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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깃발에 그려진 '촛불소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촛불소녀 옆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고 이병렬님, 편히 가세요. 우리가 해낼게요."

 

보름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온 이병렬씨가 사망한 9일에도 촛불은 켜졌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저녁 7시부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애초 이날 행사는 10일 열리는 '100만 촛불 대행진'의 전야제 성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병렬씨의 사망으로 이날 문화제는 다소 차분하게 진행됐다.

 

문화제보다는 오히려 추모제에 가까웠다. 시민 5000여 명은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고 이병렬씨를 추모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서울광장에 고 이병렬씨 분향소를 설치했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물론이고 현장을 지나는 사람들도 고 이병렬씨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시민 천정훈(39)씨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있는데, 좋은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사망해 안타깝다"며 "이씨가 저승에서라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살아남은 사람들이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한아무개양도 "촛불소녀의 그림처럼 꼭 우리가 승리했으면 좋겠고, 꼭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촛불문화제를 짧게 마친 시민들은 10일 열리는 '100만 촛불대행진' 홍보를 위한 시내 행진을 벌였다. 행진을 벌인 5000여 시민들의 가슴에는 '근조 쇠고기 전면 재협상, 열사 정신 계승'이라 적힌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촛불아 모여라! 백만이 모여라! 국민이 승리한다!"

 

이날 행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남대문과 명동 종로를 거쳐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됐다. 하지만 행진 시간은 1시간으로 평소보다 짧았다. 다음날로 예정된 큰 행사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저마다 촛불을 들고 시청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단체가 서울광장 주변에 부스를 설치해 벌인 '조중동 평생 구독거부' 운동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동참하기도 했다.

 

이선미(33)씨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론이라면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조중동이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제대로 봤다"고 평생 구독거부 운동에 동참한 이유를 밝혔다.

 

9일 촛불문화제와 거리 행진이 간소하게 끝났다고 촛불이 꺼진 건 아니다. 경찰과 대치하며 밤샘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문화예술인과 교수 등 지식인들이 청계천과 서울광장에서 새벽까지 행사를 연다.

 

문화예술인들은 밤 9시부터 청계광장에서 '100만 촛불을 지키는 문화예술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가수 손병휘씨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했던 명인(39)씨 등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또 만화가 박재동씨, 이희재씨 등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만화를 청계광장 울타리에 전시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 단체는 9일 밤 10시부터 10일 새벽 4시까지 '촛불시위 이후 한국 사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연다. 이 자리에는 최갑수 서울대 교수와 홍성태 상지대 교수 등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 환경 등에 대해서 시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처럼 서울광장 주변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공부 하는 사람은 학술로 이명박 정부에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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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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