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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8일까지 연인원 55만명이 참가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은 8일 저녁 7시 공식 종료됐다. 그러나 '종료'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3만여 명의 시민들은 다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10일 "1백만 국민이 참여하는 촛불대행진을 만들겠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라고 밝혔다.

 

계속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지금 이 곳에 와서 사람들을 봤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입에 발린 말만 하지 말고 국민의 말을 들어줬으면 한다." -변ㅇㅇ, 친구와 함께 집회에 나온 고등학교 3학년생

 

"이 정도까지 국민들이 했으면 대통령도 국민이 원하는 답을 줄 때가 됐는데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더 누르고만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청와대로 자꾸 가려고 하는 것이다." -김성욱, 10살, 8살 난 딸과 함께 집회에 나온 아빠

 

"이제 더 이상 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 하는 일마다 숨기려고만 하고 국민들 앞에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이성욱, 30대 직장인

 

55만 국민들은 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에 동참했나

 

그들의 말처럼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화답하지 않았다. 대책이라고 내놓았던 '자율규제' 발언 등은 '꼼수'라 지탄받았다.

 

정부가 재협상 대신 내놓은 '자율 규제' 방안은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아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데다 대외무역법과 행정절차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30개월 미만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수입된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한국인들은 광우병 위험에 완전히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우 정책실장은 "현재 30개월 미만 수입 쇠고기 부위 중 유럽에서 SRM 부위로 인정하는 내장만 수입하더라도 미 축산업계는 만세를 부르고 만족할 것"이라며 "현재 미국 내에서 식용으로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거나 사료공장으로 보내지는 내장 부위가 소 1마리 당 100달러의 이익을 안겨준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대통령의 '촛불시위'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7일 기독교 지도자와의 오찬 간담회에서는 "그 때(노무현 정부)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라며 '설거지론'을 다시 한 번 들고 나왔다.

 

결국 이 같은 정부의 모습은 국민에게 불신과 분노만 안겨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 불신과 분노는 72시간에 걸쳐 55만명의 국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동력'이 됐다.

 

거리로 뛰쳐나온 인터넷 시민들... 발랄한 '혁명' 창출하다

 

불신과 분노를 동력 삼아 거리로 나섰지만 사람들은 보란듯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거리에서 실현했다.

 

지난 3박 4일 동안 '해방구'가 된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광장에서는 살아 숨쉬는 지식과 문화로 충만했다. 다양한 공연이 열렸고, 수많은 이들이 자유발언에 나섰다. 변호사와 교수들은 '헌법1조', '한미FTA' 등을 주제로 한 돌발강의를 했고, 사람들은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시국토론을 벌였다.

 

발랄한 상상력도 빛을 발했다. 화장실 벽에나 씌여졌을 낙서가 광장에 등장해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고, "님아 즐쳐드셈"이라는 인터넷 용어는 정치 구호로 변신했다. 각자 A4 용지 크기의 손팻말에 직접 쓴 글도 기발하다. "여보! 대통령님 댁에 인터넷 깔아드려야겠어요", "우리 만난 지 100일째 이제 그만 헤어져" 같은 글에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즐거워 했다. 경찰의 해산방송이 나올 때면 "노래해, 춤도 춰"라고 맞대응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무선인터넷으로 무장한 '디지털 게릴라'들은 기존 언론들을 무색케 했다. 경찰의 폭력진압을 생생하고 빠르게 고발했고 스스로 촛불의 의미를 규정했다. 또 자신들을 왜곡시키는 언론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맞섰다. 

 

과거 거리로 나섰던 이들과도 다르다. 운동권도, 노동자들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앞서가는 시민들을 따라가기도 급급하다. 패션·육아·스포츠 등 비정치적 영역에 속해 있던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교복을 입은 학생도,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이도, 손을 붙잡고 나온 20대 연인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인터넷에서 자발적으로 "시민들을 경찰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비군 연대가 만들어졌고, "충돌로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봉사단이 꾸려졌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인터넷 커뮤니티가 거리로 뛰쳐나온 것 같다. 하나의 게시물에 수백,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하나의 주장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 그에 대한 토론을 통해 하나의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 통일성과 획일성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한다. 지난 7일에는 일부 시민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진행에 대해 거세게 항의해 잠시 진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찍이 한국 사회가 겪지 못한 '혁명'이다.

 

소통의 광장 열고, 김밥과 생수로 연대... 경험은 변화를 이끈다

 

분명 인터넷 시민들이 일구어낸 이 '혁명'은 한국의 사회·문화 변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보수언론의 '쌩얼'을 목도했고, 수만의 사람들과 광장에서 직접 소통했다. 알지 못하는 이가 보내오는 물과 김밥 지원을 받으며 '연대'의 의미까지 체화했다.

 

8일 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이번 사태를 통해 시민들이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지배세력의 실체를 알게 된 획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분명 정부의 재협상 불가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서도 논쟁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 같은 경험을 체화하고 공유한 이상 이명박 정부는 벼랑 끝으로 계속 몰릴 것이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앙제리 고등농업학교 학생이었던 이는 이렇게 말했다.

 

"1968년 5월에 대한 나의 가장 생생한 기억은 모든 이들이 새롭게 발견한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5월 그 한달 동안의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5년 동안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또 다른 세계였지만 내가 항상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말할 필요와 권리 말입니다." -르네 부리고, <1968년의 목소리, 로널드 프레이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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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문화제, #미국산 쇠고기, #디지털 게릴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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