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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 발언 막은 것 놓고 의견 분분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지난 10일 촛불 집회에 왔다가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과 소통하라고 그렇게 외치더니 정작 온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은 무슨 행동이냐?"

"정부에게 귀를 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귀를 닫은 거 아니냐?"

 

이런 의견들도 적지 않게 나왔고, 그런 의견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에게 발언할 기회는 줘야 하는 것이 옳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가 발언하는 것조차 '매국노'라 외치며 막아선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정운천 장관이 시민들 앞에서 대화했다면 그 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 보니 조금씩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무대에 올라갔다면 더욱더 큰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이 '뿔'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시민들이 분을 못 이겨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 미천한 나로서는 감히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느 쪽을 더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하루종일 고민한 끝에 '정운천 장관 얘기를 듣지 않겠다'라고 말한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왜냐고?

 

 

정 장관이 무대에 올랐다면?

 

정운천 장관이 무대에 올라 시민들과 얘기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많은 시민들이 그를 거부한 데는 아마도 그 이야기 내용이 뻔하거나 설령 토론이 벌어진다 해도 평행선을 달리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과 소통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정작 사회 원로들과 만나서는 "촛불 시위 뒤에 배후가 있다"라거나 "재협상은 할 수 없다"라는 등 기존 태도에서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겼다. 결국 '쇠 귀에 경 읽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현재 100일 동안 보여준 현 정권의 모습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국무총리, 장관, 관료들은 자신의 진짜 심정이야 어쨌든 결국 이명박 대통령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듯 보인다.

 

따라서 정운천 장관이 지난 10일 촛불 시위에 나와 시민들과 얘기하려던 내용도 결국은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내용일 것이고, 시민들과 토론을 한다 한들 끊임없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 분명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MBC에서 매주 목요일에 하는 '100분 토론'의 최근한 달 내용을 보다 보면 무슨 주제든 '소고기 재협상' 문제가 툭툭 튀어나오는데 정부를 지지하는 쪽 의견은 한달 전이나 한달 후나 대동소이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승수 총리와 대학생들이 한 토론을 떠올리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자명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처지에서 이런 저런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은 그러라고 곁에 있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좋은 조언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그 한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운천 장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운천 장관은 국민의 건강과 중대한 관련이 있는 부서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과연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대화하려면 시민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어야

 

지난 촛불 집회에 시민들과 대화하겠다면서 나온 것을 보면 아마도 정운천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쪽인 듯하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무릎이라도 꿇겠다는 심정으로 온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면 그에게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정말 그러한 목적으로 나왔다면 더욱더 그 자리에 와서는 안 되었다.

 

만약 국민들 앞에서 미안한 마음에 무릎이라도 꿇겠다는 심정으로 왔다면 그 무릎을 꿇는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국민을 향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향해야 했던 것이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 앞에 삼일밤낮을 무릎 꿇고 앉아 재협상하자고 매달려야 하는 것이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운천 장관은 계속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대변할 것이고, 그것은 곧 시민의 목소리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무려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된 국민들의 애끓는 애원에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로 대답할 것이 분명한 그에게 시민들은 발언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이명박 대통령 뜻이 바뀌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 안 들어준 시민 탓해서야...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분명 정운천 장관에게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국민들 마음을 마땅히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굳이 정운천 장관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통해 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껏 이어온 똑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라 획기적인 것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나는 정운천 장관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은 국민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생 시절 내내 "등록금 동결"을 외쳤지만 "물가 인상(사실을 물가 인상보다 더 올리는 경우가 많음) 탓"이라거나 "등록금이 비싸면 장학금 타라"라는 등의 똑같은 내용을 4년 내내 들었던, 아니 지금까지 대학교들이 똑같은 논리를 펴는 것을 보면서, 정운천 장관을 막아선 국민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느껴졌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내용을 말한다 할지라도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국민들이었다면 더 멋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이미 하루에 한 번씩 30번은 넘게 대동소이한 말을 들어왔다. 좋은 말도 자꾸 들리면 질린다는데 말이다. 30번 넘게 얘기해도 안 들어준 정부보다 1번 안 들어준 국민들이 너무하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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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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