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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보궐선거 비용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선거가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할지라도 그 병폐를 나열하자면 너무도 많다. 다수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점령하는 선거는 소수의 침묵을 짓밟는 또 다른 폭력은 아닐까.

 

오늘(6월 4일) 전국 52개 지역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모 선거컨설팅업체가 전국 시도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취합한 자료에 의하면 이번 재보궐선거의 비용은 약 217억이나 된다. 기초단체장 10억, 광역의원 4억, 기초의원 2억원의 비용이 평균적으로 소요된다. 이 선거비용은 해당 선거가 치러지는 기초단체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기초단체로서는 상당히 부담되고, 주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기초단체장를 다시 뽑는 곳은 서울 강동구, 경북 청도군, 전남 영광군 등 9곳에 이르고, 시·도의원선거는 서울 광진구 제4선거구 등 29곳에서 치러진다. 또 시군구의원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도 광양시 다 선거구 등 14곳이나 된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보듯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멀어지고, 선관위는 투표율 높이기에 고심하고 있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 꽃이 시들고 있다는 반증이자, 풀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선관위 자료를 보면 도대체 이번 재보궐선거가 누구를 위한 선거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거법 위반은 물론이고, 지난 18대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사퇴,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퇴 등이 대부분이다.

 

지방이나 농어촌 지역의 경우 열악한 지방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욕심 때문에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이 축나고 있고, 유권자들의 권리는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사유를 분석해보자. 기초단체장 선거 9곳 중에 지난 총선 출마를 위한 사퇴가 경남 남해군 등 5곳, 대구 서구 등 선거법위반으로 피선거권이 상실되거나, 각종 비리혐의 등으로 중도사퇴한 곳이 3곳, 단체장 비리 1곳 등이다. 이 중에는 불법선거자금 살포로 주민들이 자살하고 수많은 주민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경북 청도군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공직을 사퇴한 사례는 기초단체장 5명을 비롯하여 시·도의원은 24명, 기초의원도 7명이나 된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전국에서 36명의 선출직 공직자들이 민의를 저버리고 주민들의 세금을 축낸 것이다.

 

이 중에 경선 및 공천과정을 거쳐 18대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은 인천 서구청장을 사퇴한 이학재 의원(한나라당, 인천서구)과 부산시의원을 사퇴한 유재중 의원(한나라당, 부산 수영) 등 단 2명뿐이다. 대부분은 공천과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경북 청도군을 혼란으로 몰았던 정한태 전 군수가 재판 중에 선거비용으로 1억원을 자진해서 내놓았을 뿐,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기초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14곳 중에도 총선출마를 위한 사퇴가 7곳, 선거법 위반이나 개인비리가 4곳, 광역의원 출마를 위한 사퇴가 1곳이다.

 

선거비용 환수운동 전국네트워크 본격 활동

 

지난 5월 21일 재보궐비용환수운동본부(http://cafe.daum.net/hwansuneed 이하 환수운동본부)는 감사원 정문 앞에서 6.4 재보궐선거비용 환수를 위한 감사원 감사청구 및 재보궐선거비용 환수운동전국네트워크 결성식 기자회견을 하면서 재보궐선거 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공직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는 지자체장에 대한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대상 지자체는 서울시 양천구, 강서구, 강동구, 경기도 안산시, 김포시, 충남 천안시, 경남 남해군, 창원시, 진주시 등이었다. 이 환수운동본부에는 강동예산분석네트워크 등 9개 단체가 가입했고 행정공백에 따른 주민 피해와 재보궐선거비용 등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계속 진행해오고 있다.

 

2007년 4월 이훈구 전 양천구청장이 위계공무집행방해혐의로 기소되어 사퇴하자, 원인제공자에 대한 청구소송을 시작했고, 올 2월 안산시민들이 총선출마를 위해 사퇴한 도의원 2명과 시의원을 상대로 선거비용과 위자료 1억2천여만원의 배상소송을 냈다.

 

총선 출마 등 중도사퇴 큰 문제

 

서울시 강동구 주민들도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한 신동우 전 강동구청장과 배대열 전 서울시의원을 상대로 각각 5300여만 원과 26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충남 천안아산경실련은 지난 4월 14일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의원직을 중도사퇴한 이정원(53)·박중현(39)씨 등 2명의 전 시의원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원인제공자에게 청구할 비용은 2006년 당선이후 수령해 간 기탁금과 선거보전금 및 이번 6·4보궐선거에 소요되는 선거비용 8억여원이다.

 

이후 5월 23일 천안지역 시민단체들은 '환수네크워크'를 결성했다. 천안아산경실련과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결성취지문에서 "선출직 공직자의 선거법위반과 중도사퇴로 재보궐선거가 관례처럼 되풀이돼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원인제공자와 이들을 공천한 소속정당이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선거구 중 총선 출마 등 중도사퇴한 곳이 39곳이나 된다. 이 중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이 34명이나 차지하고 민주당이 3명, 무소속이 2명, 자유선진당이 1명이다. 정당들도 공천단계에서 중도사퇴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또 재보궐선거는 세금낭비뿐만 아니라, 낮은 투표율로 대표성 상실, 정치불신 등 풀뿌리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천안지역 선거출마자 7명에게는 "일체의 불법선거운동 금지와 당선되면 중도사퇴하지 않고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할 경우 선거비용을 책임질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법적 강제성은 없다.

 

지난 해 4월 광주 남구 시의원보궐선거에서 '11전 12기' 끝에 당선된 강도석 전 시의원은 10개월 만에 18대 총선출마를 위해 사퇴하여 비난을 사더니,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원인 제공자가 된 시의원 선거구에 다시 출마해 눈총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 소요되는 비용 4억여원은 고스란히 광주 남구청 예산에서 부담하게 된다.

 

또 최근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민화식 전 해남군수도 2004년 도지사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했다. 이어 도지사선거에서 낙선한 후, 그해 10월 자신의 사퇴로 치르게 된 군수보궐선거에 재출마하자, 전국공무원노조 해남군지부가 선거비용 5억2천여만원을 청구하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선거법위반이나 개인비리로 재선거가 치러지는 곳도 8곳이나 차지하는 등 문제가 많다.

 

전남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이후 기초단체장 보궐선거를 치른 곳만 해도 신안군 등 6곳이나 된다. 화순군수선거는 지난 2004년과 2006년에 한해 두 번씩이나 선거를 치렀다. 한번은 부인이 이어받았고, 또 한번은 동생이 이어받는 선거 역사에 빛나는 진기록을 남겼다. 모두 선거법 위반이 원인이었고, 각각 5억여원의 선거비용이 소요되었다.

 

서울시 강동구청장 선거는 2004년 김충환 전 구청장(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총선출마를 위한 사퇴이후 최근 6년 사이 4번이나 선거를 치렀고, 경북 청도군수 선거는 2004년 김상순 전 군수의 정치자금법위반으로 이듬해인 2005년부터 4년간 매년 군수선거를 치르는 진기록을 남겼다.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인구가 적은 농어촌지역의 경우 선거를 치를 때마다 민심이 요동치고 선거후유증의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온다. 낙선한 상대방 지지자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보복성 피해도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점자 승계제도 등 제도보완 필요

 

이런 문제투성이의 제도를 만든 것은 16대 국회였다. 지난 민선4기 때부터 기초의원 정당추천제를 부활해서 지방정치인들의 '줄 세우기', '공천헌금 의혹'들이 계속 불거졌고, 선거이후 각종 비리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번 18대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의혹과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부터 없애야 한다. 또 계속되는 혈세낭비를 막으려면 차점자 승계제도를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엄청난 혈세가 낭비되는 재선거를 치를 것이 아니라, 차점자가 자동적으로 승계해서 행정공백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각시도 교육위원 선거는 차점자가 자동 승계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가 차점자 자동승계제도로 전환된다면 혈세낭비를 막을 수 있고, 행정공백과 재선거로 이반되는 민심혼란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종 선거에서 지방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하거나, 눈치를 보는 행태를 방지할 수도 있어 정치적 중립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 해결방안을 곧 개원하는 18대 국회에 넘기겠다.


태그:#6.4재보궐선거, #혈세낭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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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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