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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저녁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4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이 행진을 벌이며 '이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저녁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4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이 행진을 벌이며 '이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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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배후다!", "이명박이 배후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와 함께 수만명의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촛불시위 배후설'에 대한 반대급부로 외치는 구호이지만, 중요한 시점마다 촛불에 기름을 붓듯 터져나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광우병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매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대통령 스스로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데서 초래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이 촛불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비판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연일 촛불문화제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배후설'을 제기하고, 종국에는 '노무현 정권 책임론'에 동조하고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일부 반미·좌파 세력이 정부를 어렵게 할 목적으로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어 억울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생·유모차 앞장선 촛불시위에 '배후설' 제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해 처음 말문을 연 것은 협상 타결 당일인 4월 18일 미국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아직 국내에서조차 협상 타결 발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FTA에 걸림돌이 되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합의됐다고 들었다"며 양국 협상 대표들을 치하했다. 그에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보다 한미FTA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가중됐지만, 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해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는 것이다.

'쇠고기 협상은 유익한 것'으로 치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은 민심과 거리가 멀었고, 이후 시민들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때 만들어놓은 청계천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특히 시민들의 앞장을 선 것은 중고등학생과 유모차 부대였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지난달 2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이 문제를 정치 논리로 접근해 사회 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야권의 배후설을 제기했다.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촛불시위 현장에 단 한 명의 비서관이라도 내보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이어서 "1만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파악해 보고하라", "(광우병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FTA을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 등의 '배후설' 발언이 연이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옛날 중지됐던 걸 재개하는 것인데 처음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한 것은 과거 수입 중단의 이유였던 광우병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들의 주장을 모두 간과한 것이다.

미국과의 추가 협상에도 촛불문화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자 이 대통령은 뒤늦게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며 시민들의 여론을 '괴담'으로 호도했다. 이 역시 '배후설'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쇠고기 협상은 잘 됐지만, '괴담'에 안이하게 대처해 사태가 이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6일 불교종단 대표 간담회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고 했던 것이나, 7일 기독교 지도자 간담회에서 "그때(노무현 정부 때)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을 것"이라며 전 정권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이 대통령의 인식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광화문에서 벌어진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나 6ㆍ10항쟁 기념 100만명 시위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발언을 통해 민심을 더 자극하기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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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MB에게서 부적절한 당당함, 통제불가능의 자신감 느낀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지난 2005년에 출간한 저서 <사람 VS 사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과도한 자기 확신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에게 문제의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다.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교정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다. 마치 성공한 스타플레이어가 성공적인 코치가 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잘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뛰겠다고 나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 (중간 생략)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현재의 이명박에게서 이명박 스스로 수정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듯한 부적절한 당당함, 통제불가능의 자신감을 느낀다. 만일 세간의 평가처럼 이명박이 대권을 향한 야망이 있다면 대중들에게 '통제불가능의 이미지'로 비쳐진다는 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진하기 위해 그동안 접어놓았던 백미러 버튼을 눌러 날개를 펴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기 바란다. 잠시 멈추라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추라는 것뿐이다."

3년이 지났고, 이제 대통령직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의 현재 심리 상태에 대해 정혜신씨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정씨는 "예전에 (책에 썼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특히 "정신분석학의 이론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자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갖는 강한 자기 애착과 확신이 국민과의 인식에 괴리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나는 나를 내리누르는 어떠한 힘 앞에서도 굴복해본 적이 없다"(자서전 <신화는 없다> 중에서)고 했다. '나는 옳다'는 자기 확신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대통령이 어떤 해법을 내놓는다 해도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들

"한미FTA는 미국 입장에서는 쇠고기 문제가 가장 크다. 쇠고기 수입 제한을 푸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2월 2일 동아일보 인터뷰

"한미FTA에 걸림돌이 되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합의됐다고 들었다. 여러분들이 FTA가 반드시 체결돼야 한다는 그런 강한 집념을 보여주셨고, 또 지지를 보내주셨기 때문에 양국의 대표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어제 밤샘 협상을 했다고 들었다." - 4월 18일 워싱턴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만찬

"낙농업 하시는 분들, 소 키우시는 분들(은) 보상을 하면 숫자가 적으니까 또 될 것이고, 도시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고기를 먹는 것은 그렇다. 질 좋은 (미국산) 고기를 들여와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다. (미국 쇠고기를) 강제로 공급받는 게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다. 오픈하면 민간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 4월 21일 방일 중 기자간담회

"한미 쇠고기 협상은 이미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측과 합의해 개방을 약속한 사안이다. 한미 FTA 협상과 쇠고기 협상은 원칙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이다." - 4월 24일 국정과제 보고회

"정치논리로 접근, 사회 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만큼 실상을 정확히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 5월 2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회동

"쇠고기를 처음 개방하는 것도 아니고 옛날 개방했다가 중지됐던 걸 재개하는 것인데 역사에 없던 걸 처음 하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 - 5월2일 시ㆍ도지사 간담회

"쇠고기 협상 타결 시 (정부는) 한우농가 대책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광우병 얘기로 가더라. (광우병 공격하는 사람들은)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 5월8일 청와대 출입기자간담회

"1만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파악해 보고하라." - 5월 초순 청와대 내부 회의

"미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문제가 될 때는 우리가 (수입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도 인정했다. 통상마찰 때문에 (쇠고기 수입 중단 가능성을 언급한) 국무총리 담화문 내용을 시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 정부가 수용했다." - 5월 13일 국무회의

"대통령을 해보면 알겠지만 국제관행상 재협상은 어렵다. (쇠고기) 추가 협의 내용은 사실상 재협상에 준하는 내용으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 5월20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의 회동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 기준과 부합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다." - 5월 22일 대국민 담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쇠고기) 재협상 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한총련 학생들이 가담하고 있어 걱정이다." - 6월 6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대표단과의 간담회

"그때(노무현 정부 때)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 … 쇠고기 문제를 발표할 때 어떻게 문제가 될 지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세와 소통이 부족했다." - 6월7일 기독교지도자 간담회

"국민 정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국민이 마음을 연 뒤에 무슨 말을 해도 납득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 6월8일 천주교지도자 간담회


태그:#이명박 대통령, #광우병 쇠고기, #배후설,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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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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