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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는 전경차를 시위대가 밧줄로 묶어 끌어내려하자 경찰이 절단기로 밧줄을 끊고 있다.
 8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는 전경차를 시위대가 밧줄로 묶어 끌어내려하자 경찰이 절단기로 밧줄을 끊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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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릴레이 촛불 집회 도중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산발적인 충돌이 있었다. 속 시원한 대답과 원칙적인 문제 해결을 모색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나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

경찰은 마치 때를 노린 듯 촛불 집회가 '폭력 시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폭력 시위는 엄중하게 진압하겠다고 단언했다.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정부와 경찰이 이러한 산발적 상황을 촛불 집회의 정당성을 희석시키고 강제 진압의 빌미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더구나 8일 새벽 폭력 시위를 누가 주도했느냐를 놓고 인터넷 상에서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촛불 집회에 참석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평화 집회' 의지가 강하고 시민들이 경찰과 정부의 얄팍한 전술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어 촛불 집회가 폭력 시위로 변질된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경찰과 정부는 공권력 행사라는 정당성을 확보한 자신들은 평화적이라고 자부하는 듯한데 이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평화학 전공자로서 폭력의 근본적인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누가 폭력적 상황을 만들었을까

좁은 의미로 폭력은 물리적 힘을 사용해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에 따르면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간에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을 위협하거나 방패로 시민들을 찍는 행위 모두 폭력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런 행동이 일체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폭력을 논할 때 같이 논의되는 것은 '대응적 폭력'이다. 이른바 물리적 폭력의 사용이 약한 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경우 누구도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절대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약간의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일부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점은 그들이 느낀 무기력감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따라 논점이 달라 수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밤을 새워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진압에 나선 경찰이 한 시민의 목을 낚아채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밤을 새워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진압에 나선 경찰이 한 시민의 목을 낚아채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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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적 폭력'을 논할 때는 한 사건만을 보는 단선적 접근보다 다면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경찰과 시민의 대치 상황 그 자체만 따지는 것은 단선적 접근이다. 

넓은 의미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문화적, 구조적 폭력 모두를 아우른다. 여기에서 폭력을 규정하는 핵심은 개인의 삶에 대한 절대적 존중이다. 갈퉁이 고안한 '구조적 폭력'에서 의미를 찾는 넓은 의미의 폭력은 개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모든 형태의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노력으로 80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억압적인 사회 구조, 조직 문화, 집단 제약 등에 의해 80 이하를 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폭력적 상황이다.

촛불 집회에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근본적 이유는 자신들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넓은 의미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야기할 수 있는 식품을 정부가 결정했으니 먹으라는 것보다 더한 폭력이 어디 있겠는가. 전 국민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운하 같은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도 심각한 폭력이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인 학생들의 상황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교육 정책을 바꿔 이들을 억압하는 것 또한 민주사회에서 상상하기 힘든 폭력이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없이 수돗물 사업을 민영화 시키는 것도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넓은 의미의 폭력에서는 경찰에 대한 폭력도 언급되어져야 한다. 모집제가 아닌 징병제인 대한민국에서 일정기간만 국가에 봉사할 의무를 지는 전의경에게 극도의 심리적, 신체적 억압을 가하고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진압하라는 양심에 반하는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다. 그들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잘못된 정부 정책을 방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또한 인간에 대한 존중을 거부하는 근본적 폭력이다. 

폭력의 배후에는 대통령과 정부가 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사흘째인 7일 저녁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사흘째인 7일 저녁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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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경찰이 '폭력 시위' 운운하고 있지만, 한 달도 넘은 장기간의 촛불 집회가 경찰의 일방적 폭력 진압을 제외하고는 심각한 물리적 충돌로 치닫지 않는 이유는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에 비해 세계에서 생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민주국가이면서도 아직도 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이 당연시되는 나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해치는 정책을 80%의 국민이 한 목소리를 내도 변화시킬 수 없는 나라, 생존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하소연을 한 달 넘게 외면하는 대통령과 정부가 존재하는 나라. 이 모든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평화 집회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들의 성숙도가 낮은 나라였으면 벌써 폭동으로 치달았을 상황이다. 

'인간 필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인정과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런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고 억압당할 때 폭력을 경험한다. 이런 폭력 상황에서 사람들은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사회 통념을 뛰어 넘는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촛불 집회는 이런 기본적 필요를 억압하는 폭력 상황을 종식시키려는 국민들의 자발적 표현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와 경찰은 지금까지 이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조장하고 있다. 바로 이들 모두가 폭력의 가해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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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주진 기자는 영국 브래드포드대학에서 평화학을 전공했습니다.



태그:#촛불 집회, #폭력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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