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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운동권도 밤 12시면 집에 자러 가는데, 잠도 안 자고 버티는 저 인간들은 도대체 누구냐?"

경찰 관계자가 한탄을 했단다. '시민' '주권자' '민중들' '이 나라의 주인' 등등으로 불렸지만 사실 그동안 그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운동권들에게도 내게도 사실 그랬다.

거리에서 본 '인파'는 깃발과 조끼를 갖춰온 노동자들이거나, 운동단체 회원들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효순이·미선이 집회나 탄핵 반대 집회 때 촛불을 든 '일반 시민'이 몰려나오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운동권 지도부'가 주도하는 판에 참여한 손님 같았다는 느낌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세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함과 예측할 수 없는 창발성과 전문가들을 뺨치고 어르는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그 무엇이 나타나고 있다. '시민' '민중' '다중' 무엇이라 이야기하든- 나는 이 촛불의 파도 속에 잃어버렸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다.

내가 소위 '운동권'이 되면서 나를 어떤 '대의'와 '틀' 속으로 밀어넣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내 내면 깊숙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또 하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촛불을 들고 시청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길거리의 시민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잃어버렸던 영혼의 일부를 다시 만나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말걸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미루다가, 5일 가벼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진 기술이 형편없어 좋은 사진을 못 찍었고, 사진을 굳이 피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통일 터. 난 그들과 소통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인터뷰 ①] "공부하는 국민들 무척 많습니다"

몸 플래카드를 손수 만들어 입고 촛불집회 장에서 1인 시위 중인 임방윤씨.
▲ FTA 반대 인간새? 몸 플래카드를 손수 만들어 입고 촛불집회 장에서 1인 시위 중인 임방윤씨.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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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촛불집회장에서 먼저 만난 분은 임방윤씨. 종로 근처에서 가게를 한다고 했다. 눈에 띈 이유는 직접 만들었다는 몸 플래카드 때문이었다.

"5월 2일부턴가 촛불집회에 참가했어요. 인터넷을 통해 알았죠. 지금까지 열 번 나왔습니다."

- 이렇게 몸 플래카드를 하시게 된 이유는요?
"쇠고기 문제를 보다 보니까 한미 FTA도 엄청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열 가지 독소조항 아시죠?(말해보라고 할까봐 겁먹었다) 그 중에서도 래칫 조항(역진방지), 그게 제일 문제에요. 한번 체결하면 절대로 못 되돌린다는 거잖아요?"

- 작년에 FTA 반대 집회 많이 했는데, 그 때는 잘 모르셨어요?
"그 때는 몰랐죠. 주변에서도 거의 몰랐을 거예요. 언론에서는 좋은 쪽으로만 보여주잖아요. 제가 이렇게 하니까 주변에서도 조금씩 생각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잘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쇠고기도 있지만 좀 더 큰 것을 알리려고 하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발 독단적으로 하지 말고 좀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코오롱워터 민영화 문제도 아시죠? 지금 국민들 바보 아니에요. 공부하는 국민들 무척 많습니다. 그런 국민들과 얘기를 해야 하는데, 주변의 1% 말만 듣고 저렇게 하면 됩니까? 정말 최고경영자(CEO)라면 그래선 안 되죠."

- 집에서도 선생님의 활동을 지지해주시는 편인가요?
"하하, 아무래도 제가 이렇게 나오면 매상이 좀 안 좋으니까 아내가 눈치를 주긴 하지만…. 아내도 함께 촛불집회 나와요. 다 같이 하고 있어요."

[인터뷰 ②] "대통령은 주식회사 사장 아니잖아요"

촛불집회에 아들과 함께 참석한 최경식씨.
▲ 넌 강부자? 우린 촛불부자! 촛불집회에 아들과 함께 참석한 최경식씨.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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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직장인인 최경식(가명)씨와 둘째 아들인 최상우 학생(초6)을 만나보았다.

- 어떻게 나오시게 되었나요?
아버지 "이번에 처음 나왔어요. 우리 둘째가 반 회장인데 오늘 여기 왔다가 반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기에 같이 나왔어요."
아들 "(쑥쓰러운 듯) 친구들도 다 나오고… 국민들도 나오니까…."

- 이명박 대통령이 뭐가 제일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태생부터 도덕적인 문제가 심각했죠. 그리고 독선적이고 일방적이고…. 국민들의 생각을 너무 무시해요. 이렇게 가면 오래 못 가죠."

- 촛불집회 나와 보시니까, 분위기가 어떤가요?
"참 좋아요. 우리가 '87항쟁' 할 때는 참 격렬하게 싸웠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자유롭고 순수하고….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오늘 큰아들하고 아내는 못 왔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온가족이 체험 삼아 꼭 나올 겁니다. 주변에 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중에 이탈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어요. 국민들이 노력하면 꼭 이길 수 있을 겁니다."

-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주식회사 사장 아니잖아요?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세요."

- (아들에게) 우리 친구는 뭐라고 할래요?
"국민의 건강을 좀 생각해주세요. 아빠가 이명박을 너무 싫어해서 저도 싫어요."

자식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선한 아빠인 최경식씨는 "우리 아들, 그랬어요?"하며 껄껄 웃는다.

[인터뷰 ③] "'광고물' 보고 집회 나왔어요"

촛불집회 참가한 경희대 간호학과 08학번 새내기들
▲ 새내기 떴어, 이명박 꿇어! 촛불집회 참가한 경희대 간호학과 08학번 새내기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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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는 청소년처럼 어려 보이는데, 그래도 멋부린 것이 대학생인 듯도 하다. 가서 취지를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 친구분들인가요?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저희들은 경희대 간호학과 다니고요. 저는 이예나(사진 오른쪽에서 세번째)라고 해요. 나이는 스무살이구요."

- 새내기네요? 예전에, 혹시 청소년 시절에도 이런 집회 같은 데 나온 적 있어요?
"아니요. 오늘 처음이에요. 전에도 사람들이 집회하면 나도 가봐야지 하다가 학교 공부도 바쁘고 해서 못 갔어요. 그래도 '저 사람들 참 대단하다, 나도 대학가면 해 봐야지' 그랬어요."

- 이번에 기회가 생긴 거네요. 오늘은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그동안 바빠서 못 왔는데, 오늘 학교 가니까 광고물이 붙어있는 거에요. 몇 시에 우리 학교도 나가니까 학교 정문으로 오라고. 그래서 모여서 왔어요."

'대자보'를 잘 모르는 세대라서 광고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자보를 보고 집회에 왔다'는 이야기는 우리 때만 해도 '알리바이' 짤 때나 쓰던 이야기다. 그렇게 집회오는 사람도 있구나.

"뉴스에서 보긴 했는데요, 그래도 직접 와서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훨씬 실감이 나고 생생하게 와닿는 것 같아요. 사람도 많고…. 부모님이요? 가지 말라고 했는데…(웃음) 그래도 얘기하니까 조심해서 다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부모님도 미 쇠고기 수입 반대하세요."

"저는 이명박 당선될 때부터 싫었어요. 청계천 같은 거. 외관상 좋을지 몰라도 그렇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싫어요. 대운하는 더 어이 없잖아요. 이 좁은 한반도에 운하가 왜 필요해요. (대통령이) 뭔가 달라져야 해요. 왜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어요."

- 광우병 소고기를 수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소에게 동물사료를 준다든가 하는 사육시스템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 학교에서 패스트푸드 산업에 대한 교양 과목 들었는데요.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에 문제가 정말 많다고 들었어요. 소를 너무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현대사회가 대량으로 그런 걸 원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 ④] "예전에는 집회보며 무모하다 했는데…"

촛불집회에 개와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끈 전은주씨.
▲ 개도 안 먹는다잖아요! 촛불집회에 개와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끈 전은주씨.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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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특이한 여성에 꽂혔다.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쥐 잡으러 나왔어요!' 개도 피켓을 들었다. 쥐 잡기엔 좀 둔해 보이는 놈(?)인데….

- 자기 소개 좀 부탁드려요.
"전 분당에 있는 동물병원 간호사고요, 전은주입니다. 하도 화가 나서 개를 데려 왔어요. 개도 안 먹는다는 뜻이죠."

- 이명박 대통령 당선될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당선은 예상했지만요, 정말 되니까, 국민들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그래도 이왕 됐으니까, 잘 해주기를 바랐는데, 지금 너무 안타깝고 그래요. 오늘 세 번째 나왔어요. 인터넷 방송을 꾸준히 보다가 그날 그 동영상(전경의 폭행 동영상)보고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나왔어요. 정말 5·18이 따로 없더라고요. 그 영화 있죠? <화려한 휴가>, 그 영화가 그 생각났어요. 쇠고기도 문제지만요, 건강보험 민영화, 그게 정말 심각한 것 같아요. 주변에서 너무들 걱정을 하세요. 돈이 있는 사람도 다 걱정해요."

- 쇠고기 집회 말고 이전에 집회에 나와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이번에 처음이에요. 사실 예전에 그런 거 보면, 동의는 하면서도 '무모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와보니까, 국민들이 싸우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다음에도 이 강아지 친구도 데리고 나올 거에요. 이명박 대통령님, 민심이 돌아가고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결심해 주세요."

[인터뷰 ⑤] "이제 투표권 생겨요, 제대로 대통령 뽑을 거에요"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고생들 "나 말고 피켓만 찍어 주세요!"
▲ 누가 이 청소년들을 배고프게 하는가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고생들 "나 말고 피켓만 찍어 주세요!"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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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촛불혁명의 주역 청소년을 발견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들고 있는 피켓도 '이명박 아저씨 배고파요'다. 빵이나 사다 주면서 인터뷰를 할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냥 들이대기로 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그들은 고2 여학생들이었다.

-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어디서 오셨어요?"(너 조중동이냐?)

- 사회당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촛불집회 현장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어서요. 청소년들 사이에 광우병 문제, 어느 정도인가요?
"장난 아니에요! 학교 쉬는 시간 내내, 밥 먹는 시간 내내, 집에 오는 동안 내내 광우병 이야기, 이명박 이야기, 민영화 이야기, 그것만 해요. 광우병 소 먹고 죽기 싫잖아요."

- 청소년들이 원래 그렇게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아뇨. 그동안 전혀 관심 없었어요. 그냥 그러나 보다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계실 때는 민주주의 사회였잖아요. 그때는 별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되면서, 광우병 소 그거 우리 먹는 거잖아요. 민영화도 정말 문제에요. 물 민영화 되면 어떡해요. 우리 빨래하러 다 빨래방 가야해요?"

- 촛불집회 나오면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걱정은 하시지만 이해하세요.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하세요. 지난 번에 전경 폭력진압 영상보면서 갈 데까지 갔구나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경도 똑같은 희생자잖아요. 군대 안 갔으면 여기서 같이 촛불 들 사람이잖아요."

갑자기 이 아이들이 너무 커 보였다.

- 청소년들이라 0교시 수업 같은 데 더 분개할 것 같은데 민영화 얘기를 해서 의외인데요?
"물론 0교시, 자율화 그것도 싫죠. 하지만 민영화, 쇠고기 이런 건 우리가 평생 살면서 겪게되는 거잖아요. 대통령은 정말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번에 확실히 느낀 건요, 앞으로 정치에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대통령 뽑을 때 나 하나쯤하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 정말 정신 차리고 제대로 뽑아야 해요. 나도 이제 투표권 생기는데요, 꼭 투표할 거에요.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요? 역사가 평가해 줄거야!"

누가 청소년을 자기만 알고, 세상에 무관심하고, 나약하다고 이야기했을까? 그러길 바랐던 한 줌의 권력자였을 것이다. 또는 그렇게 이야기해야 자신의 발톱만한 지식과 경험이 돋보인다고 생각한 나태한 진보주의자였든지.

청소년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는 분명 더 선한 세상을 꿈꾸는 유전자가 숨어 있었다. 손에 든 촛불이 잠자던 그 유전자를 작동시켰다. 이제 대한민국은 진화하고 있고, 이 길에 어떤 미래가 있을지 가슴이 뛸 정도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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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사회당 서울시위원장입니다.



태그:#촛불집회, #이명박,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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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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