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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은 촛불은 꺼져가기는커녕 매번 새로운 단계로 진화를 거듭하며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집단지성의 예술로 승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기반과 제도 정치권의 철저한 무능력, 그리고 무지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용감한 현 집권 세력의 국민에 대한 역린이 만나서, 완벽한 수평적 네트워크가 빚어낸 최고 수준의 집단 지성을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보수언론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시민단체 조차도 감히 움직임을 주도하지 못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중들의 수평적 의사소통의 자연스러운 집단적 합의과정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동물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논의 자체도 쇠고기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대운하, 공교육 파괴,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등 현 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으로 확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인 상호정보교환과 토론을 통해 그 어떤 보수언론이나 시민단체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한 집단 지성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이 마무리 된 가운데 8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32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렇게 빚어지는 '집단지성의 예술'은 관찰하는 사람조차 소름이 돋게 할 지경이다. 이러한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국민적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역시 상상을 초월하도록 무능력한 정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처음부터 국민을 무시했던 정부가 들끓어 오르는 저항의 움직임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불을 지르는 실책을 거듭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반작용으로 촛불은 한 단계씩 더 진화해 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력이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바닥을 드러낼수록 한편에서는 촛불의 회의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쇠고기 문제 그 다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면 그 다음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도부가 없어도 단일한 움직임으로 결집이 가능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구심 역할을 해주었던 '공공의 적'(?) 이명박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쇠고기와 이명박 정부라는 집단적 구심이 사라진다면...

 

그럼 그 단일한 상대가 이제 촛불에 무릎 꿇고 없어진다면? 전경의 군화발도 살인적인 물대포도 끄지 못했던 촛불은 상대를 잃어버리고 속절없이 무너져가기 쉽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 무작정 버틸 경우 쇠고기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하고 저항은 지쳐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정치권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무작정 물러나라고 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의 기록적인 지지율 하락에도 민주당은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민주노동당 조차도 10%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제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새롭고 더욱 큰 위기는 줄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결국 대처하지 못한다면 상상 가능한 최고수준의 집단 지성의 희열은, 오히려 그 만큼 더욱 극심한 집단적 좌절과 회의로 급격하게 빠져버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시민들의 노력으로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조금 찾아온다고 해도 그 이후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에도, 4.19 혁명 이후에도,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똑같이 기득권 집단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주었던 그 분통한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힘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적이 없는 즉 '완전한 승리' 없는 역사적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립적 '국민대안위원회'를 제안한다

 

이 대통령 '지금은 생각중' 최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마르  구엘레 지부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이제는 그래서 민주화와 같은 절차적 문제를 뛰어넘은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항의 에너지는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힘으로 이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는 또 다른 패배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촛불의 저항이 하나의 단일한 상대(지금의 이명박 정부)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에 의해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만들어 갔다면, 이제는 저항을 넘어선 구체적 대안이 필요한 때다.

 

그래서 나는 독립적 '국민대안위원회'를 제안한다. 독립적이라 함은 무능력과 불신의 상징이 된 기존 정치세력과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뜻한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현재 대책위원회나 참여 단체 중 신망 받는 시민단체가 주도하되 국민적 신뢰와 실력을 인정받는 학계, 시민단체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참여시킨다. 정치, 경제 쪽 인사를 참여시킨다 하더라도 역시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 개인을 개별 자격으로 참여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성 절차들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수평적 에너지를 활용하여 인터넷 등을 통한 국민적 추천과정과 선임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저항의 에너지에서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대안을 제시하려는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어떤 총체적 비전이라기보다 개별적인 정책과제들을 제안하는데 그쳐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개별 정책들의 나열이 아니라 경제, 고용, 교육, 복지 등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총제적인 그림이다. 지난 대선 때 지식인들이 모여 각 분야 개혁과제를 열거한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보다 문국현이 내세운 '사람중심 진짜경제'라는 한마디의 구호가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결국 허망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사회적 과제를 아우르는 새로운 메시지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현재 서민들이 고통 받는 근본 문제와 원인을 규명하고, 현재 현실화 되고 있는 세계적 위기들과 국내의 위험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총체적인 대안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각 분야별 전략적 정책을 생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구체적 그림을 던져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위원회가 논의를 일방적으로 주도하게 하고 여론은 '수렴'만하는 그런 일방적인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위원회는 수평적 네트워크로 표출되는 국민적인 집단적 지성이 최대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방법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수평적 참여와 권한 위임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 모델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국민 참여재판의 배심원제를 정책 논의에 적용해,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시민들이 직접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 배심원제'도 그 중 하나다.

 

위원회, 수평적 참여를 통한 안내 역할 부여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이틀째인 6일 오후 수천명의 시민, 학생들이 '아고라' 깃발을 앞세우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시민에 의한 직접적인 결정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00년 낙선 운동 과정에서 낙선 대상자를 최종 선정했던 100인 유권자 위원회 사례 등 시민단체들도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오프라인 방식 뿐 아니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통한 더욱 광범위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역시 극대화해야 한다. 각 분야별 온라인 포럼부터 시작해서 각종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논의과정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할 수 있다. 동시에 진행되는 온라인상 논의와 결론 역시 별도로 반영되는 장치 등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위키피디아로 잘 알려진, 집단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위키(Wiki) 기술과 같은 웹2.0의 새로운 영역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도 다양한 수평적 참여를 통해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안위원회는 이러한 국민적 논의과정을 진행하면서 이것이 점차 심도 있는 논의로 발전되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구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근본 문제와 원인을 진단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들을 집어내며 이를 극복하고 모두에게 공평하면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총체적이면서 구체적 대안을 포괄적 논의과정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구체적인 성과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1년이 걸릴 수도, 2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는 얼핏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1992년, 대처에 대한 환멸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대안이 부재한 상항에서 보수당의 재집권을 허용한 이후 영국 노동당이 만들었던 독립적인 '사회정의 위원회(Commission for Social Justice)'의 사례는 실질적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래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이렇게 정말 대중의 참여와 합의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진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이명박 정부의 대안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 대로 이를 책임 있게 현실정치에서 실현시킬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집단적 지성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열어놓고 논의과정에 포함 시킬 수 있다. 이 거대한 대안 모색과정이 이루어만 진다면, 정말 새로운 대안 정치 모델이 새롭게 창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말로만 '개혁세력'이고 '진보세력'인 기존 정치권의 이합집산보다는 백배 천배 더욱 나은 희망적인 모습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처의 영국'을 끝내기 위한 새로운 대안, '사회정의 위원회'

 사회정의 위원회 최종 보고서 표지. 이 보고서는 대처 이후의 영국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노동당 정부의 압승을 이끌고 그 후 10년의 집권을 통해 더 나은 영국을 건설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종하는 신자유주의의 전형으로 잘 알려진 대처 정부의 10여년 집권 끝 무렵, 심각한 실업과 경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플레이션과, 복지 축소로 교육·보건 등 공공서비스가 악화될대로 악화되어 국민의 불만은 극도로 높아졌다.

 

기어이 1990년, 무리한 인두세(Poll tax) 정책이 민심에 불을 질러 수만 명의 군중이 총리관저로 몰려가는 사태로까지 벌어지자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은 결국 눈물을 보이며 밀려나게 되었다.

 

그 이후에 맞이한 1992년 선거에서 누구나 노동당의 재집권을 예상했었다. 노동당은 선거 전 전당대회에서 집권에 대한 성급한 기대에 잔뜩 들떠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노동당은 '대처가 바꿔놓은 사회정책을 모두 되돌려놓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영국 국민은 대처에게 환멸했다고 해서 그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영국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 '사회정의 위원회'

 

그러자 그 해 12월 노동당 당수 존 스미스는 과거의 노동당도 아니고 대처도 아닌 새로운 근본적이면서 구체적인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당과 독립된 '사회정의 위원회'를 구성한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에는 경영학자, 사회심리학자, 사회정책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등 학자 뿐 아니라 기업인, 사회단체 인사, 노조 관계자까지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베버리지 보고서(전후 영국사회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노동당이, 국민영웅 처칠의 보수당을 이기고 처음으로 단독 집권을 가능케 한 보고서)' 50주년에 결성된 이 위원회는 '노동과 임금(work and wages)', '돈과 부(money and wealth)', '서비스와 공동체(services and communities)' 세 개의 패널로 나뉘어 구체적인 작업을 2년여에 걸쳐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 위원회가 끼리끼리 논의를 진행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위원회에 자문과 자료를 제공한 각종 인사와 단체의 명단은 수백에 이르러 최종 보고서 12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 그 범위는 학자, 정치인, 사회단체, 이익단체, 연구기관, 기업, 해외 인사, 국제단체 까지 포괄하고 있다.

 

2년에 걸친 연구, 최대의 지혜를 모아 새로운 비전 제시

 

이 위원회가 새로운 대안을 위해 지혜를 모아간 과정은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1년여 동안 전국 11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각종 연구 기관, 사회단체를 방문하고 각 도시별로 공개된 포럼을 연속적으로 개최하여 일반 시민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이 과정에서 13개의 각 쟁점별 보고서(issue report)와 2개의 중간 보고서를 내놓으며 점차 논의를 심화시켜 갔다.

 

결국 1994년 7월 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승인했다.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이 보고서, '사회정의: 국가재건을 위한 전략(Social justice: strategies for national renewal)'은 당시 영국 사회문제와 세계적 변화의 흐름을 짚고, 이에 공평한 기회에 기초로 한 새로운 발전전략에 따른 새로운 국가모델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분야별 구체적인 정책 전략까지 담겨져 있다. 이 보고서 출판본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집권) 보수당 정책 혼돈 속에서 상대 당은 신뢰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지금, (이 보고서) '사회정의'는 올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최종 보고서의 중요성은 그 해에 그치지 않았다. 이 최종 보고서 출판과 같은 해 당권을 장악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New Labour) 세력은 이 보고서의 전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며 1997년 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둔데 이어 3연속 집권이라는 노동당의 역사적 기록을 이루었다. 실제로도 10년여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개혁정책의 핵심 기조는 상당부분 이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이 보고서가 제시한 비전과 전략, 그리고 현재 10년 집권 이후 노동당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라는 최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신노동당 10년 집권 기간이후 신노동당의 비판자들조차도 '영국은 더욱 나은 곳이 되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을 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정의 보고서를 받아 압승한 신노동당, 더 나은 영국을 만들어내다

 

신노동당 집권 10년 동안 800만 명이 빈곤에서 탈출하였고, 교육과 보건 예산은 소득세율 인상 없이도 획기적으로 증액되었으며, 무상의료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대기 기간 등의 문제들 역시 상당 수준 해결하고 영국인의 가장 큰 사망원인이었던 심장 질환 사망자를 30%를 감축시키는 구체적인 성과도 얻어 내었다. 

 

그러면서 최초로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물가에 따라 인상시키면서도 실업률은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영국 현대사에서 최장기에 걸친 경제적 안정 성장도 달성했다.

 

게다가 현재 노동당의 몰락을 가능케 했던 상대 보수당의 부활도 다시 대처 시절로 돌아가서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새 젊은 당수 데이비드 카메런은 철저히 신노동당의 전략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면서 국민들의 신임을 다시 찾아갔다.

 

신노동당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신노동당 개혁의 새로운 적임자임을 강조하면서 무상의료(NHS)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야 말로 새로운 수호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즉, 전후 베버리지 보고서가 영국 복지국가에 대한 노동당과 보수당의 정치적 합의를 이루게 했다면 사회정의 보고서로 집권한 신노동당의 전략은 또 다른 합의정치를 형성시킨 것이다. 사회정의 보고서 이후 영국 정치는 80년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주도에서 분명 더욱 왼쪽으로 이동한 새로운 합의 정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집단 지성이 표출되는 지금, 우리는 더욱 획기적인 모델도 가능하다

 

물론 지금 이 보고서가 제시한 비전과 전략을 우리나라가 지금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과 조건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시절 영국의 비전이 우리나라에 맞을 리도 없으니 그걸 베껴보려는 시도는 결코 타당하지도 않다.

 

정말 중요한 함의를 제시하는 것은, 집권당의 정책이 철저한 실패로 나타남에도 이를 대처할 새로운 비전도 없어 재집권을 허용했던 그 암울한 상황에서 당시 그 사회적 지혜를 집단적으로 모아 새로운 대안을 도출해내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의 집권을 이끌어 냈던 그 '과정'이다.

 

이 과정 역시 그대로 따라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아날로그 시대였던 그 과정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는 밑으로 부터 끓어오르는 그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수평적 네트워크의 집단적 지성의 힘을 목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http://idea.borong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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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