뿐 사실상 두뇌의 성장을 멈춘 식물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태그:#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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