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쇠고기 협상 이후 매일 들려오는 촛불 집회 소식. 먹고 사는 일에, 아니 스스로 핑계를 대느라고 현 시대의 대한민국 대표 소심남을 표내듯 '저러면 안되는데'만을 속으로 되넘기고 있었다. 5월 3일 하이서울페스티벌 전야 행사에 사진기를 들이밀고 돌아오던 도중 청계광장에서 들리던 여중생의 목소리.

'방금 사회 시험 끝내고 왔는데요. 우리나라 헌법 제 1조하고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태어나 지금까지 집회나 시위는 '그들'만의 행동으로 알고 살았다. 어쩌다 술 한잔하면 과격할 만큼 비판도 해보지만 '탁상공론'에서 끝냈고, 인터넷에 댓글로 내 생각을 전하고 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심남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5월 내내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고, 또 내가 얼마나 못났기에 저 아이들이 여기까지 나오게 되었는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 어른들의 '장가가라', '그 나이 먹는 동안 결혼할 여자 하나'란 소리보다 큰 조카와 동갑인 그 여학생의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1987년 6월은 넥타이 부대 '형님들'께서 하셨다. 5월 30일 친한 선배와 한잔하며 '배후세력'이 되기로 했다. 주말 넥타이를 질끈 매고 현장으로 가기 전 인터넷에서 '예비군'들의 모습을 봤다.

시민들과 전경들 사이에서 인간 방패를 자처한 예비군들의 모습.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오면 짜증을 내고, 동원훈련 때 현역 조교들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결연한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문득 '군에서 대위로 전역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육군 대위였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부심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소심남이지만 이건 아니었다.

병사들만 사지에 보내고 나만 도망가는, 대한민국 장교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앞에 전경들을 내세워 진압지시만 내리고 '지휘'를 핑계로 뒤에 서서 전투화와 방패를 무기 삼아 '안전 진압' 명령을 내리는 '능수능란'한 경찰 간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예비군복을 입은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덕수궁 앞에서 경찰과 대치를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예비군복을 입은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덕수궁 앞에서 경찰과 대치를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08년 5월 31일. 대위 계급장이 붙은 전투복을 꺼내 입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청계광장으로 걸어가던 중 프레스 센터 앞에서 '출동'하고 있는 예비군들과 조우했다. 그들에게 내가 전투복을 입고 나온 이유를 말했다.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러 모인 '불순한 배후가 없는' 시민들을 보호하고, 다시 시민으로 돌아와야 할 '우리들의 전경'도 보호하기 위해 모인 예비군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프레스 센터 앞에서 '첫번째 임무'를 수행했다. 시민들 앞에 서서 '먼저 깨지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한 시간 남짓 서 있었다. '예비군'을 소리 지르며 환호하는 시민들의 함성을 들을 때마다 세포 깊숙이에 있는 나도 모르는 전율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허나 '예비군들은 자리를 비켜나라.', '당신들이 우리를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복만 입으면 다 사람이 그렇게 되느냐?', '당신들도 우리를 막는 전경과 똑같다'란 소리를 들을때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었다.

5월 31일 저녁 22시. 광화문에서 별다른 마찰이 없어 일단 대오 정연하게 철수해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많은 예비군들과 얘기를 나눴다. 누가 시켜서 참석한 예비군들은 없었다. 저멀리 울산, 전남 순천, 대전, 청주.. 우리가 방패로 나서 비폭펵으로 시민들과 우리 후배들을 모두 보호하자고 모인 예비군들이었다.

5월 31일 저녁 23시. 삼청동과 효자동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중인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들은 질서정연하게 현장으로 이동해 '비폭력 작전'을 준비중이었다. 시민들과 경찰들의 신경이 최고조로 달아 올랐을 때 그 틈을 비집고 우리들은 '비폭력 작전' 임무에 들어갔다.

나는 삼청동으로 진입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경복궁 담 쪽 끝부분으로 이동했다. 내 왼편엔 올해 전역했다는 예비군을 비롯해 3명의 예비군이 위치했다.

어렵사리 시민들과 경찰들을 뚫고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 방패 앞에 내 자신을 드러냈다. 눈 앞에는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들이 두려움과 짜증, 황당 등 여러 표정으로 '경찰'이 선명히 찍힌 방패 뒤에 서 있었다. 내 뒤로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또한 솔직히 너무 겁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쓴 전투모와 옷깃에 달린 '대위' 계급장의 힘을 빌렸다. 장교는 죽어도 '쪽팔리면' 안된다는 어느 선배의 말을 속으로 곱씹고, 시민들이 '여기 예비군엔 장교도 있다'며 환호해줬을 때, '저도 예비군인데 같이 하면 안될까요'라며 전투복을 입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시민의 얘기를 무기 삼아 당당히 가슴을 펴고 작전을 수행했다.

몇 차례 시민들이 거칠게 밀어붙였다. '비폭력 작전'을 수행중인 예비군들은 버텼다. 그 사이에서 방패와 시민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됐다. 진정 후 다시 완충 거리를 만들었을 때 내 눈 앞에 서있던 전경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선임'들과 '간부'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그 젊은 전경은 입모양으로만 '괜찮다'고 나에게 답을 했다. 서글펐다. 도대체 왜 우리가 서로 적이 되어야 하는지. 너무나 화가 났다.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밤샘시위가 벌어지는 31일 새벽 서울시청앞 도로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수십명이 스크럼을 짜고 경찰의 진압에 대비하고 있다.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밤샘시위가 벌어지는 31일 새벽 서울시청앞 도로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수십명이 스크럼을 짜고 경찰의 진압에 대비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런 저런 생각을 억누르며 버티기를 수 십회. 물대포가 발사되자 중앙에 위치한 예비군들은 대신 몸을 던졌고, 그 때마다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쳤다. 물대포가 두번째 사격 위치를 고정하자 시민들은 '온수'를 외쳤다. 그러길 몇 차례. 결국 저지선이 뚫렸고, 예비군들은 일단 뒤편으로 철수해 전열을 재정비했다.

6월 1일 새벽 3시 30분. 광화문 공원에 모인 예비군들은 앞으로 우리 작전에 대해 토의를 거쳤다. 몇 차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발언도 오갔다. 하지만 우리가 낸 결론은 '전투력을 보존'해 차기 작전을 수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민으로 참가할 예비군들은 전투복을 갈아입고 현장에 잔류했다.

질서정연하게 청계광장으로 철수했다. 철수 도중 대기중인 전경들에게는 우리가 시민들에게 받은 음료수와 먹거리를 건네줬다. 고개를 숙이며 대단히 미안하다는 전경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위험에 빠질 때 도망가는 예비군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과 같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현장에 나타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었다면 전투복을 입고 있다는 자존심과 현역 때의 열정을 참지 못해 '그들이 말하는' 폭력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다.

그날 모였던 예비군들은 한결같이 얘기했다. '언제든지 나타날 준비가 되어있다. 언제든 깨질 준비는 되어 있다. 그 후회없는 한번을 위해. 그리고 우리는 비폭력이다. 시민과 동생같은 전경 모두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라고.

그날 몇 번 샌드위치가 된 덕택에 허리와 어깨가 아직 좋지 않다. 시계는 그날 부서졌다. 왼쪽 팔목에는 끝까지 스크럼을 짜기 위해 손을 놓지 않았던 예비군의 손톱 흔적이 남아 있다. 혹시나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지만 5월 31일 밤 ~ 6월 1일 새벽 삼청동 경복궁 담 쪽에서 내 왼편에 서 있던 예비군 세 분 그리고 '괜찮다'고 나에게 말을 건네준 그 전경.

머리 크고 '장교는 끝까지 각이지'라며 그 와중에 전투모를 고쳐쓰기 바빴던 예비군 대위를 기억한다면 이메일 부탁한다. 우리 모여 소주잔이나 건넵시다. 모두 피해자지만 서로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준 상처를 사과하고 보듬어 줍시다. 꼭 연락 부탁합니다.


태그:#예비군 , #삼청동, #촛불문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