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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의 촛불 수많은 개인, 집단, 의견, 주장들이 공존한 채 모여있는 것이 촛불문화제의 특징이다.

정치적 난장으로서의 촛불문화제

 

연일 이어지는 촛불문화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집회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에서부터 사탄의 무리라는 극언까지 난무하는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한몫 거들었다.

 

현장에 직접 나와보지 않고 말하는 이들일수록 아무래도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일부 청와대 비서관과 대형 교회 목사들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포함되는 이야기다.

 

기실 요즘의 촛불문화제는 목전에 두고도 맥락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그만큼 새롭다는 뜻이다. 특정 집단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통제력을 행사했던 과거의 집회들과는 달리,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반대한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만을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정치적 난장의 성격이 강한 것이 지금의 촛불문화제다.

 

이러한 특징은 곳곳에서 목도된다. 온라인에서 모인 한 그룹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진행하는 행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독자 행진을 벌이는 한켠에서는 보수단체인 박사모가 국민대책회의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집회를 한다.

 

그런가 하면 앞에서는 전경들과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데 뒤에서는 수많은 참가자들이 "비폭력"을 연호한다. 섣불리 폭력을 쓰려 해도 프락치로 몰리는 반면 섣불리 자제를 요청해도 의심의 눈초리가 날아오곤 한다(물론 현재까지는 물리력을 동원하는 쪽이 돌출행동 취급을 받고 있다). 국민대책회의 역시 이런 다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분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청소년들의 촛불 촛불문화제의 도화선이었던 청소년들의 참여열기는 한 달이 넘도록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성단체의 촛불 시간이 지날수록 각계각층의 참여가 높아지면서 촛불문화제는 점점 다채로운 색을 띄어가고 있다. 사진은 6월 7일 대학로에 모인 여성단체 회원들
 
채식주의자의 촛불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주동력인 만큼 주장의 다양성 또한 촛불문화제의 핵심 특징 중 하나다. 채식주의자들도 참가해 자신들의 주장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선전하고 있다.
 

깃발 없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물정 모르는 반대세력이라면 혹 좋아라 오해할지도 모를 이러한 '백가쟁명'이야말로 사실은 촛불문화제의 진정한 동력이다. 시작부터가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거니와 그 후로도 단일한 세력이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음에도 제1야당의 지지도는 좀처럼 상승할 줄을 모른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더더욱 이만한 인원을 모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 6월 7일 대학로에서 개최된 민주노동당의 길거리 전당대회에는 500명이 모였을 뿐이다. 시민단체와 노조, 대학 총학생회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답은 그 모두를 합친 것 이상의 존재, 즉 시민들에 있다. 매일 저녁 시청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는 정보만을 듣고 온 '깃발 없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야말로 현 정국의 배후이자 몸통인 것이다.

 

유모차 부대, 예비군 부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집회에 나와서 데이트하는 연인들, 체험교육에 나선 가족, '전술적 고려'도 없이 흥분한 나머지 물리력을 동원하는 일부와 전경들에게 종이 뭉치만 던져도 "비폭력"을 연호하며 말리는 나머지 대다수까지를 하나로 묶어 이해할 방도가 달리 어디에 있단 말인가.

 

유모차 부대의 촛불 유모차 부대의 등장은 촛불문화제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상징 중의 하나다.
 
아이들의 촛불 부모와 함께 촛불문화제에 나온 어린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자녀의 산교육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족단위 참가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
 
중장년층의 촛불 중장년층의 촛불문화제에 대한 호응도는 과거 어느 시위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많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소나기 피하려다 장마 맞겠는가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배후세력이니 주사파니 심지어 사탄의 무리 타령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는 것이다. 청와대로 가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점잖은 충고 역시 전달될 번지수를 찾지 못해 방황할 뿐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를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직까지는 자율적인 통제력을 훌륭히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도 혹 이해를 못할까봐 뒤집어 표현하자면 이렇다. 지금이니까 이 정도지, 옛날 같았으면 민란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형국이 요즘이다. 반대정파의 공세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소나기 피할 심산으로 시간을 끌어봤자 유리할 것은 없을 듯하다. 경제지표마저 단기간에 개선될 가망이 없는 이상 돌아선 민심은 길고 지루한 장마비를 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 내내 현 집권세력이 지켜보며 즐겼을 그 장마비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불행한 돌발상황의 발생 가능성이다. 상황이 지속될수록 높아져갈 수밖에 없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통제력을 현재로서는 시민들 자신 외에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어느 모로 봐도 해결책은 재협상 선언뿐이다.

 

청계천의 촛불 불도저와 같은 저돌성으로 지금까지 밀어붙여온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지금의 촛불민심은 벽이나 장애물이 아니라 긴 장마전선처럼 밀어붙일 수 없는 대상인 듯하다.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하다가 청계천 다리 위에 얹어놓은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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