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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좌집회, 2주 전 연좌시위 생각나

 

 

몇 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촛불문화제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 천막을 두르고 밤을 지새우고 있는 곳으로 찾아간 것까지는 기억난다. 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 것 같다. 일어나보니 8일 오전 11시 가량이었다.

 

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 호텔 인근 도로에서 500여 명 가량이 '자유발언' 형식으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라고 할 수도 있다. 가족단위의 참가자도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다.

 

나는 첫 가두시위와 경찰 병력과의 첫 대치가 있었던 5월 24일~25일 집회를 떠올렸다. 뙤약볕 아래에서 200여 명 가량의 시위참가자들이 밤새 의경과 대치를 벌이다가 소라광장에 자리잡았고, 오후 5시에 새로운 참가자들과 합류할 때까지 최악의 상황에서도 참가자가 1500여 명 이상으로 불어났었다. 당시 나는 얼떨결에 집회 진행을 맡았으며, 그 현장이 인터넷에 생중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요즘은 냉정을 되찾고 '취재'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참가자'였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보기엔 별 차이가 없어보일지도 모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심각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최소한의 냉정까지 쉽사리 잃어선 안된다는 판단과 결심, 그리고 그래야만이 사태의 본질에 더욱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당시와는 정반대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는 점이 묘했다. 500여 명 가량의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발언과 노래로 연좌시위를 진행하고 있었고, 가끔씩 일어나 주변 도로를 횡단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본질적인 의문이 있었다. 그 순간 역시, 그 의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들은 왜 쉽사리 거리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독하게 만들었을까?"

 

▲ 연좌를 벌이고 있는 촛불시위 밤샘 참가자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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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촛불집회 반대시위'도 벌어져

 

오후 5시를 넘기면서, 시청 앞 광장에 있던 참가자 500여 명이 세종로로 나와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광화문 사거리에는 늘 그래왔듯이 경찰 병력이 전경버스를 동원해 빈틈없는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상황은 세종로 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벌어진 '소규모 시위'다. 이미 유명인사가 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이세진씨를 비롯해 15명 가량의 시민들이 '촛불집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PD수첩>을 비롯한 MBC의 보도를 성토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우연히 나와 만나 잠시 같이 행동했던 <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가 시위를 주도하던 전경식(48)씨의 인터뷰를 시도하자 전경식씨는 기자에 대한 '신분 확인' 뒤에 <오마이뉴스>에 대한 가벼운 성토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대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려고 나왔다가 '촛불집회 반대 1인시위'를 하던 여대생이 60대 노인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반대시위'에 합류했다. 나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아서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폭행 모습을 본 이후로는) 반대집회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순수한 의도로 이 자리에 나왔다."

 

솔직하게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 대답은 뭔가 '핀트'가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안맞는 핀트'가 무엇인지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알아서 판단해보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게다가, 전경식씨에게선 반대시위를 주도하는 듯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 '촛불집회 반대시위' 현장, 높아진 언성이 이어진다. 보라색 우비를 착용한 중년 남성이 전경식씨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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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및 가두시위 참가자들이 '조중동'을 성토하듯이, 이들 역시 MBC나 <오마이뉴스>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피켓을 들고 있던 어느 중년 여성은 <오마이뉴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마이뉴스>는 '촛불집회 찬성' 쪽에 100을 몰아주는 보도를 하고 있다. 언론이라면 반대 의견에도 30 정도는 할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오마이뉴스>를 인터넷 즐겨찾기 첫번째에 등록해놓고 있다가 삭제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60대 노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여대생을 비롯해 '촛불집회 반대시위' 참가자들 몇몇에게 물어보니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음을 강변한다는 점일 듯하다. 하지만, 피켓 하단에 적힌 단체의 이름이 자주 바뀐다는 점이 아무래도 묘하다.

 

8일에는 '밝은 인터넷 운동 본부' 명의의 피켓이 엿보였지만, 그동안 많은 단체 이름이 노출됐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뭘 그렇게 잘못했으며 대운하 건설은 대한민국을 금수강산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한반도 대운하 지지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라는 최옥석 목사 주도의 기도혁명교회,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의 '교육선진화운동본부'와 '교육선진화포럼' 등의 단체명이 노출됐다.

 

 

'반대시위' 감정적 대응은 말아야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인지, '촛불집회 반대시위'를 바라보는 행인이나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다분히 감정적인 일면이 있다. 언성이 높게 오가는 경우도 있으며, 서로 '욕'을 했다고 더 크게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굳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촛불집회 반대시위자들도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러 거리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설령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들도 집회의 자유를 누려야 할 시민임이 분명하다.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자리에서 언성 높이고 싸운다고 해봐야 끝없는 평행선일 뿐, 서로 기분만 상할 것이다.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철옹성처럼 변함없는 집념을 견지하는 가운데에 촛불시위의 조짐은 심상치 않은 형국을 맞이했고, 반대시위도 '조중동'의 옹호 속에 주목받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 보다 많은 관심과 비판이 필요한 시점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찬성이든 반대든, 우리에게는 더욱 주의깊은 관심과 세심한 비판이 필요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촛불시위, #뉴라이트, #이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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